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20)

: 99년 2월 설날 연휴
지겨워 미쳐 버릴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연휴가 끝나감에 따라 느껴지는 아쉬움은 왜일까?

 

: 2월말 다른 포대 경계 근무 지원을 나왔다.
99년을 맞이하는가 싶더니 좀 있으면 3월이 된다.
99년의 1/6이 벌써 지나가나?!
3월이면 상병 5호봉이 된다.
요즘 내 생활을 돌아보면 많이 편해졌다는 걸 느낀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씩 편해지는 것 이게 군 생활의 장점 아닐까?

 

: 99년 2월 23일 오후...
'V'자 형으로 날아가는 철새를 보았다.
봄이 찾아오기는 오는 가보다
부대에서는 언제 쯤 되어야 봄 같다는 소리가 나올까?..

/* 참고로 말씀드리는 건데 군대에는 여름하고 겨울 밖에 없습니다.   --;
   봄, 가을을 느끼는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꽃 피고 새 우는 '봄'... 3월이라고 해도 군대는 아주 춥습니다.

   위병소 밖만 나가면 한 겨울도 따뜻한데
   부대 안에서는 이상하게 춥습니다.   --;

   제가 있던 곳은 4월에도 서리가 내리곤 했지요.

   5월 쯤 되면 좀 따뜻해지나 싶은데 그러다 일주일 지나면 팍 더워집니다.

   가을도 마찬가지 입니다.
   9월까지 아주 덥다가
   10월이 되면 서늘해지나 싶다가 일주일 있으면 바로 추워집니다.

   2계절이 아주 뚜렷한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


: 99년 3월 2일 '대보름'이다.
점심은 특별히 오곡밥을 먹었다.   

감동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는데 부대 근처 여러 농가에서
우리들이 수고한다고 그렇게 신경 써주신 것 같다.

3일.. 초번초 보초 근무를 나가서 보름달을 보았다.

이른 새벽... 날짜는 하루 지났지만
그 '달'이 그 '달'이여서 소원을 빌었다.

우리 집에 올 한 해 행복하길.

나 무사히 군생활 마치길.

그리고 나중에 나 하는 일 잘 되길...

좀 욕심을 많이 부렸다.

요즘 밤에는 좀 추운데 낮에는 정말 포근하다.
며칠 전 언제 그렇게 추웠냐는 듯....   봄이다.

 

: 99년 3월 4일
올해 처음으로 파리를 보았다.
고놈들이 아직 적응을 못했는지
몸 움직임이 둔해서 지근지근 밟아 주었다.
2마리
봄이다.

 

: 99년 3월 5일  02시 쯤...
비가 주섬주섬 내리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천둥 번개까지 친다.
비는 그렇게 많이 내리진 않지만 봄비치고 너무 사납다.

 

: 봄을 알리는 것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메마른 누런 땅 위에 간간히 보이는 초록빛 풀 일거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푸른 빛깔들을 보고
봄이 오는 걸 느끼고 반가워하고 기뻐하겠지...

하지만 그 푸른빛들을 정말 정말 싫어하고
징그러워하는 사람들은 군인 밖에 없을 거다.

햇빛 쨍쨍 내리 쬐는 여름날.
풀 뽑기할 걸 생각하니......(-_-;)

그놈들이 더 자라기 전에 미리 뽑아버리고
지근지근 밟아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쩝.....

할 수 없지... 국가 공무원이니...

/* 왜 나라 지키는 군인들이 풀을 뽑냐구요???
   우선! 잡초들이 여기저기 삐쭉삐죽 자라나 있으면 상당히 보기 싫습니다.

   또 하나 풀이 많이 자라나 있으면 숨기가 좋습니다.
   만약 나쁜 놈들이 부대에 침입한다고 하면 행동하기 좋겠죠?
   풀들이 여기 저기 많이 가려주잖아요.  
   요걸 군 전문 용어로 표현하자면 은폐에 상당히 용이하다! 고 하지요.
   그래서 풀을 잘라줍니다.  일명 제초작업!

   잡초는.... 정말 정말 정말 잘 자랍니다.

   따로 거름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잘 자랍니다.
   여름 같은 경우에는 풀들을 땅위에 3Cm 정도 남기고 다 잘라놓아도
   일주일이면 자르기 전 크기로 자라나 있지요.   
   진짜 좀비가 따로 없습니다.
   제때 제때 풀을 잘라주지 않으면 부대는 정글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풀을 자주 자르거나, 뽑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