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기행 - 삶과 죽음을 넘어서
법정(法頂) 지음, 김홍희 사진 / 샘터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짧은 인생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벌어진 것이었다. 지금은 그때 겪었던 일들이 나를 둥글게 만들었다고도 여기지만, 가끔씩은, 결국 나는 패배자라는 생각이 서늘하게 든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무어 대수랴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사람과의 관계는 이기고 지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패배한 적이 있다고.

내가 괴로움을 겪으며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내 모든 것을 버리면서 책임지고자 했던 관계가 너무도 쉽게 끊어졌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내 삶 전체가 마비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움, 그 고통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지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그 혹은 그녀)에 대해 별로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점. 그 때문에 삶이 메마르고 고독해졌을 것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더 자유로워지기도 했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이러한 생각들을 다시 곱씹게 된 것은 어떤 책 때문이다. 어제 부산에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서 <인도기행>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도에 대한 생각, 불교에 대한 생각, 緣에 대한 생각…. 이런 생각들을 하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동안에도 창 밖 눈 아래 펼쳐진 구름들은 희기만 했다.

이 책은 인도를 여행한 소감을 커다란 흥분보다는 담담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인도 각지를 다니면서 겪은 일들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재미있어하기도 하면서 조목조목 소개하고 있는데, 인도에 관한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있는 상황에서 신선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대신에 인도와 불교, 삶과 일상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엮어 가는 점은 상당히 마음에 와 닿는다. 비록 문장이나 문체가 다소 평범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도를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 의도는 잘 살아난 듯하다.

또한, 91년에 출간된 책을 새로이 펴내면서 들어간 사진들은 이 책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바꿔놓았다. 인도를 '보여주는' 사진일 뿐만 아니라 인도를 '상상하게 하는'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고 했던가. 나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緣이 다하고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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