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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평점 :
드디어 다 읽었다. 2006년 겨울 1권을 읽기 시작했으니, 거의 13년 만이다. 15권에 이르는 대작을 10년 넘게 노력한 끝에 완결을 봤다고 자랑하려면 자랑할 수 있겠지만, 칭찬받을 대상은 물론 저자의 십 수 년에 걸친 노력일 것이다. 한 주제에 대해 틀어쥔 채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결을 짓는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특히, 로마사의 특정 시기가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다룬 개설서 중에 ‘로마인 이야기’만한 책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노력이 더욱 경이롭다. 가끔 내 시야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금 찾아 읽게 했던 힘은 온전히 시오노 나나미가 이 책에 바친 엄청난 노력과 수더분한 필력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로마는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양에서는 로마를 그리스와 함께 자기네들 역사의 시작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강대국의 조건을 다룬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도 로마는 반드시 다루는 소재다. 그 광대한 영토 때문이 아니라 서양인들의 삶에 자리매김한 그 문화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개 도시국가일 뿐이던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을까. 물론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비결은 ‘실용성’과 ‘개방성’이다.
먼저, ‘실용성’은 로마사람들의 큰 특징이다. 이들은 법률, 수도, 도로 등 인프라 건설을 중요하게 여겼다. 로마인들이 거쳐 간 곳은 몇 백 년 동안 뒤틀림이 없는 도로가 깔렸고, 수원이 아무리 멀더라도 도시까지 수돗물을 끌어왔다. 또 법률을 통해 예측 가능한 통치를 하려고 했고, 공직의 재직기간을 정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합리성을 갖췄다. 이 모든 것이 로마를 강대하게 만든 특징이다.
‘개방성’은 더욱 중요한 특징이다. 로마인은 피지배자를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유인했다. 최초에 경쟁했던 에트루리아의 지배층도 로마의 귀족으로 편입했고,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편입 후에도 정복지의 지배층을 위해서 원로원의 의석을 내주었다. 또한, 군복무를 마치면 로마시민권을 부여했다. 현대에 ‘아메리칸 드림’으로 통칭되는 계층 간 활발한 이동성은 로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로마가 길을 열어주고, 그 길을 통해 인재가 알아서 모였기 때문에 로마는 강대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우는 법. 너무 커진 제국은 관리가 힘들어졌고, 훈족에 쫓긴 게르만 족의 남하, 지도층의 부패, 내부의 혼란 등으로 로마는 조용히 역사의 뒷길로 사라진다.
시오노 나나미는 더불어 로마의 다신교적인 특징을 중요한 활력요소로 본다. 그래서 15권인 ‘로마세계의 종언’의 바로 앞인 14권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를 달았다. 다신교의 역동성과 관용에 반하는 일신교 그리스도교가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로마세계는 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로마 제국 내의 피지배 민족들은 로마제국이 주는 편의를 기대하고, 기꺼이 제국에 참여하려고 한 것처럼 묘사한다. 이런 부분들은 시오노 나나미의 국수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사관이 개입된 것이라고 본다. 마치 오만 가지 신을 다 섬기는 ‘신도 국가’ 일본을 ‘다신교 국가’ 로마와 동일시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꿈꿨던 일본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아시아인들도 자율적으로 ‘대동아 공영권’에 참여하고 싶어 했을까? 수많은 이민족들도 로마제국에 편입되기만을 원했을까 궁금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흡입력이 상당한 책이고, 순식간에 몰입하게 하는 책이다. 나는 이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어보려 한다. 그 후에는 역시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 멸망 후 지중해 세계’도 읽는 것이 목표다. 지금 당장은 긴 책을 결국 읽어냈다는 뿌듯함과 로마 시대를 더 알아보고 싶다는 탐구욕이 샘솟는다. 물론 이번에도 몇 년이 걸릴지 예측할 수는 없다. 내 능력이야 타고난 한계가 있겠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서로마 제국 최후의 장군 ‘스틸리코’를 평하면서 한 말처럼 사람의 매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은 ‘자세’, ‘태도’다. 성실하고 탐구욕 넘치며, 진지한 자세로 다시 한 번 로마세계로 빠져들어 보려고 한다.
자질이 대등한 두 사람도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인간의 차이는 자질보다 스타일, 즉 ‘자세’에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세’야말로 그 사람의 매력이 되는 게 아닐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매력이 짧지만 충일했던 그의 생활방식에 있었던 것처럼. _ 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