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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 방랑과 뿔피리
김문경 지음 / 관훈기획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책이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음악 애호가가 본격적인 말러 해설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건이 아닌데다 음악 분석 또한 평범한 수준을 훌쩍 넘고 있기 때문이다. 작곡가의 생애와 음반 리뷰를 앞뒤에 두고 말러의 초기 교향곡 세 작품을 분석한 이 책은 분명 애호가들에게는 기쁨을, 학자들에게는 자극을 줄 성과다.
이 책의 본령은 역시 말러의 음악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대목이다. 적절한 문헌과 악보를 통해, 다른 작곡가의 작품과 말러 본인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말러의 교향곡 속을 효과적으로 헤집고 다닌다. 또한 기존의 분석을 정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절충과 제안도 건네고 있다. 성실한 자료 수집과 꼼꼼한 분석이 잘 뒷받침된 연구인데, 이런 수고가 썩 읽기 편하게 전달되지는 못한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가독성의 문제는 작곡가의 생애와 작품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더 두드러진다. 그것은 이 책이 본질적으로 논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여러 문헌을 인용하고 상이한 자료를 대조하고, 판본을 비교하는 과정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몰입을 방해하는 지루한 자료의 나열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문장을 친절하게 풀어쓰려는 노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훨씬 글 읽는 재미가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아쉬워하는 것은 따로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피하고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데, 정작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은 바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저자는 대체 말러의 어떤 점에 끌려서 그의 음악의 열렬한 팬이 되었는가? 이것은 지엽적인 질문이 아니라 음악 경험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질문이며, 특히 말러처럼 열렬한 팬(말러리안)을 몰고 다니는 하나의 현상인 경우 근원적인 물음이 된다. 왜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에는 이런 현상이 없는데,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의 경우에는 특이한 팬덤이 형성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말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구조, 음향, 아이디어, 그리고 현대성의 논의로 이어져 보다 폭넓은 연구로 발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인 아쉬움에 앞서 우려가 드는 것은 이 미완의 프로젝트가 과연 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좋은 의도가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과연 교향곡 9번의 아다지오 분석을 볼 수는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