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독일 가수와 미국 여배우가 이런 경우에 속하며 주걱턱의 신문기자 역시 이런 경우에 속한다. 독자들에게 익숙해져서 그의 주간지가 소련인에 의해 정간당하자, 그는 백 배나 산소가 희박해진 공기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는 누구도 수많은 미지의 시선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중략...)

  두 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숙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칵테일 파티나 만찬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을 잃으면 그들 인생의 무대에 불이 꺼졌다고 상상하는 첫 번째 범주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하다. (...중략...)

  그리고 세 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의 조건은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기면 무대는 칠흙 속에 빠질 것이다. 테레사와 토마스를 이런 사람들 속에 분류해야만 한다.

  끝으로 아주 드문 네 번째 범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몽상가이다. 예를 들면 프란츠가 그렇다. 그가 캄보디아 국경까지 간 것은 오로지 사비나 때문이다. 버스가 태국의 도로에서 덜컹거릴 때, 그는 그녀의 시선이 오랫동안 그에게 고정되었다고 느낀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07~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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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 2004-01-1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우연히 들춘 쿤데라의 소설.. 이런 구절이 있었군..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이거나 세 번째이지 않을까.. 나는 어느 쪽일까..

플라시보 2004-01-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웃기지만 첫번째 인것 같습니다. 차라리 익명의 다수인 사람들의 시선이 나은것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거나 혹은 알거나 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부담스럽지만 저 시선들은 언제나 무시하는게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만약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주목한다면 그건 그래도 내가 하나 정도는 괜찮은 구석이 있다는걸 증명 해 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