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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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은 「모리아이 엔코미움, (MORIAE ENCOMIUM)」이며 <어리석음 예찬>을 뜻하는 그리스어 「모리아스 엥코미온」의 라틴어이다. 어리석은 신 <모리아,Μωρία>의 자신을 예찬하는 연설문이다. 『우신(愚神)』은 '어리석음의 신'을 뜻하는 한자이다. 제목이 눈길을 확 끌어당기게 잘 선택한 것 같다.


에라스무스는 처음 영국을 방문해서 만난 여러 사람들 중 토머스 모어의 <모어>라는 성 때문에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어리석음은 그리스어로 <모리아,Μωρία>이며 이 글의 어리석음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기독교와 정치 등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풍자와 해학으로 날카롭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리석음이 없다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신들마저도 어리석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이 글을 출판할 생각은 없었으나 친구들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출간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은 이 글이 개신교 종교개혁의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의 기본 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라스무스는 당시의 가톨릭의 미신과 부패 등이 없어지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였지만 기본적이 가톨릭의 교리들 - 성모마리아와 성인 숭배, 7성사, 성직 위계제, 성체 성사 등 - 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에라스무스는루터의 반대 입장에 되어 루터의 교리를 반박하는 「자유의지론」과 「히페라스피스테스」를 쓴다. 이에 루터는 「노예의지」로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을 반박한다. 잘못된 가톨릭이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어나 방법이 서로 달랐다.


인생이란 것도 일종의 연극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인생이라는 무대에 올라

각자 맡은 역할을 하다가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퇴장하는 연극 말입니다.

우신예찬 P91 <29장 진정한 분별력도 우신에게서 나온다.>


다른 많은 글들 중 인상이 깊게 남은 문장이었다. 연극은 다른 이의 모습으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연극에 난입하여 그들의 원래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무대에 서 있던 여자가 남자이고, 청년은 노인이었고, 왕이었던 사람은 노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인간에게 허용된 것 이상을 하고자 하지 않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너그럽게 눈감아주고 기꺼이 속아주는 것이 진정한 분별력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분별력이 어리것음에서 나온다고 말하지요. P92>라고 한다. 가끔 원치 않게 등 떠밀리듯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머릿속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얼굴에 가면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항상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르지는 않는다. 가끔은 마음이 닿는 이를 만나 솔직한 본 얼굴을 보일 때도 있다.


『우신예찬』에는 철학자, 현자, 사냥꾼, 건축가, 화학자, 노름꾼, 군주, 의사, 법률가, 성직자 등 수많은 이들과 남자, 여자, 우정, 결혼, 전쟁, 본성 등 여러 가지들이 어리석음이 없다면 존재하지 못한다고 한다. 원래는 없었던 목차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렇게나 많은 것들로 우리의 삶이 이루어져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라스무스가 창조한 <모리아,Μωρία>가 하는 설교에 매료되었다. 가볍게 지나치며 했던 생각들도 있어 뜨끔하기도 하고 풍자와 해학이 너무나 적절하여 깔깔깔 웃기도 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게도 한다.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헤매는 이들에게 좋은 책인 것 같다. 꽁꽁 숨겨두고 감추어 두었던 내면을 꺼내 볼 수 있기에 나름의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찾아가는 길은 보여 줄 것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이나 아주아주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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