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을 찾았다. 몇 년 만에 간 할머니 산소에 도착 후차에서 내려 본 풍경에 미소가 지어졌다. 표지와 너무나 닳은 풍경에 핸드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용돈으로 받은 돈을 몇 번이나 꼬깃꼬깃 접어 시집오실 때부터 가지고 계시던 자그마한 비단 지갑에 넣어두셨다가 나에게만 살짝 꺼내 주셨다. 어릴 때 타지에 자주 일을 하러 가시는 아버지와 가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시면 할머니가 오셔서 보살펴 주셨다. 그때 끓여주셨던 된장찌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오랜만에 든 시집 제목을 가만히 읊조려보며 바라만 봐도 닳을 정도로 그리움과 애달픔이 드는 것들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엄마의 미소, 할머니의 된장찌개, 아빠의 손, 남편의 어깨, 큰아들의 작업화 등이 스쳐 지나갔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 점점 잊혀가는 그리움의 맛, 손마디가 굵어진 손가락, 밤마다 아픈 어깨에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옆자리, 졸업도 하기 전부터 쉼 없이 일하는 작업화. 이제는 볼 수 없어서 그리워서, 볼 수 있지만 너무 애달파서 마음이 닳아간다.
달빛, 벗 삼아
세월의 유수는 짐작기도 어려워
흐르는 강물과도 같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향을 잃은
돛단배 위에 머문답니다.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왜 노를 젓지 않습니까?"
제 대답은 바람을 노 삼아
삶을 여행하는 중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다 해가 지고
오후 여섯시가 일곱 시를 만나는 시점
하늘이 보랗게 물들었습니다.
저의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점점 세월의 유수를 따라 흐릅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일부.
오늘 밤은 제게는 전부가 된 일부겠지요.
잔잔한 호숫가 위에 떠있는 돛단배에서
달빛을 벗 삼는 그림자가 되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