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해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불러다오.

  당신이 오래 전에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데 당신은 그 대답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아주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아니면 어떤 이들이 당신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했다. 당신은 그렇게 했다. 그러자 그들은 당신이 한 것이 틀렸다고 말했다.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하고서, 당신은 다시 다른 뭔가를 해야 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아이였을 때 했던 놀이거나, 아니면 당신이 늙어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마음 속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어떤 것이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당신은 어느 강물 속을 응시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당신 가까이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악 당신을 만지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렇게 하기 전에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당신은 아주 멀리서 어떤 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에 가까웠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당신은 침대에 누워 거의 잠들려 하고 있었는데, 하루를 끝내기에 아주 좋은, 뭔가, 혼자 하는 농담에 웃음이 나왔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당신은 뭔가 맛있는 걸 먹고 있었고, 자기가 뭘 먹고 있는지를 잠시 잊어버렸지만, 그러나 계속 먹으면서, 그게 맛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그건 자정 무렵이었고, 그리고 스토브 안에서 불길이 조종(弔鍾)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당신은 그녀가 당신에게 그 일을 얘기했을 때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걸 다른 어떤 사람에게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녀의 문제들을 잘 아는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송어들은 깊고 잔잔한 곳에서 헤엄쳤지만, 그러나 그 강은 겨우 8인치 너비였고, 달이 아이디아뜨를 비치고 있었고, 그래서 워터멜론 들판은 걸맞지 않게 어둡게 빛을 발했고, 그래서 모든 초목들로부터 달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 리차드 브라우티건, "나의 이름", <워터멜론 슈가에서>, 16~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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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3-12-2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께요. ^^

브리즈 2003-12-2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중략...)

  체코인들도 그리스어에서 취한 '노스탈지nostalgie'란 단어 이외에 '스테스크stesk'라는 그들만의 명사와 동사를 갖고 있다. 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 밀란 쿤데라, <향수>,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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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우정이나 항구적인 감동 같은, 그들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했다.

  이제 나는 그들이 줄 수 있는 것보다 적게 요구할 수 있다. 가령 아무 말 없이 같이 있어주는 것. 그리하여 그들의 감동, 우정, 고상한 행동이 내 눈에 그 기적 같은 가치를 온통 다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은총의 완전한 효과.

  - 알베르 카뮈, "낱장 IV", <최초의 인간>,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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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Harmensz van Rijn- Philosopher in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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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3-12-1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그림은 낮이 익습니다. 제가 막 열받는 사연을 올렸더니 검은비라는 님 께서 이 그림을 올려주셨거든요. 잘 보고 갑니다.

브리즈 2003-12-1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