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용이 있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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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여는 순간 거대한 용이 불을 내뿜으며 튀어나오는 거 아냐?'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흥미를 느낀 것은 바로​ 앞서 말한 말도 안 되는 상상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이며 현실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단지 책 제목만으로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책을 처음 받고 나서 든 생각은 '책 표지에 무시무시한 용이라도 한 마리 그려 넣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곧 내가 아마추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용이라는 상상 속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기 용이 있다'라는 말 한마디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한 세계가 가득 담겨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반드시 천천히 읽을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한층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렇게 시작된 신비한 이야기들의 향연은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된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상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처음 가는 곳인데 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경험 말이다. 이 소설은 그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선사한다. 하나의 이야기는 그저 단편적인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113편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두 읽은 후의 느낌은 묘하게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마치 용의 일부만 보고 '공룡의 날카로운 이빨일 것이다, 악어의 뾰족한 등일 것이다, 도마뱀의 기다란 꼬리일 것이다' 등등 온갖 추측이 난무하지만 그것들을 한데 모았더니 그 모든 특징들을 모두 갖고 있는 용이 되었듯이 말이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써낸 작가는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이다.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며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고야 상을 무려 다섯 번이나 휩쓴 그의 경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더구나 이 작품 <여기 용이 있다>를 통해 올해 스페인 만다라체 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얻었다. 그 상은 스페인에서 젊은 독자층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상으로서 독자들에 의한 진정한 소설가에 주어지는 최고의 상이 아닐까 싶다.

100편이 넘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처음 나오는 <전염병>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수많은 카페와 광장, 상점에서 "낱말들이 죽어가고 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가 생각하는 픽션의 무한함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모든 의무와 책임, 형식을 벗어던지고 마음껏 비틀어대고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 있게 말이다. ​낱말들의 죽음이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한편으론 이 짧은 이야기에 조금 더 살을 붙여 한편의 시나리오로 완성한다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이야기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것이 짧든 길든 중요치 않은 듯하다.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상상의 깊이에 따라 짧은 이야기도 무한정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그렇게 만들어진 상상의 조각들이 모인다면 우주와 같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소설을 읽으면서 매번 용을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불을 뿜는 커다란 ​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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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 혁명 - 먼저 퇴직하는 자가 이긴다
명대성 지음 / 라온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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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 반퇴!!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와 읽고 난 후의 느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퇴직, 은퇴라는 말인데 그 말을 반으로 자른듯한 '반퇴'라는 말은 그저 생소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반퇴는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준비해야 되는 필수 코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퇴직, 은퇴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한 개인이 기업의 일원으로서 일할 수 있는 만큼 회사를 위해 일을 하고 명예롭게 퇴임하는 것. 예전에는 그게 당연시 여겨졌다. 아니, 지금도 그것은 직장인들에게 불변의 법칙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선 퇴직을 준비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과연 반퇴라는 것에 어떤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대기업 비서실에서 16년간 일해오며 나름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높은 연봉에 여유로운 생활과 명예퇴직까지 보장된 어쩌면 많은 직장인들이 꿈꾸고 바라는 생활을 해오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조기 명예퇴직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장 생활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그 이후의 삶은 오롯이 본인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창 잘 나갈 때 미쳤냐며 뜯어말리는 주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퇴를 결정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반퇴는 초반엔 성공한 듯해 보인다. 하지만, 섣부른 반퇴전략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되고 만다. 퇴직 후 시작한 고깃집은 얼마 안 돼서 폐업하기에 이르렀고 그 후 다시 시작한 사업도 결국 크게 빛을 못 본 채 접어야만 했다. 퇴직 후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는 다를 거야'라는 생각에 너무 빠졌던 것일까. 하지만, 그는 사업의 실패를 통해 진정 필요한 반퇴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반퇴전략연구소를 설립하며 대한민국 1호 반퇴전문컨설턴트가 되었다. 또한, 자신처럼 준비되지 않은 반퇴를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명실공히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퇴직 시기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그것은 곧 퇴직 후 30-40년간 더 생활해야 함을 뜻한다. 말하자면 퇴직하는 시기는 개인 사업이 시작이 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비춰본다면 언제 개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60대에 시작하는 것과 30대 후반에 시작하는 것은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도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무턱대고 젊은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무모하다. 그래서 성공적인 반퇴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13년이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반퇴를 준비해야 할 30대 중반에 이르는 나이가 되었다. 솔직히 아직은 두렵고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내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저자의 성공적인 반퇴 전략을 읽다 보니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한 것보다 작은 실패를 이겨내고 큰 성공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제야 반퇴라는 개념을 접했고 시작해보려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먼저 반퇴의 경험을 쌓았던 저자와 같은 선배의 조언이 가장 필요하다. 이 책은 내가 퇴직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부수는데 도움을 주었다. 퇴직을 고민하거나 나처럼 직장생활 중반을 달리는 이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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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1
조지 오웰 지음, 이수정 옮김, 박경서 해설 / 코너스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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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감동까지 주는 문학 작품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설마하니 고전(古典)을 말 그대로 옛날에 쓰인 책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많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전을 그저 쓰인지 오래된 책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멋진 세상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조지 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본명보다는 그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이다. 본명이든 필명이든 그의 이름을 여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우리는 그가 남긴 작품으로 그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이 쓴 작품은 여러 개가 있지만 그중에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읽힌 작품은 두 작품이 아닐까 싶다. 바로 <동물 농장>과 <1984>다. 그중에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동물 농장>이다.

<동물 농장>은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5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려낸 작품이다. 한마디로 정치 풍자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삶을 돌아볼 때 그는 철저하게 전체주의를 혐오한 문인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사회주의 혁명의 일환으로 성공한 듯 보였으나 결국 독재체제로의 전환에 불과했던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독재 체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할 수 없는 상황. 그는 영국의 시골 농장을 배경으로 자유와 평등을 향한 동물들의 반란과 혁명, 부패한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무지한 군중 심리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아냈다.

인간에 의해 사육당하며 오랜 배고픔과 추위를 겪어오던 장원 농장의 동물들. 어느 날 농장의 연장자인 돼지 메이저 영감은 모든 동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들이 자유와 평들을 구할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메이저 영감의 연설은 그저 동물들에게 꿈만 같다. 젊은 수퇘지 나폴레온과 스노우볼은 그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게 된다. 결국, 농장의 주인인 존스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동물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농장에서 인간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농장의 이름도 장원 농장에서 동물 농장으로 바뀌고 앞으로는 동물들을 위한 농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혁명의 달콤한 꿈도 잠시 혁명의 주축이었던 돼지 나폴레온과 스노우볼의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나폴레온의 승리로 끝이 난다. 그 순간부터 농장은 조금씩 서서히 동물들의 농장에서 돼지들만의 농장으로 변모해 간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고 있노라면 러시아 혁명의 긴박하고 긴장감 넘쳤던 냉정시대를 되돌아보는 듯하다. 가난을 벗어나 진짜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희망이 그렇게 무참하게 그리고 어이없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체주의에 의한 독재가 낳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혁명이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체제 번복을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상 혁명의 끝은 결국 원치 않던 과거의 반복 또는 새로운 과거의 연속에 불과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도 사실은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일부 지배층들의 전체주의 또는 독재의 전유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새삼 내가 살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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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리커버 한정판) -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당신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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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TV에 나왔던 한 카드회사 광고 카피로 익숙한 문구다. 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을 위해 알아서 척척 서비스를 해주는 그런 카드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처절하리만치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이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그 누구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노력 중독'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무언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나를 위한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당사자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자기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은 나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부족함이라는 것의 기준은 누가 세우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나다. 내가 나를 항시 부족하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 또한 그렇게 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갈증은 사그러 지지 않고 커져만 갔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저자가 스스로 회사를 나와 새롭게 시작한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카운슬러라는 직업이다. 걱정이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카운슬러를 목표로 하는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학원을 설립하고 강연도 한다. 현재 저자는 일본 내에서 스타 카운슬러가 되었다. TV에도 출연하여 방송 출연자들의 고민 상담도 해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인기 강사가 되었다. 그가 여는 강연회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초만원을 이룬다고 한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딱 하나다. '나는 이미 대단한 사람임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나 스스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간 쉼 없이 해온 노력을 멈출 수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조건 노력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는 나,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나를 위해 여유 있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거의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대학이라는 목표, 취업이라는 목표, 성공이라는 목표 등등등.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한순간 바꾼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변화보다 빠른 것이 익숙함이고 노력보다 쉬운 것이 바로 포기다. 그동안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체념과 포기를 해왔는지 생각해본다면 작은 생각의 차이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지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순간에 바꿀 수 없다면 조금씩 천천히 '너무 노력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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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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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라는 작품으로 한차례 광풍이 휘몰아쳐 탐정 추리 소설계를 발칵 뒤집아 놓았다. 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캐리>, <샤이닝>, <미스트> 등의 호러 소설 작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영화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미저리>을 통해 영화 팬들에게도 유명한 인물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사건의 주인공은 스티븐 킹이다.

강력한 허리케인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후폭풍을 안겨줄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이 출간되었다. <1922>, <빅 드라이버>, <공정한 거래>, <행복한 결혼 생활> 이렇게 총 4편의 소설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별도 없는 한밤에>를 쓰면서 나는 어떤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 또 그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행동 방식을 기록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등장인물들은 희망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니지만, 우리의 가장 간절한 희망조차도 때로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라고 저자 후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4편의 소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절망과 삶의 나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재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호러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소설가로써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소설을 읽는 이로 하여금 소설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듯하다.

<1922>는 전 재산인 땅을 팔아 그 돈으로 시골을 떠나 도시에 살고자 하는 아내를 살해하는 농부와 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로 표현되는 농부를 통해 인간이 자신의 욕망으로 인한 광기로 추락하는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아내를 죽이기로 한 대단한 결심과는 다르게 현실은 아내를 살해하는데 애먹는 장면은 한편의 코미디처럼 보인다. 무서운 공포 영화 가운데서도 코믹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내를 살해한 후 우물에 매장을 한 '나'는 그런대로 만족한다. 그러나 완벽한 살인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우물에 사는 쥐들에 의해 '나'의 살인 행각은 서서히 드러나고 그러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빅 드라이버>. 책에 실린 두 번째 작품인데 총 4편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나름 유명한 여류 작가가 다른 유명한 작가의 강연 펑크를 대신 때우게 된다.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강연을 마친 주인공은 강연 초대자의 알려주는 지름길을 통해 집으로 향하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는 바람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던 중에 낯선 트럭이 다가오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트럭 운전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한다.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스스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 이병헌, 최민식 주연의 <악마를 보았다>라는 영화다.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비슷하고 그로 인해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된다는 시놉시스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그랬던 것 같다.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저리>와도 비슷한 장면을 보여준다. 특히, 작품의 도입부는 <미저리>를 보는 듯하다.

이 작품은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되었을 때 갖게 되는 내면의 심리는 극명하게 잘 표현한 듯하다.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가 바로 성폭력인데 반해 실제 신고되는 사건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작품의 여주인공처럼 '세상에 알려 가해자를 처벌할 것인가 또는 자신의 명예를 지킬 것인가'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스티븐 킹은 그런 기로에 놓인 여성의 심리 묘사를 아주 세밀하게 표현한 듯하다. 그에겐 인간 심리를 꿰뚫어보는 남다른 식스센스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악막의 거래라는 익히 봐온 소재를 바탕으로 죽음을 앞둔 이가 자신의 목숨 연장을 위해 ​오랜 친구를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공정한 거래>. 제목만 봐서는 반대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 스티븐 킹이 말하는 진짜 '공정한 거래'란 무엇일까.

어느 날 남편의 과거​를 알게 된 한 여인.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결혼 전까지 무참히 살인을 일삼던 연쇄 살인마였다. 진실 앞에 놓인 행복했던 부부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만약 당신의 아내 또는 남편이 과거 무서운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과의 결혼 후 180도 새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진 누구보다 가족을 위하는 사람이었다면? 앞으로 절대 예전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고백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길을 걸을 때 중력이 자신을 땅에 붙들어 줄 것'처럼 절대 의심하지 않았던 행복. 그 행복을 위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을 무시한 채 살아갈 수 있을까? 글쎄.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마지막 작품인 <행복한 결혼 생활>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총 4편의 중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역시 스티븐 킹이구나를 새삼 실감했다. 이상하게 현재의 그를 있게 한 작품들은 모두 중편 혹은 단편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개중에는 장편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그의 주특기인 인간의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그려내는데 중단편이 가장 적절했던 걸까. 그의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우리에겐 그가 살아생전 좀 더 많은 훌륭한 작품을 그저 세상에 내놓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단편 소설을 보아 한편의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흥행한 영화 못지않게 멋진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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