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건축 -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3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3
김석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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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마치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패키지여행이 유명한 여행지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지나가 훗날 돌아보면 그곳을 다녀왔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듯, 이 책도 초보자들에게 유명한 현대 건축가에 누가 있고 그들의 대표작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정도에 머문다. 물론 패키지여행도 가이드를 잘 만나면 그곳이 왜 유명한 여행지인지, 그곳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나중에 그곳을 다시 찾는다면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할지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불행히도 가이드가 썩 훌륭한 것 같지 않다.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필자가 추천하는 건축이 왜 좋은 건축인지, 필자가 그 건축을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필자의 확고한 입장이 책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화려한 형용사와 감탄사 속에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설득력이 부족하고, 필자는 전혀 다른 건축 앞에서도 동일한 감탄을 늘어놓는다. 한 마디로 인문학적 사유와 비판적 소화가 부족하다.


그나마 책의 장점은 저렴한 가격에 유명한 건축물들의 사진을 접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허나 도판 또한 책의 내용과 유기적으로 얽히지 못해 독서를 방해하고 있다. 필력이 부족한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적어도 이 책에서 필자의 역할은 건축가가 아니라 문장으로 독자를 설득시켜야 하는 문장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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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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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면 우선 독자로서 저자의 스케일과 지성에 압도되고, 이어 초라한 개인으로서 역사의 거대한 무게에 압도된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책의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고, 대신 에필로그에 드러난 저자의 제안에 착안해 내 나름대로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더할까 한다.


먼저 저자가 다루는 지리적 공간을 한정시켜 동아시아의 역학 관계를 저자의 틀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동서반구가 충돌했을 때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의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그 반대가 되었을까" 하는 질문 대신 "동아시아 문명을 지배했던 중국이 왜 지금은 일본과 한국의 뒤를 쫓는 처지로 전락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더 작은 지리적 규모와 시간적 규모를 연구할 것을 제안하면서 문명의 중심지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한 것에 주목했는데, 이런 논리를 동아시아의 권력 관계와 지리적 차이, 서구와의 교류의 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는다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미 이런 연구가 있다면 누구든 내게 알려주기 바란다.)


또 하나는 인류 문명 발전에 적용된 생태적, 지리적 유리함을 개인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유라시아 문명의 우세가 저자의 말대로 "그저 운이 좋아" 이뤄진 것이라면 개인의 성취도도 그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가능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위인전들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이상화하도록 훈련받았지만, 사실 많은 창조적 인물들은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충분한 교육을 받아 그 잠재력이 개발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왜 위인들은 전부 서양인들인가 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개인의 창조성과 제도적 자본의 관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연구 또한 진행되고 있다면 누구든 내게 알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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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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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세밀화 표지가 인상적인 <내 이름은 빨강>은 작가인 오르한 파묵이 금년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은 작품이자 요즘 각광받는 트렌드인 역사 추리 소설이다. 한마디로 문학성과 재미를 보장한다는 뜻일 테다. 16세기 말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금박 세공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먼저 죽은 자가 말을 꺼내고, 이어 12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자, 그가 사랑하는 여인,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차례로 자신의 사연을 전한다.

이 소설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롭지만 가장 주목할 것은 역시 독특한 형식이다.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이야기가 서술되며, 화자에는 인물들 외에 개, 나무, 금화, 빨강, 악마도 포함된다. 크게 보아 소설은 남성적인 세계와 여성적인 세계로 나눌 수 있다. (터키어가 존댓말과 예사말 표현으로 구분되는지, 성에 따라 어법이 달라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서에는 남성이 화자인 경우는 예사말로 여성이 화자인 경우는 존댓말로 표현되어 확연한 분위기 차이를 보여준다.) 남성적인 세계는 서두의 살인 사건을 따라 궁중 화원의 생활과 페르시아 화풍과 베네치아 화풍의 대립으로 이어지고, 여성적인 세계는 한 미인을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슬람 사회의 생활상과 다양한 인간적 감정들을 펼쳐놓는다. 따라서 이 작품은 포스트모던의 특징이라 부를 만한 다중시점에 정치적, 시대적, 문명적 서사와 풍속적이고 개인적인 내면 묘사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이 얼마나 포용력 있고 유연한 양식인지, 서사 구조의 가능성이 얼마나 풍부한지, 역사 추리 소설이 <장미의 이름>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문명의 충돌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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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 코드 - 바그너와 철학
브라이언 매기 지음, 김병화 옮김 / 심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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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전곡 초연에 때맞춰 많은 바그너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책은 <트리스탄 코드>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인물은 바그너가 아니라 저자인 브라이언 매기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딱딱한 철학을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학자다. BBC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가진 대담을 엮어낸 책을 비롯하여 그가 쓴 저술들이 국내에도 몇 권 소개된 바 있지만 사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널리 읽혀져야 할 인물이다.

철학 전공자가 저자인 만큼 이 책은 바그너에 영향을 준 철학 사상들을 살펴보는 데 집중한다. 바그너만큼 당대의 사상에 능동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것을 자신의 예술로 소화해낸 작곡가도 없으며, 특히 그 자신이 혁명가이자 문필가이기도 했던 까닭에 그가 관심을 가진 철학 사조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혹시라도 바그너가 심취한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그의 음악의 관계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향해 브라이언 매기는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그너는 딜레탕트 수준이 아니라 대단히 진지하고 심오하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이해했으며, 그가 없었다면 아마 니체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바그너의 삶을 청년 바그너와 후기 바그너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시절 바그너는 사회 변혁의 희망을 품고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한 몽상가였고, 후기에 이르면 이런 희망에 회의를 느끼고 형이상학에 몰두하게 된다. 청년 독일단 시절의 라우베를 시작으로 바쿠닌, 포이에르바흐를 거쳐 쇼펜하우어, 니체에 이르는 그의 지적 동반자들 중 이런 변화의 갈림길에 위치한 인물은 물론 쇼펜하우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에서 가장 흥미롭고 모순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바그너 인생에 분수령이 된 1854년이 <반지> 작업의 중간에 놓이기 때문이다. 즉 그해 이전에 음악까지 모두 완성된 <라인의 황금>은 종합예술작품의 이념에 가장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만년의 <신들의 황혼>에 이르면 음악이 예술의 중심이 되는 교향악적 악극의 모습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그너가 <파르지팔> 이후에 계획했던 교향악 작품은 텍스트 없는 단악장의 긴 교향시가 되었을 것이라고 브라이언 매기는 말한다.

책의 또 하나의 축은 바그너에 관한 편견을 해명하는 것이다. 바그너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히틀러와 관련된 부분과 반유대주의 혐의, 그리고 <파르지팔>에서 바그너가 기독교로 귀의했고 그 때문에 니체와 결별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오해들을 해명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다소 편향적인 면을 드러내는데, 나는 오히려 이것이 이 책의 독서를 더 친근하고 편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이 가장 장점으로 발휘되는 대목은 니체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이다. 니체가 바그너라는 거대한 지성에 매료되고 그로부터 돌아서기까지 겪은 심리적 변화를 정신분석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이를 통해 니체와 바그너는 내게 대단히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인물로 다가왔다.

바그너는 젊은 시절에 자신의 예술을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았지만 중년 이후 세 가지 큰 행운을 잡았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이, 형이상학적 전환에 토대를 마련해준 쇼펜하우어를 접한 것이고, 둘째는 일생의 후원자가 된 루드비히 2세를 만난 것이며, 마지막은 자신의 지성을 나눠줄 니체를 만난 것이다. 인생의 선배와 후원자와 후배. 그는 만년에 이 모든 것을 가졌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줄 사상가를 만났고,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주고 실현시켜 줄 후원자를 만났으며, 자신과 지적 토론을 벌일 후배를 만났던 것이다. 문화적으로 이렇게 창조적이고 행복한 만남이 또 있었을까. 이것은 내가 바그너를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점이다.

<트리스탄 코드>가 국내에 나온 바그너 관련 서적 가운데 첫손에 꼽힌다는 의견에는 이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바그너라는 복잡하고 모순된 개성을 가진, 그리고 숱한 편견과 오해에 둘러싸인 인물의 삶을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분명하다.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이 책을 읽고 바그너에 공감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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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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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대학들이 일제히 방학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떠난다. 이때 이들을 겨냥해 기획된 여행서들이 집중적으로 출간되는데, 요즘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주제를 잡아 여행하는 것이 트렌드다. 그래서 유럽의 미술관과 건축물을 테마로 한 여행서,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 나오는 도시들을 둘러보는 여행서들이 많이 나와 있다.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 역시 색다른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음악과 관련된 유서 깊은 유럽 도시들을 소개한 책은 몇 권 있었지만 이렇게 음악 페스티벌에 집중한 책은 없었다.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더할 수 없는 선택이다. 십 년 이상 해마다 유럽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을 접한 저자가 꼼꼼하게 기록한 이 책에는 페스티벌에 관한 온갖 정보가 들어 있다. 페스티벌의 유래와 최근의 동향과 실용적인 정보는 물론 시원시원한 사진과 인근 도시에 대한 여행 정보까지. 페스티벌 선정도 유명한 블록버스터급에서 최근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후발주자들까지 골고루 안배되었다. (한 가지 의문, 영국의 페스티벌은 왜 빠졌을까?) 물론 이 책은 책을 들고 유럽의 축제 현장을 돌아다닐 여행객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꼭 현장에 있어야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은 아니며 책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유럽의 문화적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까.

정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아쉬움을 표하자면 그건 티켓 구매에 관한 사안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공연의 티켓을 현장에서 운 좋게 구한 것으로 자랑스레 말하는데,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유럽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물론 현장에서 표를 구할 수 있는 몇몇 방법이 소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운만을 믿고 현장에 달려갔다가 하루를 날린다면 그보다 더 낭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저자처럼 현지 호텔의 단골이 되어 벨보이와 친분을 쌓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 나온 김에 아쉬움을 더 들겠는데, 저자는 고급문화 향유자로서의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유명 관광지나 둘러보는 일반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를 책 곳곳에 드러낸다. 바이로이트에서 어학연수를 받으면서도 바그너 축제에 대해 모를 수 있다. 그것이 뭐가 어떤가.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바이로이트는 성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유럽의 소도시일 뿐이다. 만약 맨체스터를 여행하면서 올드 트라포드를 둘러보지 않은 저자에게 축구팬이 쓴소리를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축구는 그저 오락일 뿐이고 클래식은 문화라고 답할 것인가.

정보에 치중하는 책으로서 갖는 한계도 있다. 최근 들어 유럽에 음악 페스티벌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가장 큰 원인은 클래식 문화 전반에 팽배해 있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책에 실려 있는 사진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젊은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유럽에서 클래식 소비층의 편향은 심각한 문제이고 여기에 음반 시장의 침체까지 더해지면서, 시즌 중의 레퍼토리를 재활용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 좋은 돌파구로 떠오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꾸준히 늘고 있는 유럽의 관광객들을 겨냥한 면도 있다. 또 하나 클래식 공연이 이렇게 국경을 넘어 소비되고 재활용되면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이 나름의 특색을 잃고 다들 비슷비슷한 소리를 낸다는 역효과도 있다. 이런 비판적인 논의들을 곁들이고 페스티벌을 어떻게 기획하고 국가나 도시가 지원하는가 하는 정책적인 면이 소개되었다면 훨씬 값어치 있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혹시나 이 책 때문에 클래식 음악은 돈과 여유가 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취미라는 편견이 굳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건 물론 저자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문화의 소비층을 늘리기 위해서는 고급문화의 대중화 문제와 더불어 대중들의 의식적인 노력도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유럽의 음악축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분명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이지만, 책을 덮고 난 다음에 여러 감정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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