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파울 베커 지음, 김용환 외 옮김 / 음악세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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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에 대해 책을 쓰는 가장 무난한 방법은 백과사전의 항목처럼 집필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케스트라를 주인공을 내세워 일종의 일대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바이올린 제작을 기점으로 하이든에 이르러 근대 오케스트라가 탄생하고 베토벤에서 일단락된 후, 바그너로부터 확대되기 시작하여 말러, 슈트라우스에서 최고조에 달한 뒤 해체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여기에 시민 계층의 등장, 공공 연주회, 지휘의 독립 같은 맥락이 더해지고 악기 메커니즘의 발전이 설명된다. 무난하면서도 모범적인 서술이다.

파울 베커는 작곡가들의 양식적 특징을 들면서 역사적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나라별 특징,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오케스트라 음향의 차이를 추적한다. 주목할 것은 오케스트라의 발달 경로를 콘서트용과 오페라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그는 고전, 낭만 시대의 음악사를 두 가지 분야가 서로 대립하고 엇갈리고 영향을 주는 역사로 파악한다. 그래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오케스트레이션의 특징을 비교하고 베버와 마이어베어를 높게 평가하는 대목은 무척 인상적이다. 한편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시벨리우스가 많은 지면을 차지하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민족주의 음악가들을 서구화에 방점을 두고 설명하는데, 자국의 전통을 좀더 비중 있게 서술했더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아쉬움은 역시 오래된 책(1936년 초판)이라는 점이다. 책의 가치를 꼭 연도로 매길 수는 없겠지만, 이후 중요한 오케스트라 분야의 혁신이 누락되어 어딘지 허전해 보인다. 좀더 최근에 집필되었더라면 쇼스타코비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말러도 훨씬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레코딩의 등장으로 인한 교향악단의 위상 변화, 그리고 원전 악기의 부각도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졌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번역이다. 내용 자체가 전공자들을 겨냥한 책이라 일반인들이 읽기가 부담스럽지만,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 할 번역은 외려 책을 거의 암호문으로 만들어놓았다(특히 마지막 세 장은 요령부득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힘들여 읽을 가치가 있겠지만, 차라리 업데이트된 새로운 오케스트라 책을 기다리는 것이 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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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 방랑과 뿔피리
김문경 지음 / 관훈기획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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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책이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음악 애호가가 본격적인 말러 해설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건이 아닌데다 음악 분석 또한 평범한 수준을 훌쩍 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곡가의 생애와 음반 리뷰를 앞뒤에 두고 말러의 초기 교향곡 세 작품을 분석한 이 책은 분명 애호가들에게는 기쁨을, 학자들에게는 자극을 줄 성과다.

이 책의 본령은 역시 말러의 음악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대목이다. 적절한 문헌과 악보를 통해, 다른 작곡가의 작품과 말러 본인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말러의 교향곡 속을 효과적으로 헤집고 다닌다. 또한 기존의 분석을 정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절충과 제안도 건네고 있다. 성실한 자료 수집과 꼼꼼한 분석이 잘 뒷받침된 연구인데, 이런 수고가 썩 읽기 편하게 전달되지는 못한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가독성의 문제는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더 두드러진다. 그것은 이 책이 본질적으로 논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여러 문헌을 인용하고 상이한 자료를 대조하고, 판본을 비교하는 과정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몰입을 방해하는 지루한 자료의 나열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문장을 친절하게 풀어쓰려는 노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훨씬 글 읽는 재미가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아쉬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피하고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데, 정작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바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저자는 대체 말러의 어떤 점에 끌려서 그의 음악의 열렬한 팬이 되었는가? 이것은 지엽적인 질문이 아니라 음악 경험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질문이며, 특히 말러처럼 열렬한 팬(말러리안)을 몰고 다니는 하나의 현상인 경우 근원적인 물음이 된다. 왜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에는 이런 현상이 없는데,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의 경우에는 특이한 팬덤이 형성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말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구조, 음향, 아이디어, 그리고 현대성의 논의로 이어져 보다 폭넓은 연구로 발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인 아쉬움에 앞서 우려가 드는 것은 이 미완의 프로젝트가 과연 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좋은 의도가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과연 교향곡 9번의 아다지오 분석을 볼 수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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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화기행 1
위치우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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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와 같은 기행문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어떤 책이든 그렇겠지만 책을 책답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시선. 하물며 기행문이야 말해서 뭣하랴. 위치우위의 <유럽문화기행>은 관광지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 장소가 환기하는 문명의 서사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꼼꼼하게 추적한다. 실로 풍부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통찰, 유려한 필력을 겸비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장중한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의 발걸음이 우선적으로 향하는 곳은 문명의 끝과 시작을 보여주는 장소들이다. 폼페이의 유적지를 찾아가 순수한 '훼멸'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고귀한 인간성을 발견하며,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왕조의 종말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절망의 평화'를 전한다. 또한 신대륙 항해의 발판이 되었던 살라망카 대학과 카보다로카를 둘러보며 유랑의 본질을 성찰하고, 유럽 연합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브뤼셀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화려한 유럽 문명이 꽃피운 시기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를 논하는 대목과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렘브란트를 둘러싼 오해의 설명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역사 수업이 된다. 위치우위가 생각하는 유럽 문명의 힘은 외부에 대해 열린 마음과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소화하는 창조력에 있다. 그래서 온갖 것이 공존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 바르셀로나의 유랑자 대로,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찬 세비야의 골목, 상대방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파리의 카페 문화를 높게 평가한다. 중국의 차(茶) 문화가 영국으로 건너가 전혀 다른 문화로 자리잡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중국인들을 질책(?)하기도 하고, 프랑스 요리사들의 지나친 자부심을 평하며 슬쩍 중국 요리사들의 건강함을 추켜세운다.

독자를 찬찬히 설득시키는 그의 문장의 힘도 마음에 들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시선에 믿음이 갔던 것은 영국 문화의 독특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였다. "프랑스식의 격정과 독일식의 수준 높은 의논이 양쪽에서 수시로 도움을 주고, 끊임없이 의식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박하고 평범한 사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을 별개의 나라로 보는 것은 결코 옳은 사고방식이 아니다."(p.300)

훌륭한 기행문은 여행을 떠나도록 충동하지만, 더 훌륭한 기행문은 역사를 공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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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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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소설에 관한 독자들의 평을 읽어보면 대체로 일관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빛나는 언어 감각과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인정하지만 통찰력이나 사상의 깊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글들이 많다. 내 입장을 말하자면 이런 비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아쉬움을 들자면 독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소설은 작가로서의 강한 자의식이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잡아당기는 식이지 독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즐거움은 많지 않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별난 사람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만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여백과 침묵이 다소 아쉽다.

<오후 네 시>는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에 비한다면 여백과 침묵이 많은 편이다. 매일 오후 네 시에 찾아오는 침묵의 방문객을 통해 자아 성찰, 존재, 인간 관계, 예의 같은 진지한 철학적 주제를 무겁지 않게 건드리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긴장감과 밀도는 여전하며, 여기에 인물의 심리를 계절의 변화에 투영하여 극의 호흡을 조절하는 시적 감수성 또한 발휘되고 있다. 내가 이 소설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주인공들 각각의 성격이 빚어내는 완벽한 연극적 앙상블이다. 한 인물의 성격도 서로의 관계에 따라 새로운 일면을 드러내고, 그에 따라 인물들간의 연대감과 애정이 지형을 달리하는데, 이는 독자들의 공감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절묘한 리듬으로 반영된다.

별 하나를 뺀 것은 이미 그녀의 패턴에 익숙해져서 처음 그녀를 읽었을 때의 충격과 희열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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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 - 블랙 유머와 흰 가운의 의료인들
클로드 세르 지음 / 동문선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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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필요 없다. 그냥 보고만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누구나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한시가 급한 응급 환자를 이송 중인데 앞에 미로가 나타난다면? 수술 중인 환자의 배에서 장난감 용수철이 튀어나온다면? 통통한 엉덩이에 주사 바늘을 찔러넣자 풍선처럼 쭈그러든다면? 클로드 세르는 이런 짓궂은 상상을 기발한 구성과 현란한 그래픽 솜씨로 한 컷에 담아낸다. 그의 유머의 본령은 전혀 다른 맥락을 하나로 겹쳐 놓았을 때, 목표와 수단이 어긋날 때 발생하는 웃음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의 '블랙 유머'는 그다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그의 웃음은 비판이나 풍자, 냉소보다는(물론 이런 점도 있지만) 무해한 즉자적인 웃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컷이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그의 만화는 문화적인 감수성의 차이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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