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12)

: 98년 11월 2일 드디어 상병 진급을 했다.
일병 때 시간이 너무 잘 가서 그런지 몰라도 별다른 흥분 같은 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도 연두색 바탕에 검은 줄이 세 개 나 있는
상병 계급장을 보면 흐뭇해진다.

벌써 군 생활 일년이 다 되어간단 말인가...?

 

: 98년 11월 16일 상병 정기 휴가를 갔다.
14:23발 TMO를 타고 집에 가니깐 밤 9시 뉴스가 하는 게 아닌가.

/* 부대는 경기도 파주에 있고 집은 부산이니
   보통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 빼먹으면 며칠 놀지도 못합니다.

   집이 서울인 사람은 집에 가서 점심을...
   어떤 사람은 집에 가서 아침을 먹기도 하는데...
   참 불공평(?)하더군요  -_-;    */

제일 반가워하는 건
역시 어머니였다.

18일은 주희가 수능을 본 날이자 오랜만에
아버지가 집에 오신 날이다.

내년이면 환갑인 아버지이지만 아직까지 고생하신 다는 게
마음 아프고 아버지 얼굴을 볼 때마다
늙어 가신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또 한 번 더 마음이 아파진다.

간만에 아버지와 있었지만 이렇다할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TV와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는 나 때문에....


14박 15일 동안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영준이를 만난 거다.

휴가 나왔다고 수원에서
내려와 나를 감동시켰고
그 녀석 주머니에서 나온
라이터와 담배가 날 놀라게 했다

하루에 10개비만 핀다는데.... 글쎄...

복귀 할 땐.... 담담했다

그럭저럭 적응도 되고...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야 그나마 후회되는 게 있다면
좀 더 많이 먹고 많이 마실걸 하는 거다.

휴가 갔다 온 그 보름사이
부대는 산, 밭, 포상, 철조망 밖의 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것이 누런빛으로 바뀌었다.

 

: 추운 것은 힘든 것이다.
여름은 덥기만 하다.
덥다가 어느 순간 몸이 덜덜 떨게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겨울은 춥다가 조금만 움직이면 이내
숨을 헐떡거리며 땀을 흘린다.

덜덜 떨다가 이내 땀을 흘리고 그러다
얼마 안돼 다시 덜덜 떤다.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춥다가 계속 춥다면 그나마 나을 것을...

더워 죽기는 어려워도 추워 죽기는 쉽다

결론 : 겨울은 힘들고 춥다... (겨울 > 여름)

/* 겨울 군번이기 때문에 여름에 고생을 안 해봤습니다.

   여름이 힘드냐
   겨울이 힘드냐
   하는 걸 구분 짓는 게 사실 무리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겨울이 좀 더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위병소( 학교로 치면 교문 ) 밖에만 나가면
   한 겨울에도 따뜻하고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답니다.  홍 홍 홍.   (^o^)
   공기 부터 맑고 산뜻하고 깔끔하게 바뀌지요.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

 

: 내 자신을 위해 땀을 흘리고
  내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내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작자 미상)

/* 고참 관 물대에 있던 글 입니다.
    멋진 글인 것 같아 따로 적었던 겁니다.  */

 

: 98년 11월 18일
내가 군 입대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이라는 시간이 정말 길 것만 같았는데 뒤 돌아보면 금방인 것 같다.

이제 후임병들 한테도 폼을 잡으며

"내가 작년에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하면서 으시댈 수도 있다.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을
한 번씩만 더하면 된다.
.... 그나저나 유격은 또 어떻게 뛰냐?!

 

: 휴가 가서 느낀 건데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하고
'할 일'이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무의미 하고 지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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