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반장 추억 수첩 - (8)
: 지금은 98년 9월 중순
다음 주에 유격 훈련이 있다.
말로만 듣던 유격 훈련
한편으로는 재미있을 것 같고, 할 만한 것 같아서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소 익히 들었던 명성(?)으로 겁이 난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나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이 내 머릿속을 좀 복잡하게 만든다.
내가 유격장으로 향할 때
범장이는 군대로 향하겠지.....
- 유격 자이언트 (군가)
야야야 야야야 야 야야야야야~~~ 헤이!
끝없이 넓은 산악 올빼미 사는 곳.
젊은 가슴 펴게 하는 유격대 훈련 야~~~~야!
오늘도 밀림 속을 헤쳐 나간다.
My face is mountain
I love 링클, 로프
내 젊음 바칠 유~~~격~~대...에~~~~
/* “유격 자이언트”라는 군가입니다. ^^;
가사만 보면 유치하고 닭살이 돋는데...
여느 군가와 마찬가지로 단체로 크게 부르면 꽤 흥겹고
힘, 열정이 느껴지는 군가입니다.
유격 훈련을 뛰기 전에 당시 관측장교님한테 배웠는데
막상 가서는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군가입니다. --;
당시 관측장교님이었던 권회한 중위님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실지.... */
: 유격 훈련을 뛰고 나서...
첫 번째 날
아침부터 비가 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얼마 되지 않고 그치는 비였다.
/* 비가 오면 유격 훈련을 하지 않고 배수로 정리를 하거나 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울 수 있습니다.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비가 오면 그냥 꿀맛 같은 대기만 하게 됩니다. ^^;
군인들은 비를 무척이나 사랑한답니다. (^o^) */
여름 날씨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행군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오후부터 본격으로 시작했다.
힘은 들었지만 예상 했던 것 보다는 강도가 쌔지 않았다.
좀 만만하게 느껴졌었다.
두 번째 날
오전에 있었던 훈련은 정말 “죽음” 그 자체였다.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코스를 돌았으니...
표정 관리를 잘못해서 유격 교관한테 웃었다는 누명을 쓰고 정말 엄청 굴렀다.
'2번 코스 등판 오르기'
치가 떨린다.
내가 구르던 걸 본 사람들은 그 때 그 광경을 보고
정말 불쌍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아무튼 그 검은 모자를 생각하면.... 으....
/* 저는 힘들어서 인상을 쓴 거였는데 유격교관은 그걸 보고 웃었다고
따로 저를 불러내지 않겠습니까.
진짜 복날 주인공처럼 굴렀습니다. T_T
그 때 느꼈지요.
“아~~~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행복했*던* 사람이었구나~~~!”
라구요.
나중에 고참들이 그러더군요.
“야. 너 아까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쌍했다.” 라구요. */
유격 훈련 중간 짬짬이
숨 좀 돌리며 하늘을 볼 때마다
범장이 그 녀석 얼굴이 떠올랐다.
잘 있을까?
땅 바닥에 엎드리고 있을 때 배를 깔고 요령을 피우는데
바로 코앞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이름 모를 풀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풀 냄새가 향기롭고 달게
느껴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유격 중간 중간 내심 퍼지길 바랬지만
/* “퍼진다”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쉽게 말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숨넘어가기 바로 전 단계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퍼지면 강제로 계속 훈련을 받는 게 아니고
정신 차리고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습니다. */
살 많고 느리기만 한
내 다리에는 어째 쥐도 한 번 나지 않고 잘 버티는 게 아닌가.
오후에는 좀 널널했다.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교관도 조교도 많이 봐줬다.
저녁에 복귀 할 때 부대에 들어서니
꼭 내 집에 온 것 같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퍼졌으면 하고 나약한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지만
무사히 끝내니 기분이 무척 좋다.
'해냈구나'하는 성취감과 내년에 또 유격을
어떻게 뛸까하는 걱정이 동시에 든다.
유격 훈련 기간 내내 하루하루가 살면서 가장 긴 날들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여느 훈련처럼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 저희 부대는 유격 훈련을 2박 3일로 뛰었습니다.
고참들 말을 들어보면 원래 육군 규정에 포병은 유격을
2박 3일 받는 거라고 하더군요.
2박 3일짜리 유격이 유격이냐고 핀잔을 주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유격은 유격이었습니다. --;
PT체조를 할 때면 꼭 하나 해야 하는 게 바로 마지막 구호를 생략하는 거죠.
예비역 분들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조교들이 PT체조를 시킬 때 하는 말
"마지막 구호는 원기왕성하게(?) 생략합니다."
-_-;
만약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명이라도 마지막 구호를 붙였다간
PT체조를 2배씩 곱으로 다시 해야 합니다.
2배곱.... 이거 상당히 무서운 겁니다.
행여나 PT체조 한다고 정신을 딴 데 팔았다간 여지없이 마지막 구호를 붙이게
되고 그랬다간 진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립니다.
손가락 안에 드는 왕고참이면 몰라도 일, 이등병이 그랬다간 군 생활하는 데에
상당한... 뭐랄까나... 눈물어린 건빵 같은 쓴 맛을 경험하게 되지요.
좀 잔인한 교관들은 3의 배수, 7의 배수 구호를 생략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PT체조 하면서 공배수를 한 번 계산해 보세요.
진짜 머리 뽀개집니다.
원래 PT체조를 하는 이유가 몸을 충분히 풀어서
각종 코스를 통과할 때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인데
이상하게 변질이 되어서 여러 올빼미(훈련병)들을
반 죽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코스 타는 게 훨씬 더 편합니다.
유격이라는 훈련도 ‘김신조' 아저씨 때문에 생겼다고 하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