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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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읽었을 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꼈다. 허탈과 분노 사이의 어떤 기분. 아무리 출판의 장벽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팬카페에 올릴 법한 글을 이렇게 찍어내는 것은 ‘팬’이 아닌 다수의 독자들을 농락하는 일 아닐까? ‘애플팬슬’의 유용함을 자랑하고, 이십여 쪽에 걸쳐 그림을 그리고, 오지선다형 문제를 내서 작가의 위트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창작의 비밀’을 듣고 싶어 모인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위일까? 창의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다소 황당한 구성이었다. 이 책의 절반은 일반 독자를 위해 쓰였지만, 나머지는 사생팬을 위한 연애편지와 같았다. 작가의 팬이 아닌 이상 이 책을 소장해야할 가치까지 있을까?


  물론 불편한 마음을 추스르고 인내심을 가지고 읽다보면 밑줄 긋고 싶은 부분들도 많다. 특히, 부담을 내려놓고 쉽게 써보라는 조언은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굉장히 유용한 처방이다. 첫 문장을 쓰지 못해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다가 포기하고 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대신에 지은이는 문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촌철살인의 문장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단과 문단 사이의 리듬, 이야기의 흐름과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장을 완성하는 데 힘을 빼게 되면 글을 시작하기조차 어려워지지만, 문단으로 관점을 돌리면 생각나는 대로 일단 쓰게 된다. 그리고 문단 간의 호응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니 글의 전체적인 완성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한 때 1년에 100권 읽기를 목표로 짧고, 쉽게 읽히는 책들을 중심으로 독서를 했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속도전으로 읽다보니 기억에 남지 않았고, 글로 정리해두지 않아 읽은 사실조차 흐릿해졌다. 물론 100권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해도 없었지만. 사람을 한 번 만나서 알 수 없듯 책도 그런 모양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을 좋아하는 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직 완전히 수긍하지는 못하겠지만, 마치 매년 동심원을 넓혀가는 나이테처럼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은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 


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나는 새 책을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더 많이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요. _ 65쪽 (『보르헤스의 말』에서 재인용)


  지은이는 ‘마지막 대목을 ‘교훈’이나 ‘반성’으로 끝내는 글도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결국은 또 그렇게 끝낸 것 아닌가 싶다. 중요한 것은 이후에 다시 한 번 그 ‘반성’과 ‘느낌’이 어떤 식으로 나를 변화시켰는지 점검해보는 것 아닐까 싶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반복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작가의 말을 인용해본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래하다보면 특별해진다.’ 그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나 혼자 하긴 미안해서(혹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걸 나 혼자 하기엔 억울해서) 더 많은 사람이 창작의 마술에 빠져들기를 바라고 있다. 독일의 교육학자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는 “창의성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우리를 벽에 부딪치게 만든다”고 했다.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 남들과 다른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벽을 세우는 셈이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래 하다 보면 특별해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특별하고, 시간과 함께 만든 창작물은 모두 특별하다. _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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