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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 ㅣ 리더스 클래식
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7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11월에 대한민국에 '정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을 정도로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그렇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 주인공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때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려보면 사실 조금 의문이 든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을 한 것일까. 정말 특별히 누구라 할 거 없이 어디를 가든 한두 명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그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의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비리, 대기업들의 불공정성, 한국사 국정화 논란, 세월호 참사 등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정말 참담한 일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탈을 쓰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유민주주의 탈을 쓴 썩어빠진 헬조선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정의'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보다 앞서 20여 년을 정의에 대해서만 연구하고 쓴 존 롤스의 <정의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존 롤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수십 년간 '정의'라는 단 하나의 문제만을 깊게 파고든 '단일 주제의 철학자'로 유명하다. 1971년 <정의론>이 출간되기 전 존 롤스가 발표한 논문들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58년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시작으로 그 후 <분배적 정의>, <시민 불복종>, <정의감> 등의 꾸준히 '정의'라는 주제를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후 출간된 <정의론>은 이전의 논문들에서 밝힌 그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의론>이 발표된 이후 전 세계는 세기의 대작이라 평가할 정도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의론>은 철학적 전통을 살려 냄과 동시에 사회과학적 측면의 다양한 자료들에 입각함으로써 현실적인 관점이 더해져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역시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정의론>보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중적으로 좀 더 읽기 쉽게 쓰였으며 그 안에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함께 보며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해박한 해설을 같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존 롤스의 <정의론>을 다시 읽어봐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2014년을 기점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의로움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을 해보자. '정의란 무엇인가?' 알고는 있지만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중 하나다. 막연하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잘라 정의(定義) 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의에 대한 기준이 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주위에는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은 물론 든든한 재력까지 갖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타고난 자질과 사회적 지위에 따른 그들 무리의 제약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계획한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사회적 여건을 자유롭게 활용하는데 사회적으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으며 경제적 자유도 보장되어 있다. 비슷한 인생을 설계한 다른 이들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데 어려움이나 무리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경제적 바탕에 재능을 살려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출세의 길이 열린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천부적인 재능과 재력을 모두 갖춘 삶을 갖고 있는 이들도 스스로 선택한 삶은 아니다. 말하자면 자연적으로 주어진 삶이다. 그렇다면 그런 자연적인 조건을 갖춘 이들과 그렇지 못한 우리가 같은 꿈을 위해 나아간다고 했을 때 부족한 우리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가 마련된다면 어떨까. 또한, 자연적 조건을 갖춘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과 재력을 사용한다면 어떨까. 그로 인해 동일한 꿈을 꾸는 이들이 비슷한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다. 그렇다면 이 경우엔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정의론>에 의하면 전자의 경우를 자연적 자유 체제라 하고 후자를 자유주의적 평등 체제라 할 수 있다. 자연적 자유 체제는 다른 말로 애덤스미스적 자유 체제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19세기 신자유주의 사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효율성의 원리와 형식적인 기회균등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효율성과 형식적인 기회균등이 과연 모든 이에게 이득이 되는 정의로운 배분일지 의문을 갖는다. 그는 형식적인 기회균등이 아닌 실질적인 기회균등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나 계층에 상관없이 재능, 의사, 의욕, 열의가 동등한 자에게는 교육을 비롯한 취업, 인생 설계도 동등하게 보장되는 자유주의적 평등 체제를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의로운 것인지 의심스럽게 된다. 그 이유는 개인들의 타고난 자질을 자연적 또는 사회적으로 평준화하거나 조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평등 체제 또한 이와 같은 불완전성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결국 적어도 현재의 우리에게 바람직한 전략은 자연적 자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사회적 여건을 재편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자연적 변수들을 원격 조정하는 것이다. 그 예로 유아 질병을 예방하는 공공 위생과 환경을 마련하거나 임신 중 의료 보호, 기아 상태 및 영양실조를 구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도는 자연적 변수(유전적 자질, 신체 구조, 건강, 지능, 성격)의 차이를 최소화시킨다. 이것을 <정의론>에서는 공정한 기회균등에 의한 정의로운 체제 즉, 민주적 평등 체제라 부른다.
정리하면 자연적 자유 체제, 자유주의적 평등 체제 그리고 민주적 평등 체제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한 체제 이행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존 롤스가 <정의론>을 통해 주장하는 정의는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특별한 재능과 재력을 없애거나 평준화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공정한 기회균등을 통해 모든 이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체제를 편성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최소 수혜자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 자유주의라 할 수 있고 사회주의적 비판에 함축된 도덕적 의미를 충분히 참작한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즉, 차등의 원칙으로 인해 천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빈곤한 계층일지라도 가능한 한 최고의 인생 전망을 보장할 것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공정한 기회균등은 '재능이 있으면 출세할 수 있다'라는 식의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을 능가한다. 이는 보상적 교육의 실시와 경제적 불평등에 한계를 요구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부문에 걸쳐 유사한 동기와 자질을 가진 모든 이에게 교양과 성취를 위해 거의 평등한 전망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기회균등을 넘어 공정한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롤스 정의론에 함축된 고유한 주장이다.
나아가서 롤스는 개인의 지능이나 능력을 고정된 자연적 혜택으로만 볼 수 없으며 사회의 기본 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물론 불가피한 유전적 요소가 있기는 하나 능력과 재능은 사회적 조건과 관련짓지 않고서는 그 잠재적 가능성이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실현된 능력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조차도 무한한 가능성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의에 대한 개념 또는 의의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될 듯하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나마 내가 알고 있던 정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가진 환경 안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만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50여 년 전 미국의 한 철학자는 그것조차도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진정한 정의란 이 사회에서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이 아닌 최소 수혜자를 기준으로 정의를 생각했던 것이다. 즉, 최소 수혜자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차등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균등을 통해 모두에게 사회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의. 바로 이것이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물론 그의 주장만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의론>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모두에게 합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의가 최소한의 사랑이라면 사랑은 정의의 완성이다"라고 이 책의 필자는 말했다. 우리가 <정의론>이나 <정의는 무엇인가>를 통해 올바른 정의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 실현이다. 아무리 뛰어난 이론과 사상도 그것을 바탕으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과 다름없다. 50여 년 전 존 롤스가 <정의론>을 쓴 이유도 어쩌면 앞으로 도래할 우리 사회에 그가 품은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랐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