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 알음다운 사람
민광훈 지음 / 지식과감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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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단어를 풀어보면 어떤 의미가 될까.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만나게 되고 생각하게 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책을 통해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삶'에 대해 고심하는 이들이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사실 나약한 인간에게 삶을 빼면 무엇이 남으랴. 하루하루를 아둥바둥하며 살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점차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목적 없는 삶은 부적절한 것인가. 반드시 목표가 있는 삶만이 올바르게 제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마치 불을 향해 맹목적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목표를 향해서만 나아가는 삶이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요즘 세대들의 천편일률적인 삶의 모습에서 보이는 단조로움 때문이다. 그 단조로움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삶'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삶'이라는 글자는 '살다'와 '알다'가 합해진 말이다. '삶'과 '앎' 두 글자를 겹쳐 보면 '삶'이 된다. 즉, '삶' + '앎'이 곧 '삶'이며 이는 곧 '살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삶'이 곧 '사람'이다. '삶'이라는 추상은 '사람'이라는 구체성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가슴 뛰는 삶은 없다. 가슴 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산다는 건 결국 사람이 되어가는 긴 여행길을 걷는 것이다. '살암'으로서 '사람'이란 '삶'과 '앎'이 하나로 일치된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이 둘이 하나로 합해질 때라야 진짜 사는 것이다. 몰라도 안되고, 알되 그렇게 살지 못해도 똑같이 안된다. '앎'이 없는 삶은 어둠 속을 헤매는 소경의 삶이요, '행'이 빠진 삶은 한 발자국도 나아감이 없는 앉은뱅이 인생이다. '사람답다'라는 것은 '삶앎답다'는 말이니 그 삶이 과연 그 앎을 닮았을 때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산다는 것은 눈 떠서 내 길 한번 제대로 가 보자는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이 얼마나 명쾌한 해석이란 말인가. '삶'이란 글자에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을 줄 생각 못 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또한, 알고 있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 또한 진정 사는 것이 아니다. 삶, 산다는 것은 이 모두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줄 수 없다. '삶앎'이 되는 것도 스스로가 해야 될 일이고 사람이 되어 내 길을 걸어가는 것도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목적과 목표가 없는 삶이 과연 부적절한가'라는 의문은 삶의 본질을 미처 깨닫지 못 했을 때 생긴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 채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걸까?' 이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화두다.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전해질 메시지다. 물음에 정해진 답은 없으며 그것을 찾는 것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삶이란 무엇인지 참 지독히도 알고자 했다. 여전히 명확히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아갈 방향은 찾은 듯하다. '삶'이라는 글자에 담긴 진짜 의미를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내 길 한번 제대로 가보는 일만 남았다. 그 여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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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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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미래로 한발 한발 나아갈수록 인류 대재앙의 위험 요소를 떠안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인류의 삶의 더 풍요롭게 해주는 문명의 발전이 도리어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불과 몇 세기 전과 비교해보면 21세기 현대 사회는 몰라볼 정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그와 동시에 현대 문명은 생명을 연장해주었고 편리함을 선사했다. 그런 시대에 갑자기 난데없이 인류의 대재앙이니 파멸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믿을 수 없는 그 사실에 충격 먹을 것이다. 북유럽 독일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크 엘스베르크는 우리가 그 이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 <블랙아웃>는 그 엄청난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경우 인류의 삶이 한순간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2월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이탈리아 북부.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가 벌어지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아무런 예고도 없었던 터라 사람들은 이내 일시적인 정전일 거라 생각하지만 정전 사태는 쉽사리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더불어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정전은 급기야 한 도시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다. 그런 와중에 각 유럽 국가에 전력을 공급하는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에 이른다. 원인 모를 정전 사태로 인한 블랙아웃은 유럽 전역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편, 과거 해커로 활동했었던 이탈리아 IT 전문가인 피에로 만자노는 자신의 집에 장착된 전력계량기인 스마트 그리드 전력계량기에서 정전 사태의 원인을 발견한다. 전력계량기에 등록되지 않은 이상한 신호를 감지해낸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유럽의 대테러 본부에 알리지만 과거 자신의 해킹 경력을 문제 삼아 용의자로 몰리게 된다.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정부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그는 가까스로 타임스 취재기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블랙아웃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며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든다. 식량부족으로 생존을 위해 사람들은 약탈과 범죄를 일삼는다. 사상 초유의 대재앙 앞에서 인류는 무력하기만 하다. 과연 블랙아웃은 해결될 것인가? 미래를 향한 인류의 처철한 싸움이 시작된다.

전 유럽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정전 사태, 블랙아웃. 200년 개봉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다이하드 4.0>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사태는 '파이어 세일'이었다. 파이어 세일이란 국가 기반 시설에 대한 사이버 테러리스트의 3단계에 걸친 체계적인 공격으로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이버 공격이다. 교통기관 시스템 마비가 1단계, 금융망과 통신망 마비가 2단계 그리고 마지막 3단계로 가스, 수도, 전기, 원자력 체계의 마비가 그것이다. 소설 <블랙아웃>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는 파이어 세일의 최종 단계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실로 엄청난 대재앙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전기 에너지. 현대 사회에서 전기 에너지가 없다면 과연 이 사회가 얼마나 유지될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에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의식주와 깊은 연관이 있다. 퍼뜩 생각했을 때 밥 먹고 샤워를 하고 따뜻한 집에서 편안히 잠을 자는 것이 전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과거 전기가 없던 시대에도 잘 살았는데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전기가 없던 그 시대가 아니다. 현대 사회는 한순간도 전기 없이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을 오래도록 보관하려면 냉장시설이 필요하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전기다.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려면 상하수도 시설이 가동되어야 한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전기다. 집안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은 난방시설이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전기다. 이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전기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만약 소설처럼 사상 초유의 블랙아웃 사태가 벌어진다면 사람은 살 수 없다.

전 유럽의 전력망은 미래에 스마트 그리드 전력망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한다. 국내에도 스마트 전력계량기가 일부 사용되고 있다. 복잡한 전력망을 손쉽게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스마트 그리드는 필요하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이는 실제로 유럽 전력망에 스마트 그리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내용이라고 한다.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은 논의되고 있다. 단순히 허구라고 하기엔 실현 불가능하지 않은 블랙아웃 사태. 다가올 미래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될까. 최근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에 발맞춰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고 국내에도 인공지능 분야 산업에 박차를 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이런 움직임에 항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여온다.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삶이 윤택해지겠지만 부작용 또한 못지않을 것이다. 소설 <블랙아웃>는 우리에게 이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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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퀸 : 적혈의 여왕 1 레드 퀸
빅토리아 애비야드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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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은 모두에게 주어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이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특별히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권리라면 계급은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주어지는 의무다.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함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 그 무엇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우선순위 적절하게 분배되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 균형감을 상실했을 경우엔 돌이킬 수 없는 카오스 상태가 되어버린다.

만약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가 태어날 때부터 숙명처럼 주어진다면 어떨까. 절대 바꿀 수 없는 내 몸에 흐르는 피의 색으로 구분된다면.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은혈과 적혈. 은혈은 지배계급으로 뮤턴트와 같은 초능력을 지닌 존재다. 그와 반대로 적혈은 당신과 나처럼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피지배계급. 노동자. 노예. 모두 적혈을 일컫는 말들이다. 적혈의 삶은 은혈의 생존과 안락함을 위해 존재한다. 은혈을 위해 일을 하고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는다. 너무나 뚜렷하게 나누어져버린 계급 사회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아이러니함은 존재한다. 그녀가 바로 레드 퀸, 적혈의 여왕이다.

매어 배로우. 그녀는 적혈이다. 은혈들을 위해 힘든 노동을 하고 전쟁을 하는 피지배계급. 그녀는 단지 그들처럼 평범한 17세 소녀에 불과하다. 남다른 점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소매치기 능력이랄까. 적혈인 그녀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생존 수단이다. 그녀에겐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가 있다. 킬런 워렌. 어릴 적 부모를 잃은 그를 따뜻하게 보살펴준 사람이 바로 그녀다. 그때부터 그 둘은 늘 함께였다. 어느 날 킬런이 견습생으로 있던 어부가 사고로 죽게 되어 징병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킬런을 구하기 위해 은혈들의 도시로 잠입하는 매어. 그녀는 그곳에서 값비싼 은혈들의 물건을 훔치려고 하지만 도리어 동생 지사의 한쪽 손을 잃게 만든다. 낙담한 그녀 앞에 돌연 나타난 의문의 사내. 그 사내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이 낯선 만남으로 후 그녀는 은혈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이 만났던 낯선 사내는 차기 왕위 계승자였던 왕자 칼 캘로어였던 것이다. 그의 배려로 왕궁에서 하녀로 일하게 된 것도 잠시 왕자비를 뽑는 대회에서 자신도 몰랐던 숨겨진 초능력을 깨닫게 된다. 적혈이면서 초능력을 가진 그녀를 감추기 위해 은혈의 왕은 그녀를 둘째 왕자 메이븐 캘로어와 혼인 발표를 하게 된다. 적혈인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은혈로써 살아가기 위한 아슬아슬한 삶이 시작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가족과의 이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왕세자 칼 캘로어에 빠져든다. 그러나 적혈인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고 은혈에 반기를 드는 반군 세력인 진홍의 군대와 접촉을 시도하게 된다. 마침내 진홍의 군대의 일원이 되어 은혈들에게 반격을 시도하기에 이르는데... 과연 적혈의 여왕인 그녀는 진홍의 군대와 함께 은혈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또 한편의 장엄한 판타지 로맨스 대서사극이 탄생했다. 작년 말에 읽었던 <레드 라이징>과 형제 격인 소설이다. 색과 피로 구분되는 계급 사회, 최하위 계급이자 피지배자인 레드와 적혈의 반란, 신분을 숨긴 채 적의 심장으로 뛰어든 주인공, 신분이 다른 계급의 주인공들의 로맨스, 총 3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젊은 신예 작가의 데뷔작인 점까지. 두 소설을 모두 좋아하는 독자로서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토록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작품에서 느끼는 재미는 다르다. <레드 라이징>이 레드 계급의 투쟁과 혁명의 성격이 강한 반면 <레드 퀸>은 그와 더불어 로맨스가 한층 더해졌다고 해야 될까. 칼과 매어의 로맨스를 보고 있자면 <트와일라잇>의 두 주인공의 로맨스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은혈의 남자 주인공 칼은 뱀파이어인 에드워드를 연상케 한다. 뱀파이어의 창백하고 차가운 피부가 은혈과 묘하게 어울리기 때문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긴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꼈다. 적혈의 신분을 숨긴 채 은혈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동생의 약혼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끌리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첫 키스를 나누던 장면에서. 진홍의 군대와 함께 은혈의 왕궁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이제는 반대로 은혈인 칼이 적혈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1편에 이어 출간된 2편 <레드 퀸 : 유리의 검> 또한 초판 500,000 부수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 5월 출간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3편 <레드 퀸 : 잔혹한 왕관(Cruel Crown)>까지도. 3편까지 매어와 칼이 진홍의 군대와 함께 어떤 싸움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더불어 적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도 어떤 과정을 거쳐 결말에 이르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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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독서의 힘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고정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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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개인적인 노력 때문일까.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들을 많이 읽게 된다. 부러 내가 찾아서 읽기도 한다. 그 이유는 예전에 비하면 책을 정말 많이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알지 못한 까닭이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다못해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 차원 높은 나를 위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내 마음을 채우진 못하는 듯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희로애락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맞는 말이고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 삶이 결국 희로애락의 순환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은 지워버리기 힘들다. 그래서 아마도 계속해서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그 무엇을 위해 조언을 얻고자 책을 통해 변화된 선배들의 책을 찾아 읽는 듯하다. 지금의 이 책 또한 그런 의미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일단 책 제목부터가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는다.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건가. 궁금증을 일으킨다. 더구나 책 소개 카피 문장은 이를 더욱 증폭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앞으로 세상은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계층 사회가 된다.' 이 얼마나 섬뜩한가. 아니, 충격적인가. 책을 읽어야지 스스로 되뇌기만 할 뿐 실천을 못 했던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과연 저자가 생각하는 독서로 비롯되는 계층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또한,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 과연 나에게 어떤 이득이 생기는 걸까. 책 읽을 시간조차 없이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절실한(?) 이유가 필요할 듯하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두 가지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두 가지 힘이란 바로 집중력과 균형감각이다.

집중력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꼭 필요한 능력이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회사에는 두 부류의 직장인이 있다. 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량을 정해진 업무시간 내에 끝내고 일찍 퇴근을 한다. 반면 다른 사람은 자신의 업무량을 정해진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한 채 매일같이 야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주어진 업무를 다 처리하지 못한 채 내일 업무에 가중되고 만다.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개인적인 업무처리능력이 다를 수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집중력이다. 정해진 시간 내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일수록 집중력이 높다. 그렇지 않을 사람일수록 집중력이 낮고 업무처리를 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불필요한 잡무에 시간을 허비한다. 독서를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주변 환경에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책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은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할 줄 알고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한다. 이것은 비단 의사결정의 순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적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게 되면 다양한 사회 문화와 가치관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보다 넓은 시각을 갖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매년 20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1000회 이상의 강연을 해오고 있다. 책 속에는 단순히 독서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만 논하지 않고 저자 본인의 경험도 담겨있다. 책을 통해 어떤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대학 시절 동경하던 선배의 책꽂이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을 발견했던 이야기. 비록 병을 얻었지만 그 기회를 독서하는 시간을 삼았던 이야기. 책을 통해 얼마든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살고 지금 이 시대는 정답이 없는 시대다. 그런 불확실한 사회에서 우리가 자존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독서밖에 없다. 편협적인 독서가 아닌 열린 독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맞는 독서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독서 방법에는 정도가 없다. 저자가 소개하는 다양한 독서법을 통해 자신에게 알맞은 독서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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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문장 -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한귀은 지음 / 홍익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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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결정.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다.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그릇된 판단으로 인한 순간의 선택과 결정은 남은 인생을 좌우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주위의 조언과 충고도 그러한 결정에 도무지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결국 그 선택과 결정의 몫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올바른 선택과 결정을 하기 위해서 도움받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있다. 책을 펼치는 것이다. 책 속에 문제의 해답이 담겨 있다. 아무 책이나 내게 그런 영향을 미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가령 사랑의 아픔을 겪는 이에게 과학적 지식이 가득 담긴 책은 그저 두꺼운 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저자가 쓴 책이라면 어떨까. 지금의 아픔을 극복하고 한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문장들로 그득한 책이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글들이 바로 그럴 때 적합한 문장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록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만끽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앎에 대한 갈구든 단순한 향락이든 그 무엇이 되었건 중요치 않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그것은 우리 인간의 희로애락의 범주 안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경험을 먼저 한 이들의 글을 읽음으로써 공감을 얻고 만족감을 느낀다. 이것에 책을 읽는 것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행복, 관계, 위기와 회의, 사랑과 이별, 나이 듦, 일상의 사물, 숙명. 어느 것 하나 우리네 인생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필요 없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 생각해본다면 각각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성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희로애락이다. 그 안에서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선택과 결정의 순간 도움이 되는 책과 그 속의 문장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나를 돌아보는 아니, 나를 찾아가는 여정일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 삶은 자기 자신으로의 회기적 삶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로부터 끝맺는다. 귀결적 삶. 우리의 역할은 그 유한한 삶 안에서 나름의 희로애락을 찾는 것일 따름이다. 남성 독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자의 문장>은 동반자적이다. 내 이야기이면서 나와 인생을 함께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 속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혼자만의 삶을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고 나에게 찾아오는 위기 또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자가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이 숙명이라면 남자는 그들을 이끌어나가는 리더로서의 숙명을 짊어진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여자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라는 부제목은 곧 가족의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고 난 후 느낀 것은 바로 그렇다. 저자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책을 통해 느끼고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자기만의 색깔을 입혀 자신의 또 다른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그 책을 읽는 우리는 좀 더 나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을 듯하다. '텍스트의 문장이 진실이 되는 때는 그것이 읽는 이의 삶과 만났을 때뿐이다.' 과연 이 텍스트 외에 어떤 텍스트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까. 여성 작가들의 문학작품과 그 외 인문학자인 저자의 텍스트가 어우러져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새로운 텍스트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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