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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ㅣ 알베르 카뮈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십수 년 만에 다시 읽은 것은 순전히 우연한 일이었다.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시 검토할 이유도 없었고, 주변의 어떤 일로 환기가 되어서도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두어 달 전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읽고 번역자인 김화영 교수를 따라갔다고나 할까. 책장을 뒤적거려보니 예전에 많이 아꼈던 카뮈의 <결혼·여름>이 눈에 띄었다. <안과 겉>까지 다시 읽고 나니 카뮈의 소설도 읽고 싶어졌는데, <이방인>이나 <페스트>보다는 <전락>에 손이 갔다. 주인공 클라망스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나 보다.
카뮈의 작품을 특징짓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꼬리표는 <전락>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페스트>와는 몇 가지 점에서 선을 긋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은 불길한 시대 속에 놓인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능동적인 힘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클라망스의 유희에 가까운 언어가 이어지면서 '중얼거림' 같은 자조와 헛된 자부가 넘쳐난다. 기실 자조란 자기 자신을 가해하면서 자기 자신을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던가. 소설 전체를 통해 클라망스는 정치와 이상, 실존과 구원을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돌고 도는 이야기처럼 그 끝에서 클라망스 자신으로 돌아간다.
아마 때때로 나도 인생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척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내 그 심각성 자체가 지닌 경박한 면이 눈에 보여서, 그저 할 수 있는 한 내가 맡은 역할을 계속 연출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 총명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 시민 정신이 투철한, 분개한, 너그러운, 협동적인, 모범적인 사람 등의 역을 연출했어요. 그만 해두죠. 이미 선생께서도 이해하셨겠지만, 요컨대 나는 저기 있으면서도 딴 데 가고 없는 저 네덜란드인들과 같았던 겁니다. 즉 내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나는 사실은 거기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91∼92쪽
달리 말하면, 소설 <페스트>나 희곡 <정의의 사람들> 등에서와 달리 <전락>에서는 비극적인 상황과 이에 맞서는 인물이 보이지 않고, 비극적인 상황을 피하고자 웃음을 띄우고 호의를 가장하는 인물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매력이 클라망스의 다변(多辯), 관계와 의미를 뒤섞으며 실존의 부침을 보여주는 고백들에 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가만히 살펴보면 클라망스의 고백들은 거짓과 진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영광스럽던 삶이 끝났다/분노와 몸부림도 끝났다라는 고백(112쪽), 모든 사람이 다 유죄라고 단언할 수 있다(113쪽)/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을 것이다(146쪽)라는 고백 등등. 더욱이 클라망스는 거듭해서 자신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더욱 더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
결론 삼아 이야기하자면, 고백이야말로 <전락>이 도달한 주제가 아닐까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선택이 '후회'가 되고, 자신의 구원이 '고통'이 되고, 자신의 실존이 '변명'이 되는 상황. 그 상황을 담은 말이 고백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즈음 산다는 일은 무엇무엇을 지키는 것, 무엇무엇을 나누는 것이기보다는 무엇무엇을 원하는 것, 무엇무엇을 누리는 것일 때가 많아졌다. 그것을 위해 심지어는 사람을 짓밟거나 죽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태연하게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 가끔 클라망스의 고백이 그 안락한 삶과 겹쳐진다. 거짓 고백과 진짜 고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