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향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순결한 언어들을 좋아했다. 내가 순결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혼신의 힘을 모둔 결단의 말들과 함께 오랫동안 신중하게 주저하는 말들을 좋아했다. 나는 비명과 탄성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배어나오는 말들이나 그것들을 힘주어 누르고 있는 말들을 좋아했다.

  나는 말이 거칠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았다. 한 정신이 비범한 평정 상태에 이르러 그 지경을 모방하여 얻어낸 유려한 말들에 나는 종종 귀를 기울였지만, 그보다는 그 상태를 증명해주는 다급한 말들의 진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장난치는 말들, 판을 깨는 말들도 좋아했다. 하던 일을 진중하게 계속하는 사람은 늘 찬양을 받아야 하지만 때로는 손에 쥔 것을 털어버리고 일어나 기약 없는 땅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용기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땀내가 나는 말들을 가장 좋아했다. 그 말들은 어김없이 순결하다.

  - 황현산, <말과 시간의 깊이>,  "책머리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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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6-1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땀내가 나는 말들, 참 말이라는 게 공허한 것 같아요. 말이 없는 세상을 아주 가끔은 꿈꾸기도 해요. 그냥 말이라는 게 점점 거칠어지고, 생략되고, 왜곡되는 기분이에요. 요즘 <검은 소설이 보내다>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말에 대한 탐구 같은 게 느껴지는 책인데 잘 읽혀지지는 않아요. 그냥 세상이 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말 속에 철학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땀내가 나는 말의 의미, 어떤 것일까. 진실이 담긴 말이라고 해서 모두 땀내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오래 간직해 온 말이 땀내가 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브리즈 2004-06-1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동안은 침묵 속에서 말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
저는 가끔 생각해요.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활자 중독자다라고.. 여행을 갈 때도 몇 페이지 안 읽을 거면서 책을 들고 가고, 책이 없으면 하다못해 신문이나 잡지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땀내가 나는 말들이 있다면, 진실이 담겨 있고, 생활에 뿌리박은 말들이겠죠, 아마도.. 오래 간직해온 말들..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