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또는 우리는 '민족 공동체 의식 함양 글짓기' 등을 할 때 빠지지 않았던 글귀는 '단군의 자손으로 같은 핏줄인‥' 이었다. 그리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라고 했던 맥아더 장군의 전기를 읽으며 존경해왔다. 그 뿐인가. '야인시대'를 보며 열광했고, C신문이 민족지 운운할 때 맞다, 맞아 하며 고개를 끄떡엿다. 그리고 노근리 학살 사건이 대두되었을 때 전쟁중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쉬쉬했다. 나는 또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오히려 우리가 아는 이 틀을 깨려고 하면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그들을 배척했다. 세상을 쉽게 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제일 좋은 것은 사실이다. 저렇게 알고 바꾸지 않으며 살아가도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사를 접한 것은 실수였다. 지금까지 '교과서적 심성'으로 갈고 닦았던 대한민국에 대한 역사와 모든 상식이 깨졌다. 모두 깨지는 못하고 어떤 부분은 견고하게 남아서 오히려 '새로운 역사'를 위협하고 있기도 하지만 단단하게 묶여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지식들에 금이 갔고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이런 역사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하고 '교양역사서'에서 배우는 것은 슬픈일이다. 그리고 이 책을 진짜 역사서라고는 볼 수는 없다. 한홍구 교수의 대중을 위한 사론(史論)이고 역사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담없이 편한 마음으로 읽다 보면 닫혀있던 인식의 틀을 상당부분 바꿔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책이 당당하게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수구와 보수의 차이는 똥과 된장의 차이다'라는 등의 도발적인 비유가 존재하고 감정을 흔들어 놓는 섬뜩한 사진들이 존재한다. 그런 면이 자칫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그리고 모르고 있었던 역사를 확실히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이 책을 접하고 처음 내뱉는 말은 '위험하다', '보지 말아야 한다'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을 유지한다면 그 것 만큼 큰 실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라는 책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저자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몰랐다. 책에 대한 책이라는 것이 흥미로웠고 글 자체가 강연이나 인터뷰 등을 모아논 것이었기 때문에 읽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다. 다만, 저자가 읽은 책을 나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저자가 읽은 책들을 유심히 보았지만 대부분 일본 작가의 책들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든 것 들이어서 한국 독자인 나에게 그 책이 어떤지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작가는 책은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의 책과 지식을 전달하는 전문서로 양분하여 전자의 것은 별로 읽을 필요가 없고 실제 저자도 오랫동안 그런 책을 잘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책이란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꼭 그렇게 양분하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일을 하기 위해서 관련된 저서들을 읽으려면 문학 작품들을 읽을 시간이 없고 또, 문학작품에서 큰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책은 기능적인 목적만 가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질 낮은 저질 도서가 아니라면 어떤 책을 읽든 거기에서 무엇을 얻느냐는 것은 개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오히려 전문서에서 느끼지 못한 지식들을 다른 책에서 얻을 수도 있는 것일 것이고. 저자의 이런 기능 주의적인 생각을 빼고는 저자의 생각들이 마음에 들었다. 집안이 망해도 책은 사보겠다는 마음과 수중에 돈을 들고 무작정 보고 싶은 책들을 모두 사서 보는 열정, 이 것이 지금의 다치바나 다카시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큰 반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끊없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통해서 점점 많은 것을 얻어나가는 저자의 삶은 나도 그렇게 살아가리라는 욕심이 나게 만들었다. 저자가 몇 살 때 쓴 글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읽고 싶은 책들만이라도 읽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고작 생물적 나이로 10대 후반이고, 사회적인 나이로는 겨우 20대 초반이다. 나는 아직 젊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책에 대한 욕심도 많다. 책은 위대하고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다치바나 다카시를 만든 것은 책이었다. 끝으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는 책 또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서평에 의해 휘둘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떤 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서평에 휘둘려서 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책도 보지 못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평론처럼 나는 어떤 책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줄 뿐이다. 책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는가는 개개인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