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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수 이야기 - 2007년 제5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이승우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를 풍기는 노인의 몸을 해가지고도 그 시절의 상사가 자기를 다시 불러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 인생이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그저 통속할 뿐인데 말이야. 하긴 나중에는 그 기다림이란 게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고, 그저 습관에 지나지 않은 게 되었겠지만. 잡지의 표지가 인생을 닮아 통속하다는 걸 그가 왜 몰랐겠어. 잡지의 표지가 외로울 수 없는 것처럼 인생 역시 통속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 그날, 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듣던 라디오에서 그 상사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다는군. 그래서 충격을 받고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쓰러진 거래. 인생이 얼마나 통속인지 보라고. 아무리 외로운 척해도 통속을 넘어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니까. -이승우, <전기수 이야기>
수상작 <전기수 이야기>를 읽고 김경욱의 <천년여왕>을 약간 읽다가 이도 저도 다 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잖아 하는 순간 계속 읽을까 말까를 한동안 고민했었다. 나름의 글쓰기가 직업인 동시에 글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글을 둘러싼 이야기가 흥미롭지 못하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떨까를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아무래도 계속 망설여져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전기수 이야기>가 조금 더 재미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김경욱 <천년여왕>
그래도 한 편만 읽고 마는 건 너무한 것 같아서 김경욱의 <천년여왕>과 김애란의 <성탄특선>으로 부지런히 책장을 넘겼다.
불행히도, <전기수 이야기>와 <천년여왕>은 책과 관련된 사람(전자는 책 읽어주는 남자였다가 이야기 들려주는 남자가 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후자는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이야기고, <천년여왕>과 <성탄특선>에는 동남아 사람(전자는 동남아에서 시집온 색시들과 동남아 노동자, 후자는 동남아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세 편 읽었는데 어쩐지 중복. 다른 작가의 이야기인걸까, 혹은 이런 화제가 인기있는 걸까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김애란은, <달려라 아비>를 읽었을 때 생각은 발랄하구나- 정도였는데, <성탄특선>은 뭐랄까, 그래도 나이가 어리다고 그냥 허투루 볼 수는 없는 게 세상일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활자를 더듬어가면서, 초라한 성탄절에 대한 쓸쓸한 자각을 다시금;; "말하자면 역병처럼 크리스마스가 돌아온 것이었다"라는 말에 혼자 낄낄거리고 웃었다. 마음에 들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늘날의 문단 분위기를 약간은 알 수 있게 해 주는 책인 듯 하다.
여자의 옷차림은 스카프를 둘러맨 오리처럼 항상 어정쩡한 구석이 있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한동안 새로 산 치마 한 벌에도 기분이 좋아, 온종일 혼자만의 자신감에 휩싸여 캠퍼스를 날아다니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여자는 알게 되었다.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스물한 살 여자는 남자에게 예뻐보이고 싶었다. 그것은 허영심이기 이전에 소박한 순정이었다. -김애란, <성탄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