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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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이 두 권이 되었다. 띵똥~ 초인종이 울리길래 올 택배가 없는데(띵똥의 99.9프로는 택배라) 생각하며 받았는데 한 달에 한 번 큐레이션으로 받는 책이었다. 항상 랜덤 신청이라 어떤 책이 올지 모른다. 택배 상자를 열고 예쁘게 포장된 포장지를 열고 나온 책이 「다정한 서술자」였다. 책을 보자마자 크게 웃었다. 이미 출판사 지원으로 받은 책이었다. 책을 큐레이션 해주는 서점의 주인장이 랜덤 도서를 어떤 기준으로 고르는지는 라이브에서 본 적이 있어 더 관심이 갔다. 앞 부분을 조금 읽었는데 너무 좋은 책이라 읽지 않는 책을 책장에 꽂아두기에는 아까워서 리딩투데이 카페 분께 나눔을 해드렸다. 좋은 책은 더 많은 분들이 읽어야 한다.


평소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많아서 다 읽고 나면 표시했던 플래그는 떼어내고 책장에 꽂아두는 편이다. 이 책은 밑줄을 많이 그은 첫 책이다. 밑줄을 그으며 읽기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아 밑줄 긋기를 포기했다는 서평이 리딩투데이카페에 올라왔다. 밑줄을 너무 많이 그어서 책이 너덜너덜(?) 해졌다고 하였다. 밑줄을 그을 것인가 플래그를 붙일 것인가 접을 것인가 고민을 하다 이미 긋기 시작했으니 계속 긋자! 하고 밑줄을 그었다. 단 볼펜에서 연필로 도구는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어떤 부분을 중심으로 서평을 쓰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책은 글쓰기, 독서 방법, 문학강연, 동물권, 문학강연 등 여러 주제에 걸쳐져 있다. 다양하고 다량의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나만의 독서 루틴 등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어서 독서 방법이 관심이 갔다.


오로지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만 책을 읽는 건 책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는 건 경험하기 위해서이며, 경험이야말로 보다 심오하고 포괄적인 이해의 유형이 아닐까.

- 중략 -

그렇다.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다정한 서술자 P120, 133


책을 읽으면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생각했다. <경험에 의한 이해>는 생각지 못했다. 책 안에서 일어는 현상들이 왜 그런지 이해하려 하기 보다 그냥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인공도 되어 보았다가 스쳐지나는 엑스트라도 되어보고 나무나 새도 되어보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활자로만 보이던 책이 이미지가 되어 머릿속에서 재생 되어진다. <의미는 무수히 많고, 텍스트는 끝이 없다. 글자의 배열과 조합이 얼마든지 가능한 만큼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버전의 텍스트가 존재한다. - P132>를 요즘은 실감하고 있다. 여러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으며 새로운 소설, 시집의 발간 행렬은 끝나지 않고 있다. 독서카페의 서평단이나 인스타그램, 서점 앱 등을 보면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욕심에 책장에는 읽지 못하는 책만 늘어가고 있다. 저자는 가는 모든 곳에 책을 두고 읽는다고 한다. 주로 안방 책상에서 책을 읽어 그곳에만 책들 모아 두었다. 이제는 침대 머리맡, 거실 탁자, 식탁 등등 여러 곳에 읽을 책들을 두어야겠다. 눈에 자주 보이면 그만큼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읽는 속도가 느리기에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는 또한 새로운 유형의 서술 방식, 그러니까, '사인칭 시점의 서술'을 꿈꿉니다. 여기서 '사인칭'이란 단순히 문법적인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등장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시각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는 시점을 말합니다.

다정한 서술자 P359


일인칭, 삼인칭 시점 등은 들어봤어도 '사인칭 시점'은 처음 보았다. 말하자면 어떤 하나의 현상에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시선으로 여러 각도에서 보고 그것을 하나로 모으면서도 각각 독립적인 시점으로 분리한다는 것인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어렴풋하게는 알겠으나 확실하게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나서야 이해를 하였다. <다인칭이면서 동시에 무인칭인 서술자, 전체를 포괄하는 광범 시야를 가진 서술자 즉 '총체적인 이야기꾼'을 말한다.> 일인칭은 자신 위주로 이야기가 기술되어 다른 타인이나 사물들의 생각 등은 알 수 없다. 삼인칭 관찰자 시점은 이야기 바깥에서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된다. 그에 반해 '사인칭 시점'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통합하며 전체적으로 모아주는 시점이 더해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올가 토카르추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본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전체로 결합된다는 궁극적인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 P360>라고 하였다.


결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젊은 여인, 내 어머니는 그렇게 한때 사람들이 '영혼'이라 부르던 뭔가를 내 안에 심어 주었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를 내게 선물했습니다.

다정한 서술자 P334-335


저자는 <다정함이란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기술 - P363>이라고 하였다. 흑백 사진 속 어머니가 아련히 바라보며 그리워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묻는 저자에게 어머니가 한 대답은 의외였다. 사진을 찍을 때 실제로 그러한 생각을 하였는지 다른 생각을 하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이의 질문에 어머니가 대답한 짧은 문장은 저자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지고,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올가 토카르추크에게 다정한 서술자는 <어머니>이다. 어머니 홀로 찍힌 흑백 사진일 뿐인 사물 하나에도 감정을 이입하여 아이에게 자신도 그 안에 존재하게 한다. 그리하여 아이와 어머니를 같은 공간에 있게 하여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게 한다.


관계에 있어 넓지 않은 나에게 다정한 서술자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수도 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넌 걸을 수 있어. 예전과 같아질 거야>라 이야기하던 나의 영원한 버팀목인 어머니, 평소에는 애정표현에 서툴지만 얼큰하게 취하면 아이러뷰 미츄 유라며 엉터리 영어를 말하며 안아주시는 아버지, 항상 자신의 팔을 내어주고 나란히 걷는 신랑. 모두가 내게는 다정한 서술자이다. 조금 더 찾아보면 다정한 서술자는 더 있을 것이다.


<다정한 서술자>에는 많은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미 읽은 책이 나오면 반가웠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나오면 궁금해하며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하였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이야기하는 문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의 독서 목록이 궁금하거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그녀의 글쓰기 방법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 지원도서이나 아주아주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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