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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외 옮김 / 소소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言語) 아이러니
* 종전에 "스티븐 핀커(Steven Pinker), 언어본능: 정신은 어떻게 언어를 창조하는가(The Language Instinct: How the Mind Creates Language),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도서출판 그린비, 초판 4쇄, 2003. 5 상하권, 값 각 10,000원" 이렇게 나왔던 책이 "언어본능-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소소"에서 2004. 6. 15 다시 나왔으며, 원래 상하권이 합본되어 한 권에 32,000원이라 한다. 그 놈의 "도서출판 정가제" 때문에 다시 독자들만 12,000원을 더 지불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번역도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안 바뀌었으면 독자를 무시하는 일이고, 만일 바뀌었다면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책을 보신 독자분은 서평 아래의 '코멘트'나 '나의 서재 방명록' 등을 통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아래는 예전의 상권 부분에 대한 글로 지금도 종전 책에 서평으로 붙어 있다. 정작 바뀌어야 될 본문 내용에 대해서는 "신역, 개역" 등의 언급은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얄팍하게 제목만 살짝 바꾸었으니, 서평이 따라가야 되지 않겠는가? '정신'과 '마음', '창조하는가'와 '만드는가'에 차이가 있을까? 새로 나온 책의 페이지 수는 아래와 다를 수 있지만, 워낙 계속해서 이상한 부분이 나오는지라 대조해서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원래 책의 평점에서 하나 깎인 것은 이 번역 때문이라는 점을 부기해 둔다.)
1.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언어학(言語學: linguistics)만큼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문도 드물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며 주로 무엇을 연구하는지 그 성과는 무엇인지, 과연 어디에 쓰이는지에 대해서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언어의 중요성과 사람 사는 모든 분야와의 광범위한 연관성 때문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심지어 의학까지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또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란 이름의 ‘학제간(學際間:interdisciplinary)’ 학문까지 등장하다 보니, 과연 언어학이 고유의 학문으로 성립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난 세기 철학의 흐름마저 ‘분석철학’, ‘언어분석’으로 바꾸어 버린 이 학문의 중요성이 우리나라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은 한국사회의 지적인 타락, 기초과학과 인문학 무시, 교육과 학문에서 조차의 천민자본주의적인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궁금증을 메우는 데에는 언어학에 관한 개설서 종류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보인다. 언어와 언어학의 역사, 언어의 의미와 본성, 언어학의 여러 하위분야(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 등등), 인접 학문(철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신경의학, 인지과학 등등)과의 공동 관심사 및 연구 방향 등을 개괄할 수 있는 책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개설서이기 때문이다.
2. 이 책의 저자는 ‘심리언어학자’이며, ‘아동언어 발달 연구’ 전공이고, 이 책의 4장은 ‘통사론(변형생성문법)’, 5장은 ‘형태론’, 6장은 ‘음성학 + 음운론’, 7장은 다시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이라고 제목을 다시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출판사에서 뭐라고 선전하든 훌륭한 ‘언어학 개설서’라고 해야겠다. 뛰어난 점은 보통 개설서보다 훨씬 풍부하고 최신의 연구결과까지 포함된 내용을 ‘언론인(journalist)’ 수준으로 재미있게 써냈다는 점일 뿐이다. 실지로 저자를 ‘진지한 연구자’라기보다, 일반인들에게 수준 높은 최신과학을 해설해주는 ‘journalist’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이점은 아마존의 서평을 참고하였다). 1950년대 말 촘스키에 의해 시작된 거대한 학문의 흐름을 이 책 원본의 출간년도인 1995년까지 재미있게 정리한 ‘개설서’ 수준에다 대고, “언어학의 대가 촘스키를 뛰어넘는 최신과학, 이제 언어와 정신에 관한 모든 비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합본 전 옛날 책의 앞표지 및 역자의 말)”식으로 선전하는 것은 종교로 치면 조사모독(祖師冒瀆)에 해당하는 불경죄(不敬罪)라는 것을 출판사나 번역자는 알고 있을까? 도대체 개론 수준의 책을 번역 출판하면서 그 무슨 망발인지 모르겠다. 이 점 역시 곧 지적할 ‘엉터리 번역’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감히 언어학을 아는 사람이면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식의 엉터리 번역이 나올 수 없을 것이기에. 우리나라 학자가 쓴 언어학 개설서를 보고싶은 분은 “김진우, 언어: 이론과 그 응용, 탑출판사, 개정판, 2004. 2”이나, 조금 가볍게 접근하고 싶은 분은 ‘언어학’과 ‘영화’의 만남이라 할 수 있는 “강범모, 영화마을 언어학교, 동아시아, 2003. 4”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또 다른 외국의 유명한 언어학자의 책 “조지 밀러, 언어의 과학, 강범모, 김성도 옮김, 민음사”의 원본은 이책보다 앞선 1991년 나왔으니까, 읽어보시면 위와 같은 선전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아실 수 있다.
3. 구체적인 번역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역자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역자는 모두 3명으로 되어 있는데(보통 공역에서 밝히기 마련인 누가 어떤 부분을 담당했는지에 관한 말은 전혀 없다), 그 중 김한영은 “(1962년 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전문번역가”로 되어 있으나, 소개된 경력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런 종류의 책을 번역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이 책의 주(主) 번역자로 추정된다. 나머지 두 사람은 각각 독일에서 수학하고 미국에서 독어학박사를 취득한 대학교 독어과 교수(문미선), 독일에서 독어학박사를 취득한 대학강사(신효식)로 되어 있다. 우선 겉으로 보기에 학력이나 경력이 ‘영어로 된 언어학 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 점은 이 책이 개설서라는 점과 누구나 영어를 기본으로 공부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비난까지 할 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누가 어떤 부분을 주로 번역했는지(또는 감수 내지 협조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번역상의 모든 문제점은 공동 책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아니면 번역계의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이름만 빌려준 박사교수’들이 될 테니까.)
4. 사소한 번역상의 문제점은 다음 단락에 종합하기로 하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정말 번역자의 도의(道義), 책임과 관련되는) 부분부터 먼저 지적하기로 한다. 이제까지 필자의 독서 인생에서 본 일이 없는 일이지만, 세상에 번역자가 ‘번역 불가’라고 하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잘못된 문장이나 비문법적인 문장이라 도저히 번역이 안 된다’는 건가? 아니면 ‘역자의 능력 부족으로 번역할 수 없다’는 건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the Wonderland)”와 그 속편 격인 “거울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는 재미있는 말장난(pun) 때문에 언어학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편이다. 그 중에 나오는 “재버워키(Jabberwockie:종잡을 수 없는 말장난)”의 시 4연은 이렇다(이 서평의 대상인 “언어본능” 번역서 131페이지.)
‘Twas brillig, and the slithy toves
Did gyre and gimble in the wabe:
All mimsy were the borogoves,
And the mome raths outgrabe.
보시는 대로 번역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곧 뒤에 보겠지만 정통 영문학자의 번역도 껄끄러운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역자는 대담하게 “번역불가”라고 써놓았다는 점이다. “번역자의 (독자에 대한) 항복”인가? 아니면 “순진한 번역자”인가?(대부분의 번역자들은 이런 경우 대충 4연 원문 생략하고 따라서 번역도 생략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이 건 문장이 될 수 없다”는 철없는 만용인가? 이번엔 정통 영문학자의 번역을 보겠다. “루이스 캐럴, 거울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손영미 옮김, 시공주니어, 초판 4쇄, 2002. 10”, 29페이지에 보면 번역이 나와있다(참고로 역자는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미국에서 관련 석박사를 딴 영문과 교수이다).
“저녁 무렵, 유연활달 토우브
언덕배기를 순회하며 뚫고 있었다.
보로고브들은 모두 우울해 했고.
침울한 라스들은 끼익거리고 있었다.
(역자 주: ‘토우브’는 오소리의 일종, ‘보로고브’는 지금은 멸종된 앵무새의 일종. ‘라스’는 몸체가 녹색을 띠고 있는 육지 거북의 일종)
아무리 이 책이 1870년대에 나왔다고 해서, 미학과 출신 번역가, 독어학박사들도 모르는 영어를 어떻게 영문학박사는 알까? ‘영문학박사”만 알 수 있는 특별한 말이나 고어(古語)라서? 아니다. 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같은 소설 뒷부분에 저자인 루이스 캐럴의 설명이 다 나오는 것이다(앞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 번역서 126 ~ 129페이지). 어떻게 모르는 다른 책의 부분이 나오면 그 책의 번역본이라도 찾아볼 생각을 않고 ‘번역불가’라고 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번역가에 대해 대체로 동류의식(同類意識)을 느낄 정도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그러고 이것 뿐만이 아니다.
5. 역자가 조금이라도 언어학에 지식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오역(誤譯)이 또 나온다. 161페이지 이하에 보면 촘스키(Chomsky)의 ‘변형생성문법’ ‘수형도(tree diagram)’와 X’(엑스바 이론) 설명이 나오는데, ‘spec(specifier)’을 ‘주어’라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XP → (SPEC) X’ YP*를 “구는 하나의 수의적인 주어(영어에서 어떻게 주어가 수의적일 수 있을까?)와 그 뒤에 오는 하나의 X-바,…”라고 해놓았다. 언어학의 ‘구 구조 규칙(phrase structure rule)’에서 ‘spec(ifier)’는 ‘지정어(指定語)’라는 말로 관사와 형용사 등, ‘핵(head)’를 수식하는 말(왼쪽에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즉 임의적인, 선택적인)을 의미한다. 한편 ‘수의적’이란 말은 ‘隨意的’으로 보이는데 일본말 냄새가 물씬 풍긴다. 우리 몸 근육에 ‘수의근(隨意筋)’,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있다고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때 외에는 들을 수가 없는 말이다. 아마 영어 원어는 ‘arbitrary or selectional’, 우리 말로는 ‘임의적’ 또는 ‘선택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6. 지금부터는 앞에서부터 차례로 보며 번역상 오류를 지적하겠다. 동류끼리 또는 관련 전문가로써 정체를 감추고 비판하다는 오해가 생길까 봐 미리 말씀 드리면, 필자는 영어학이나 언어학 또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며, 문필하고는 관계가 먼 직장생활을 이십 여년 해온 사람이다. 그냥 글과 영어(나아가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독자일 따름이다. 이 책은 대개의 중요한 부분에 원문이 그대로 병기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라, 원서를 다시 사서 볼 필요 없이 순전히 번역본을 보면서도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p.16 중간 ‘제대포’ → 한자로 ‘祭臺布” 또는 ‘altar cloth’라고 부기했으면 국어사전 찾는 수고가 줄었을 것이다.
p.17 위에서 7째 줄 ‘주간 드라마’ → 우리나라에서처럼 일주일에 한번 한다는 주간(週刊)인가? 아니면 낮에 한다는 ‘주간(晝間: soap opera)’인가?
p. 20 위에서 둘째 줄 및 p.122 밑에서 셋째 줄 ‘parkway(공원 내의 도로)’ → (Richard Lederer라는 사람의 유명한 ‘Crazy English’라는 글에서 나온 말. 이 글 읽어보시고 싶은 분은 다음 인터넷 주소에 가시면 읽어보실 수 있다. http://pw1.netcom.com/~rlederer/arc_ceng.htm#ce1), driveway에서 park하고 parkway에서 drive한다면 parkway의 뜻이 짐작될 것이다. driveway가 도로가 아니라 ‘주차통로(도로와 집 안의 주차장 사이에 있는 차가 드나드는 통로로, 주로 낮에 또는 밤에도 주차장 공간보다 차가 많은 경우 주차도 하는)’인 것 비슷하게, parkway도 ‘공원(park)’하고는 전혀 무관하며, ‘자동차 도로, 외곽순환도로, 큰 간선도로(중간에 보통 잔디로 된 중앙분리대가 있는)’의 뜻이다.
p.21 중간쯤 ‘동물의 왕국’ → 옛날 TV에 나왔던 수입영화 제목의 영향이 너무 오래 간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말이다. ‘(the) world of animals’이면 ‘동물의 왕국/세계’쯤의 번역도 괜찮겠지만, ‘animal kingdom’이면 대부분의 학문적인 글에서는 ‘동물계(動物界)’(생물의 분류 단위인 ‘계, 문, 강, 목, 과, 속, 종’할 때 최상위 단계인 ‘계(界)’가 바로 ‘kingdom’)로 번역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임에도 어떻게 대부분의 책에서는 일률적으로 ‘동물의 왕국’만 나온다. 이 책의 원문이 뭐였는지는 알 수 없다.
p.23 중간쯤 ‘털이나 깃털 달린 얼간이’ → 앞뒤 문맥으로 보아 ‘비버(beaver)’와 ‘기러기(goose or wild goose)’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p.48 중간 및 p. 88 ‘나바조’ → 인디안 부족 이름 ‘나바호(Navajo)’. 웬만한 사전에 다 나온다. 지금도 아리조나주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 부근에 살고 있다.
p.69 중간쯤 ‘네 살바기’ → ‘네 살배기’
p.73 맨 위 ‘라 졸라’ → ‘라 호야(La Jolla: 샌디에고 바로 위에 있는 지명으로 스페인어에서 왔음. 이 지명을 딴 미 해군의 군함이 몇 년 전 부산에 기항했을 때 우리 신문들은 정확하게 ‘라 호야’라고 했었음)
p. 84 위에서 5 ~ 6째 줄 ‘많은 것이 인용된 구절’ → ‘이 구절에서 많은 것이 인용되어졌다’인가? ‘이 구절은 많은 인용을 포함하고 있다’인가?
p.91 밑에서 4째 줄 ‘라우라 마틴(Laura Martin)’ → ‘로라 마틴’(뒤에 225페이지에서는 ‘로라’라고 되어 있다)
p.111 맨 위 ‘모두원리는’ → ‘모두 원리는’
같은 페이지 위에서 8째 줄 ‘켤 수 있는 눈’ → 영어야 어찌 되었든 우리말로는 ‘눈’이 무엇을 ‘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추었다, 보았다’고 해야 된다.
같은 페이지 위에서 17째 줄 ‘plate tectonics’ → 우리말로는 ‘판(板)구조론’이라 한다.
p.130 여기 맨 위 문장에서 중의어(重義語) 해석이 빠진 것이 많다. 예를 들어 ‘broad splashes’는 ‘매춘부에 대한/의한 방뇨’. ‘empty sky’는 ‘배고픈 하늘(그래야 뒤의 食道로 연결된다)’ 등. 한편 ‘tree-tops’같은 간단한 단어는 굳이 사전을 뒤져 ‘우듬지’라고 해놓았다. ‘나무 꼭대기, 나무 위’가 아니라 ‘우듬지’라…(평소 이런 말 쓰시는 분?)
p.168 밑에서 4째 줄 ‘공을 던지라고’ → 영문(‘to shoot the ball’)을 보면, ‘슛(공)을 쏘라고’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공을 겨냥해서 조준하고는 ‘빵’하고 총쏘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이걸 단순히 ‘공을 던지라고’ 식으로 번역해버리면 이 말장난을 알 수가 없다.
p. 173 밑에서 6째 줄 ‘조동사는 또한 INFL이라고 불리므로’ → 조동사가 INFL이 아니라, 다만 ‘구 구조 수형도(phrase structure tree diagram)’에서 조동사는 INFL 자리에 포함되는 것 뿐이다. 당연히 INFL은 ‘어미변화 또는 굴절(inflection)’의 뜻으로 ‘시제(tense)’를 주로 포함하는 범주이다. 이것은 저자 잘못인지 번역자 실순지 애매하다.
p.176, 177에 걸친 문장 → 필자는 독일어를 모르지만 (擬似) 독일어 첫 문장과 영어 첫 문장이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한글 번역이 똑 같을까? 공동 역자인 독일어 박사들이 이 문장을 봤나 모르겠다.
p.177 인용문장 바로 밑 ‘칵테일 파티에 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지적 생활에 대한 촘스키의 주요 공헌 중 하나가 … 것을 안다’ → 도대체 ‘칵테일 파티에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파티에 초대 받는 사람, 즉 같은 계통의 직업을 가졌다든지, 가까운 관계라든지, 같은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든지 이런 뜻인가?
p.204 제일 아래 booth-beeth, harmonica-harmonicae…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이 없으면 일반 독자들은 알 리가 없다. 차례로 tooth-teeth, formula-formulae, brother – brethren, datum-data, appendix – appendices, cherub – cherubim식의 불규칙 복수형(옛날에는 역시 규칙형이었지만)을 비꼰 말이다.
p.223 위에서 10째 줄 ‘수잔 카레이(Susan Carey)’ → ‘수잔 캐리’. 유명한 여자 가수 Mariah Carey(머라이어 캐리)를 생각해 보라.
p.240 맨 위 [오, 새벽의 이른 불빛으로 볼 수 있는지 말해줄래요? Jose can you see by the donzerly light? [Oh,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 이 문장은 미국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의 첫 소절(the first verse)로 “(어제 저녁 석양빛에 마지막 본, 우리가 자랑스레 붙잡고 지키던 그것(성조기)을) 오늘 아침 이른 새벽빛으로도 여전히 볼 수가 있는지, 그대여 말하라!”라는 뜻. 누가 우리 애국가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까요?” 그러면 기분 나쁠 것이다. "조화유, 이것이 미국영어다, 조선일보사, 제10권, p.114"에 보면 , 불법 체류 외국인을 단속하는 미국 이민국(INS) 수사관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남미계처럼 보이는 학생들에게 미국 국가를 불러 보라고 하고, Oh, say, can you see가 아니라 Jose, can you see로 시작하면 쫓아낸다는 농담이 있다고 소개한다(호세Jose는 가장 흔한 멕시코계 이름.) 독자들은 왜 이 책에서 Jose can you see라는 구절이 나왔는지 배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페이지 위에서 10째 줄 ‘서기’ → ‘notary public’은 그냥 서기가 아니라 ‘공증인(公證人)’(우리나라에서도 법무사 사무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이란 뜻. ‘서기(書記)’는? ‘(a) clerk’.
p.249 맨 아래 ‘span and spic’→ ‘spick and span’이라야 ‘clean and neat’의 뜻.
p.250 맨 위에서부터 수많은 단어들의 뜻은? – 보통은 이런 부분 번역 안 해도 그만이겠지만, 이런 책 보는 분은 대개 언어에 관심이 많을 것이므로 모르고 넘어가기가 뭐해서, 스스로 찾아보기 십상일 것이라서, 여기 적어둔다.
riff-raff(하층민, 잡동사니), mish-mash(혼란, 뒤섞임), flim-flam(엉터리, 속임수), chit-chat(수다, 재잘재잘), tit for tat(오는 말에 가는 말), knick-knack(자질구레한 장신구), zig-zag(지그재그), sing-song(단조로운 노래), ding-dong(딩동), King-Kong(킹콩), criss-cross(삐뚤빼뚤), shilly-shally(망설이는), see-saw(시이소오, 오르락내리락), hee-haw(이~햐!), filp-flop(홱홱 뒤집기), hippity-hop(깡총깡총-캉가루 새끼가 뛰는 모습), tick-tock(똑딱똑딱), tic-tac-toe(三目: 아이들 놀이), eeny-meeny-miney-moe(술래 정할 때나 무얼 고를 때 부르는 노래, 우리 말로 하면 ‘이 거리 저 거리 밖 거리’, ‘어느 것을 고를까? 알아 맞춰 보세요’ 하는 식), bric-a-brac(골동품, 고물), clickety-clack(덜컹덜컹, 찰칵찰칵), hickory-dickory-dock(자장가 nursery rhyme 제목. 별 뜻이 없음), kit and kaboodle(이것 저것, 모두), bibbity-bobbity-boo(디즈니사의 만화영화에서 온, 신데렐라가 외우는 주문)
p.254 위쪽 여기도 수많은 설명 없는 단어들 →
razzle-dazzle(시끌시끌), super-duper(극상의, 아주 좋은), helter-skelter(허둥지둥), harum-scarum(덤벙덤벙), hocus-pocus(요술, 감쪽같은 속임수), willy-nilly(싫든 좋든, 다짜고짜), hully-gully(춤 이름, Beach Boys의 노래 제목, 좋아 좋아 정도의 뜻), roly-poly(토실토실), holy-moly( = Holy Moley: 야! 이런!), herky-jerky(움찔움찔), walkie-talkie(워키토키), namby-pamby(멋없는, 지루한, 갈팡질팡), mumbo-jumbo(우상, 공포의 대상, 뜻 모를 이야기), loosey-goosey(편안한, 헐렁한), wing-ding(야단법썩), wham-bam(철썩 쿵), hobnob(권커니 잣커니), razza-matazz(떠들썩, 소란법석), rub-a dub-dub(둥둥둥 북소리)
p.257 맨 밑 인용문 → 뒤에 보면 영어를 이탈리아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따라서 이렇게 설명이 붙어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Uans appona taim uase disse boi. (Once upon a time was this boy.)
p259 맨 아래 셜리 엘리스(Shirley Ellis) 의 1964년 히트곡 ‘Name Game’ 이야기 → 도대체 이것만으로는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아무나 이름을 이용하여 운율(rhyme)을 만드는 알고리즘을 노래했다고 한다(참, 특이한 가사도 다 있다!) 가사 일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The first letter of the name
I treat it like it wasn't there
But a B or an F
Or an M will appear
And then I say Bo, add a B
Then I say the name
Then Bonana, Fanna, and a Fo
Then I say the name again with an F very plain
Then a Fee, Fy, and a Mo
Then I say the name again with an M this time
And there isn't any name that I can't rhyme
p. 260 아래쪽 Dorothy Parker(1893~1967. 미국의 여류 시인, 비평가)의 “I’ve been too fucking busy and vice versa.” → (욕을 그대로 인용해서 뭣하지만) 맨 뒤 vice versa의 뜻을 못 살리고 있다(이 말의 문자 그대로 뜻은 ‘역(逆)으로’.) 즉, 이 말의 숨은 뜻까지 포함해서 다시 쓰면 “I’ve been too fucking busy and too busy fucking.(fucking busy가 문자 그대로 ‘역이 되어’ busy fucking이 되었다 – 뭣같이 바빴고 뭣하느라고 바빴다는 뜻)”
p.261 밑에서 5째 줄 “대화 중에 cows가 등장하면” → 뒤의 udder의 원 뜻이 ‘(소나 염소의) 젖통’이란 해석이 없이 보면 뭔 말인지 모를 것이다.
p. 268 위에서 9 ~ 11째 줄 “하버드 대학의 구내에 자동차를 주차(pahk their cah in the Hahvahd Yahd)하는 보스턴 사람들은 딸의 이름을 Sheiler와 Linder라고 짓는다.” → 보스턴 사람들이 ‘r’ 발음 대신에 ‘h’발음을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원래 Sheilah와 Linda라고 해야 할 여자 이름 대신에 Sheiler와 Linder라고 쓴다는 뜻이다(물론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비꼬는 뜻.)
p. 275 중간 아래쯤 나오는 ‘Emily Litella’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질다 라드너 역을 맡은 배우’ → 질다 라드너(Gilda Radner: 1946~1987)가 실존했던 여배우, ‘새터테이 나이트 라이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TV Show이고, ‘Emilly Litella’는 질다 라드너가 분(扮)했던 ‘(귀가 먹은) 극중 인물’로 ‘(endangered) species’를 보호하자는 말을 잘못 듣고 ‘(endangered) feces’를 보호한다니 무슨 소리냐고 타박을 주는 것이다. 이걸 반대로 번역해 놓았다.
p.278 위에서 11째 줄 From the John Prine song → From the John Prince song(바로 밑에 ‘존 프린스’라고 번역되어 있다)
같은 페이지 몇 줄 아래 ‘블루 치어의 히트곡 I’m your Venus’ → 흘러간 팝송(oldies but goodies)을 즐기는 사람은 ‘블루 치어(Blue Cheer)’도 알고, ‘I’m your Venus’라는 가사도 귀에 익지만 이 둘을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우리가 익숙한 “I’m your Venus, I’m your fire, at your desire…”라는 가사는 ‘쇼킹 블루(Shocking Blue)’의 ‘Venus’란 노래이다. 저자가 틀렸을까? 역자가 틀렸을까?
p.281 위에서 3째 줄 마지막 “don’t call it “dead”’ → ‘don’t call it “deed”’. 바로 밑의 번역에 ‘“deed’라고 부르지 말기를’ 이라고 되어 있다.
p.282 밑에서 둘째 줄 ‘일본의 간지문자’ → ‘간지’는 ‘한자(漢字)’이므로 병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p. 292 밑에서 5째 줄 “이해를 이해하는 것은” →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p. 301 ~ 302 인용문 “She saw the matter ~ through.”를 “그녀는 ~ 문제를 지켜보았다”라고 번역 → ‘see the matter through’는 그런 뜻이 아니라 “끝까지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해결한다”는 뜻.
p. 302 마지막 우리 말 번역 “고양이를 걱정하는 개” → 영문이 “the dog that worried the cat”로 나와 있다. 여기서 worry는 cat을 목적어로 하는 타동사로 “위협하다, 괴롭히다”의 뜻이다. 번역대로 하려면 “the dog that is worried about the cat”이라야 된다. 능동태와 수동태 구분이 안된 예.
p.303 위에서 둘째 줄 “blessed be He”라는 문장은 삽입된 기원문으로 여기서 He는 그 앞의 the Holy One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He가 문장 앞이 아닌데도 괜히 대문자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번역은, “주님, 축복 받으소서(May He be blessed!)”이다. 이 문장을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그를 축복했고”식으로 번역해 놓았다.
p.316 위에서 9째 ~ 13째 줄. 'build-up’은 ‘형성’이라기보다 ‘강화(强化)’라는 뜻이다. 도대체 “가스를 형성해 폭발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가 무슨 뜻인가? 의역하면 “가스저장시설(gas storage)을 강화했기 때문에” 정도가 되어야 적당할 것이다.
p.320 위에서 8째 ~ 9째 줄. Family Leave Law를 ‘가족분산법’으로 번역해 놓았다. 이 말의 어원은 미국 노동부의 ‘Family and Medical Leave Act of 1993(FMLA)’에서 왔으며 ‘육아, 입양, 양육, 가족 중 질병’ 등의 사유가 있을 때 1년에 3개월의 무급휴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각 주별로 그 중 일부는 유급휴가로 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노동부에서도 ‘가족휴가’란 이름으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굳이 번역하자면 ‘가족 및 질병 휴가’ 정도가 될까? ‘leave’의 2번째 뜻인 ‘휴가’를 모른 데서 온 오역이다.
p.326 밑에서 둘째 줄 “남용 가능성이 있는 적정량의 다음 물질들을 함유한” → 위의 영문은 “which contains any quantity of the following substances having a potential for abuse”이다. 어떻게 해서 ‘any quantity’가 ‘적정량’으로 둔갑을 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다음 페이지의 결론이 날 수 없다. ‘어떤 양이라도 즉,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의 뜻이기 때문에 “마약판매원은 법을 어긴 것” 이 되는 셈이다.
p.336 중간 “연방 지방재판소” → 앞 페이지 영문을 대조해 보면 “U. S. Attorney’s Office”라고 되어 있어, 역자가 사법부(판사)와 행정부(검사)를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말은 “연방 (지방)검사실”로 번역해야 맞다. 사법부에 속하는 재판소는 ‘court’로 ‘judge(판사)’들이 근무하는 곳이고, 법을 집행하는 곳은 법무부 장관(The Attorney General) 산하의 연방검사실(현재 미국 본토 및 속령 포함해서 지방별로 관할권을 가진93명)이며, 이들은 모두 연방공무원(행정부인 법무부 소속)이나 지방을 관할한다고 하여 ‘지방검사(District Attorney)’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연방검사실’과 ‘지방검사실’은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다만 ‘주정부’에서도 ‘지방검사’를 둘 수 있기 때문에 ‘연방 지방검사’, ‘주 지방검사’로 나눌 수는 있겠다.
(한숨 돌리자)
이렇게 길게 썼는데 아직도 1권 밖에 지나지 않았다. 쓰는 시간도 읽는 시간도 만만치 않은 문제이며, 서평 페이지에도 제약이 있을까 봐 일단 여기서 멈추기로 하겠다.
그런데 여기 겁나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최근 도하(都下) 신문 광고에 의하면, 같은 저자의 가장 최신작인 “The Blank Slate, 2002. 9”을, 이번에는 이 책의 주 번역자 김한영이 혼자서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는 책 “빈 서판(書坂)”이 민음사에서 간행되었는데, 가격이 무려 40,000원이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책을 보면서도 “아! 원서를 살 걸,”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번역서를 보는 목적이 시간 절약에도 있다면 이건 참담한 실패였으니까. 필자가 생각하고 자료 찾고 이 글을 쓰느라 소비한 시간을 상상해 보라.
번역본에 의하면 초판 1쇄가 1998년 3월이고 초판 4쇄가 2003년 5월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틀린 부분은 보통 ‘쇄(刷: impression or print)’에서도 바로 잡는 법이니까, 적어도 그 동안 3번의 고칠 기회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영세한 출판사 사정’따위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한편 책 80페이지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10대에 저지른 도둑질로 40세의 사람을 수감하는 것은 40세의 존과 18세의 존을 ‘동일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며 이런 지독한 오류는 우리가 이들을 존이 아니라 존1972와 존1994로 지칭한다면 피할 수 있는 오류”라고 한다. 과연 김한영1998과 김한영2004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누가 시험해보고 알려주면 좋겠다.)
또 222페이지에 보면 일반 상식을 완전히 뒤덮는 이야기가 있다. “몇 천의 필수단어만 알면 된다, 세익스피어가 20,000단어를 구사했는데 22,000 Vocabulary는 너무 지나치다. 영영사전의 설명어휘(defining vocabulary)가 3천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것이 보통 사람 상식인데, 가장 정교한 추정에 의하면 미국의 일반 고졸자가 6만 단어 정도를 알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알고 있는 어휘와 사용 어휘의 수(數)는 다르겠지만, 왜 외국 신문이나 잡지, 하다못해 대중소설 읽기도 그렇게 힘들고(주로 어휘 문제로), 그럴듯한 경력을 갖춘 번역자라도 이런 엉터리 번역을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언어’을 다루는 언어학 책의 번역에서 발견된 이 숱한 ‘언어’의 오류는 ‘등잔 밑이 어둡다’인가? 아니면 바벨탑을 짓다가 무너진 인간 ‘언어’의 ‘아이러니(irony)’를 상징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