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과 분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0
윌리엄 포크너 지음, 윤교찬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흘러간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이 무작위로 썩인다면 어떻게 될까? 「고함과 분노」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대입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서른셋이지만 세 살 지능의 백치, 동생 캐디에게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퀜틴, 혼자 서 있기도 버거운 제이슨. 이들에게는 지나온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순조로이 흐르던 강물이 소용돌이를 만나 비틀리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고함과 분노에서 보이는 시간이 그래 보였다. 엉키고 설키어 벤지도, 퀜틴도, 캐디도, 제이슨도 삼켜버린 것 같다. 소용돌이는 처음에는 아주 작다. 콤슨가를 몰락하게 한 소용돌이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우는 어머니? 술만 마시는 아버지? 시도 때도 없이 울부짖는 벤지? 의식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허우적대는 퀜틴? 캐디의 일탈? 어머니와 캐디의 돈을 빼돌리는 제이슨?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시작점인 것인가.


1910년 6월 2일 퀜틴의 시선이 따라가기 제일 어려웠다. 의식의 흐름 변화를 표현하는 명조와 고딕의 변화가 어떤 곳을 채 한 문장이 되지도 않아 바뀌는 곳도 있었다. 시간과 그림자에 집착을 보이는 퀜틴의 행동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해야 하고 자꾸만 바뀌는 시점에 한순간이라도 딴 생각을 하다 읽으면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시계를 퀜틴에게 물려주며 한 이야기는 아직도 아리송하다. <이 시계를 주는 것은 시간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따금씩 잠시 망각하라는 것이다. 시간과 싸워 이겨 보려고 모든 힘을 소진해서는 안 된다.>라니 무슨 힘 빠지는 소리인가. 얼마 전에 읽은 「모비딕」이 갑자기 생각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들과 싸우려 하던 에이해브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


깨져서 시침과 분침도 없는 시계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럼에도 째깍째깍 움직이는 톱니바퀴의 움직임에 따라 퀜틴의 의식도 흐르는 것 같다. 벤지는 백치여서 울부짖는다 하자. 제이슨은 뒤틀린 방식으로 모으긴 했지만 돈을 읽어 분노할 수 있다. 퀜틴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디가 부정을 저질러서? 그러고도 다른 이와 결혼을 해서? 의식의 경계가 모호했을 때 <주먹으로 치고 싶은 충동을 참고 손바닥으로 그를 때렸다. >는 허버트에 대한 회상 부분인 듯한데 실제로 누군가를 때렸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뒷부분이 나왔을 때 바로 연결하지 못했다. 스스로 죽기를 결심한 사람은 모든 것을 체념하지 않나? 분노는 극렬한 감정 표현이다.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들끓는 마음을 안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시작을 봤는데, 이제 끝도 봤단다.

고함과 분노 P448


딜지는 콤슨가의 사 남매와 캐디의 딸인 퀜틴을 길렀다. 그들의 처음과 끝을 본 것이다. 아직 벤지도 있고 제이슨과 어머니가 남아 있는데 끝을 보다니? 하고 갸웃했다. 그러다 떠오른 내용 하나. 모리스 삼촌!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던 배스콤 가문의 사람! 제이슨이 가지고 있던 돈도 도둑 맞고, 직장도 잃고, 어머니의 돈도 사라지고 이제 몰락만이 남았다. 제이슨은 목화 시장에 투자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목화 사업은 하향세였다. 주식도 마이너스이다. 콤슨가의 미래는 예견되어 있었다.


읽는 내내 조각조각 난 시간을 이어 붙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이내 포기를 하였다. 각 파트의 시점을 그냥 따라갔다. 마지막 3인칭 시점이지만 딜지의 시점인 이야기까지 모두 읽고 나서 시간을 재조립했다.


윌리엄 포크너는 「고함과 분노」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린 한 장의 이미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미지 속의 한 소녀는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 배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 상황을 형제들에게 알려주고 형제들은 소녀의 진흙 묻은 속옷 엉덩이를 올려다보는 것이다. 이 허구의 세계를 위해 요크너퍼토퍼 카운티와 제퍼슨 시를 만들고 그곳에 거주하는 콤슨가 사람들을 창조하였다. 구체적인 지도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콤슨가 사람들이 누구고 왜 소녀의 속옷에 진흙으로 더럽혀졌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느꼈을 때 이야기는 고함과 분노라는 장편 소설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장편소설로의 이어지는 사고의 확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윌리엄 포크너가 살아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