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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나면 우선 독자로서 저자의 스케일과 지성에 압도되고, 이어 초라한 개인으로서 역사의 거대한 무게에 압도된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책의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고, 대신 에필로그에 드러난 저자의 제안에 착안해 내 나름대로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더할까 한다.
먼저 저자가 다루는 지리적 공간을 한정시켜 동아시아의 역학 관계를 저자의 틀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즉 "동서반구가 충돌했을 때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의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그 반대가 되었을까" 하는 질문 대신 "동아시아 문명을 지배했던 중국이 왜 지금은 일본과 한국의 뒤를 쫓는 처지로 전락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더 작은 지리적 규모와 시간적 규모를 연구할 것을 제안하면서 문명의 중심지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한 것에 주목했는데, 이런 논리를 동아시아의 권력 관계와 지리적 차이, 서구와의 교류의 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는다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미 이런 연구가 있다면 누구든 내게 알려주기 바란다.)
또 하나는 인류 문명 발전에 적용된 생태적, 지리적 유리함을 개인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유라시아 문명의 우세가 저자의 말대로 "그저 운이 좋아" 이뤄진 것이라면 개인의 성취도도 그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가능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위인전들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이상화하도록 훈련받았지만, 사실 많은 창조적 인물들은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충분한 교육을 받아 그 잠재력이 개발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왜 위인들은 전부 서양인들인가 하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개인의 창조성과 제도적 자본의 관계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연구 또한 진행되고 있다면 누구든 내게 알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