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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1월
평점 :
보통은 먹느라 바쁘지만, 가끔 ‘우리나라는 왜 일본이나 중국과 다르게 수저를 모두 이용할까?’ 라든지 ‘공깃밥은 왜 다 스텐 그릇에 담겨 나올까?’와 같은 것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지은이가 책에서 답하고자 한 질문들은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했을 법한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지은이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충분히 확보했다. 공을 많이 들인 책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읽는 중에는 생각보다 재미가 덜했고, 읽고 나서는 허전함을 느꼈다.
왜 그럴까. 일단 이야기가 ‘먹는 도구와 방식’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음식과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가 생략되어 밥만 있고 반찬이 빠진 느낌이 든다. 나아가 지은이가 어렵게 도달한 결론이 생각보다 새롭지 않고, 명확하지도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은이의 말대로 양반다리로 앉아 소반을 앞에 두고 식사하는 습관은 중국 성현들의 말과 행동을 금과옥조로 생각했던 성리학자들의 소신 때문일까? 아니면 온돌이라는 난방 시스템 때문에 굳이 의자가 필요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실질은 온돌 때문이지만, 형식상 성현들도 의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포장한 걸까. 여전히 명료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문제들에 의문을 가지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바로 거기서 출발했다. ‘앉아서 밥을 먹는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지 않으면,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트리클리니움’에 엎드려서 식사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요즈음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오래 전부터 숭늉을 마셨던 습관에서 찾는 것도 재미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청나라에 가서 신문물을 접하고 직접 조선 땅에 들여오기도 했는데, 왜 청나라의 의자는 수용하지 않았을까? 앞에서 소개한 이황의 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황은 의자에 앉는 자세를 ‘의좌(椅座)’라고 하면서, 이 습관이 ‘중고(中古)’에 겨우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중고’는 오래지 않은 옛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 이전에는 모두 땅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예(禮)를 행했다고 적었다. 그가 말한 ‘중고’라는 말 속에는 공자나 맹자, 심지어 주자도 의자에 앉지 않고 ‘위좌’나 ‘반좌’를 했을 것이라는 강한 추측의 뜻이 담겨 있다. 성현의 말과 행동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겼던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의좌’는 결코 예에 어울리는 자세가 아니었다. 공자도 맹자도 ‘의좌’의 앉음새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는 자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_ 63쪽
끝으로, 지은이의 말대로 식당에서 흔히 쓰는 스테인리스 스틸과 멜라민 수지로 만든 그릇들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다 지켜가야 할 전통은 아닐뿐더러, 그 기원조차도 산업화 시대에 편리와 효율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더 바꾸는 것이 맞다. 음식은 맛으로도 먹지만, 눈으로도 먹는다. 식당마다 특색 있는 식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식당에서는 무신경하게 스텐과 플라스틱을 쓰고 있지만, 이미 젊은 층들은 일본풍의 아기자기한 식기들을 사서 식탁을 꾸미고 있다. 이참에 식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경제성과 효율성의 덫을 넘어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21세기 초입의 오늘날, 한식음식점의 식탁 위에는 산업화 이후에 개발된 스테인리스 스틸·멜라민 수지·크리스탈(Crystal)같은 식기와 목기·자기·옹기·놋그릇 같은 산업화 이전부터 사용되어온 식기가 마구 뒤섞여 있다. 과연 이러한 여러 종류의 식기가 음식의 형태와 식사 방식에 알맞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나 스텐 밥공기, 스텐 수저, 그리고 멜라민 수지 식기로 구성된 한국음식점의 식기와 식사도구는 미학적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 _ 2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