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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멜리 노통의 소설에 관한 독자들의 평을 읽어보면 대체로 일관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빛나는 언어 감각과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인정하지만 통찰력이나 사상의 깊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글들이 많다. 내 입장을 말하자면 이런 비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아쉬움을 들자면 독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소설은 작가로서의 강한 자의식이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잡아당기는 식이지 독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즐거움은 많지 않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별난 사람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낼 만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여백과 침묵이 다소 아쉽다.
<오후 네 시>는 <살인자의 건강법>이나 <적의 화장법>에 비한다면 여백과 침묵이 많은 편이다. 매일 오후 네 시에 찾아오는 침묵의 방문객을 통해 자아 성찰, 존재, 인간 관계, 예의 같은 진지한 철학적 주제를 무겁지 않게 건드리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긴장감과 밀도는 여전하며, 여기에 인물의 심리를 계절의 변화에 투영하여 극의 호흡을 조절하는 시적 감수성 또한 발휘되고 있다. 내가 이 소설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주인공들 각각의 성격이 빚어내는 완벽한 연극적 앙상블이다. 한 인물의 성격도 서로의 관계에 따라 새로운 일면을 드러내고, 그에 따라 인물들간의 연대감과 애정이 지형을 달리하는데, 이는 독자들의 공감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절묘한 리듬으로 반영된다.
별 하나를 뺀 것은 이미 그녀의 패턴에 익숙해져서 처음 그녀를 읽었을 때의 충격과 희열이 그리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