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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늘 아래
이혜경 지음 / 창비 / 2002년 4월
평점 :
이혜경의 <꽃그늘 아래>를 읽고 나니 내 마음에 편안한 자리가 조금 생겨났다. 그 자리는 마치 양이 앉았다 간 풀밭 같고, 봄볕이 드리워진 마루 같다. 쉬고 싶고, 쉬다가 졸 수도 있는 그런 자리 같다. 그리고 이런 자리가 내 마음 속에 생겨난 것도 오랜만의 일인 것 같다.
이혜경의 두 번째 소설집인 <꽃그늘 아래>는 표제작인 '꽃그늘 아래'를 비롯해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이 다 다른 이야기지만, 소설집을 덮고 났을 때는 한 권의 장편소설을 읽은 것마냥 전체적인 느낌이 가슴을 채운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 이야기, 사람들에 지친 마음 이야기를 통해 좀더 살기 좋은 세상, 좀더 마음 나누는 세상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혜경이 다른 작가와 다른 것은, 그녀는 이것이 희망이다,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힘주어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가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며, 연속적으로 어떤 세계를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면, 그 세계는 세상을 단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세계이며, 진실을 확정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내는 세계이다.
또한, 이혜경은 발표한 작품들을 통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거기에 문장을 다듬는 솜씨와 노력이 깊이 배어 있어 그 시선이 오래도록 곱씹은 사유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즉, 성숙한 사유와 섬세한 손길로 소설을 빚어내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소설이 가진 귀중한 가치이며 매력이다.
위에서 이혜경의 이번 소설집을 읽고 나서 내 마음에 편안한 자리가 조금 생겨난 것 같다고 썼었다. 아마도 그녀의 소설을 읽는 동안 잘 아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한두 마디씩 건네듯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내게 털어놔도 돼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본래 마음에 편안한 자리를 잘 갖고 있지 못한 자로서 나는 이 자리가, 이 편안한 자리가 너무도 고맙다. 이 겨울, 세찬 바람 속에 떠도는, 어두운 하늘 아래 가라앉고 있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를 마음속에 오래도록 두고 싶다. 비록 햇빛만 왔다 가는 빈 자리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