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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리커버 특별판)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업무상 필요 때문에 1달 가까이 90년대생 신입 직원들 40여 명과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일이 생겼다. 몇 년 전에도 했던 일인데, 그때와 비교하면 힘이 배는 들었다. 조직, 예산의 지원과 업무 조건은 그대로인데 90년대생 직원들의 요구사항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너무 피곤했다. 그들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업무를 함에 있어서 이러이러한 지원이 필요한데 왜 주어지지 않는지’, ‘내가 먼저 끝냈으면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는데 왜 다른 직원들과 퇴근을 같이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내가 그네들보다 10년 가까이 선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제기되는 불만들이 당혹스럽고 때론 불쾌하기도 했다. 선배의 권위도, 무언의 공포 분위기 조성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우리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식의 협박도 잘 통하지 않았다. 9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별종들이 나타난 걸까.
책을 읽다 보면 ‘세대가 변한 게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들도 시대에 부지런히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고, 유튜브니, SNS니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자란 세대들이다. 간결하고, 재미있고, 즉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사회는 어떤가?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별, 일과시간과 마찬가지인 야근, 주어진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열정페이 등 부조리가 넘쳐난다. 태어날 때부터 민주화의 결실을 누려온 그들이 기대하는 ‘공정’과 ‘민주’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살풍경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도피처를 찾은 것이 안정적이고, 채용과정이 상대적으로 공정한 ‘공무원’이다. 그들이 유독 도전을 싫어하고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세대라서가 아니라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 ‘가장’ 나아 보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문유석 부장판사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는 말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요즘의 젊은이들 또한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같이 인간 또한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변해버린 시대에 적응하려는 선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_ 40쪽
권위적인 관리자들이나 사회의 행태를 보면서 80년대생들까지는 조금만 참으면 나도 저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90년대생들은 다르다. 원하면 바로바로 얻고, 반응이 오는 시대에 언제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냐고 반항한다. 그들이 학교를 나와 사회로 들어오면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만연한 꼰대스러움과 그에 대한 거부가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나는 90년대생이 문제가 아니라 더는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90년대생뿐만 아니라 2000년대생도 곧 사회에 나온다. 그들은 더할 것이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에 대해 ‘90년대생’들이 문제라고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사회가 더는 이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구나!’라는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의 변화가 시급하다. 사회나 조직은 한 번에 말끔히 바꿀 수가 없다. 제도가 우선이냐, 문화가 우선이냐에 대해 각자의 판단이 다를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제도가 견인해 나가야 한다. 지은이는 ‘일에서 자기계발의 기회를 찾도록 알려주는 것’을 회사에서 90년대생을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것은 너무 이상적이다. 지은이도 우려하고 있듯이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근무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고, 직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지 않은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서 ‘열정’을 외부에서 요구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제도가 어느 정도 선진적으로 개선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직무와 자기계발을 연관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서 각자가 연마해야 할 일이다.
업무 몰입이나 흥미 증진에 있어서 제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90년대생들에게 ‘일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성장을 할 수 없다면 지금의 일은 의미가 없고 죽은 시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이 업무가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이 된다면 일은 단순한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_ 225쪽
얼마 전 우리 조직의 장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간부회의 석상에서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의 행동은 그 이후에도 변화가 없다. 조직을 개선하지도, 업무분장을 새로 하지도, 조직문화를 개선하지도 않는다. 업무 시간 외에 보내는 카톡도 여전하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감명을 받은 걸까. 우리가 같은 책을 읽긴 한 걸까 궁금해진다. 비단 90년대생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다들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 엉뚱한 부분에 밑줄 치지 말고,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