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udy night
지난 달 출장갔던 동생에게 부탁했던 책들 중 한권.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일본에서도 1936년(놀랍게도 영국에서 Gaudy Night가 발표된 다음 해)에 원전의 3/1가량으로 줄인 초역이 소개된 이래, 완역판이 나오기까지 60년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책을 받아보고서 우선 그 두께에 압도. 717페이지의 문고본! 언제 이 두꺼운 책을 읽을까하다가, 의외로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대학원 수업 발표용 레쥬메를 쓴답시고 일찍 집에 와서는, 이틀동안 레쥬메는 젖혀놓고 자정을 넘기도록 이 책만 붙들고 있게 된 것이다.
전체적인 감상은 미스테리도 미스테리지만, 로맨스 소설, 사회 소설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Strong Poison에서 용의자와 탐정으로 처음 만난 해리엇 베인과 피터 윔지경. 5년에 걸친 윔지의 구애 끝에 드디어 해리엇이 청혼을 받아들이게 된다. 혹 이게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안계시겠지? 결말은 알아도, 그 과정이 읽을 만하다. 피터 윔지경이 도로시 세이어즈가 창조한 이상적 남성상이라곤 하지만, 해리엇이 청혼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왠만한 로맨스 소설보다 더 설득력있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사회소설로서의 측면. 20세기초,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그 때. 그 때의 소위 잘 나가던 고학력, 고수익을 누리던 독신 여성들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니,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겠지...해리엇은 성공한 작가이면서도 애인의 독살범이라는 누명까지 쓰고 있었으니 오죽했으랴. 그렇다고해서, 마지막에 범인의 절절한 항변이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그 항변도 그 나름대로 가슴에 와닿았다.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신구 세력 중 어느 쪽 손을 들어 줄 수 있을까.
답답하긴 했지만, 어쨋든 끝이 개운해서 다행이었다. 윔지경, 최고! (이러니 눈만 점점 높아진다)
이젠 바쁜 허니문인가, 그걸 구해서 읽어볼 차례인가? 그러고보니, 해리엇이 첫 아이를 출산하던 날 밤에 생긴 자그마한 사건 얘기는 이미 읽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