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한민국 - 변화된 미래를 위한 오래된 전통
심광현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부산까지 이어진다는 동해의 해안도로를 달렸다. 일행은 흥에 겨워 떠들어댔지만 초행에 밤길을 가야 하는 기사는 숱하게 핸들을 꺾고 이정표를 살피며 진땀을 흘렸다. 내심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구불거리는 길에 투덜거렸다. 어느 여름날 치악산에서 내려온 두 갈래의 계곡물이 합류해 소용돌이 치는 장관을 보고 필자는 흥겨운 충격을 받는다. 소박함, 한(恨), 신명에서 한국의 자연과 예술, 문화의 원류를 찾던 과거의 답변에 만족하지 못했던 필자에게 '프랙탈'이라는 압축된 해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본다는 행위에는 언제나 보는 행위를 통제하는 생각의 '체' 같은 것이 있어서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는데도 실은 다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준다. (p.19)'
구불거리는 길과 계곡물이 불평거리가 되기도 하고 시각을 바꿔 문제를 풀어내는 중대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생각의 '체'는 이처럼 전혀 다른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필자는 한국의 문화와 예술, 자연경관을 서양의 유클리드 기하학의 '체'가 아닌 '프랙탈 흥의 미학'으로 구현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분이 전체와 같은 자기상사구조를 가지는 무한의 겹쳐짐 구조'를 의미하는 프랙탈(fractal) 구조와, 한(恨)도 자연스러운 미도 신명이나 풍류도 아닌 흥(興)이 결합된 프랙탈 흥의 미학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사와 풍류, 생태미학을 말한다. 자연을 벗한 생활에서 배어난 흥의 문화를 통해 문학과 회화와 건축, 음악을 풀어낸다. 더 나아가 필자는 탈근대과학의 관점에서 고도의 생태가치를 지닌 세련된 문화를 발굴하여 새로운 문예부흥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문화컨텐츠가 경제로 직결되는 문화경제시대에 예술과 인문사회과학과 문화컨텐츠 산업이 '제대로' 맞물려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책의 앞머리에 인용된 백범 김구(<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의 일부이다.
짧은 생각이지만, 문화산업과 한류의 중요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의 결론보다는, 백범의 이 인용문에 더 고개가 숙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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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5-05-2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소시적에 읽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그 글에 한 표!

2005-05-21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룸 2005-05-2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웃~ 걱정하시더니 금세 다 읽고 리뷰까지!! ^^
음...암튼 저도 김구선생님 말씀에 올인!!

▶◀소굼 2005-05-2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저도 문화강국이 더 와닿더라구요. : ) 봐도 봐도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