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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화기행 1
위치우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한 권의 책에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는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와 같은 기행문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어떤 책이든 그렇겠지만 책을 책답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시선. 하물며 기행문이야 말해서 뭣하랴. 위치우위의 <유럽문화기행>은 관광지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 장소가 환기하는 문명의 서사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꼼꼼하게 추적한다. 실로 풍부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통찰, 유려한 필력을 겸비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장중한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의 발걸음이 우선적으로 향하는 곳은 문명의 끝과 시작을 보여주는 장소들이다. 폼페이의 유적지를 찾아가 순수한 '훼멸'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고귀한 인간성을 발견하며,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왕조의 종말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절망의 평화'를 전한다. 또한 신대륙 항해의 발판이 되었던 살라망카 대학과 카보다로카를 둘러보며 유랑의 본질을 성찰하고, 유럽 연합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브뤼셀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화려한 유럽 문명이 꽃피운 시기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를 논하는 대목과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렘브란트를 둘러싼 오해의 설명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역사 수업이 된다. 위치우위가 생각하는 유럽 문명의 힘은 외부에 대해 열린 마음과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소화하는 창조력에 있다. 그래서 온갖 것이 공존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 바르셀로나의 유랑자 대로,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찬 세비야의 골목, 상대방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파리의 카페 문화를 높게 평가한다. 중국의 차(茶) 문화가 영국으로 건너가 전혀 다른 문화로 자리잡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중국인들을 질책(?)하기도 하고, 프랑스 요리사들의 지나친 자부심을 평하며 슬쩍 중국 요리사들의 건강함을 추켜세운다.
독자를 찬찬히 설득시키는 그의 문장의 힘도 마음에 들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시선에 믿음이 갔던 것은 영국 문화의 독특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였다. "프랑스식의 격정과 독일식의 수준 높은 의논이 양쪽에서 수시로 도움을 주고, 끊임없이 의식전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천박하고 평범한 사회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을 별개의 나라로 보는 것은 결코 옳은 사고방식이 아니다."(p.300)
훌륭한 기행문은 여행을 떠나도록 충동하지만, 더 훌륭한 기행문은 역사를 공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