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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내 아름다운 파출부 - 해외현대소설선 3
크리스티앙 오스테르 지음, 임왕준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프랑스의 현대소설은 보통 사건보다는 심리의 묘사에 치중하기 때문에 읽기에 까다롭거나 지나치게 사변적인 경향을 띨 때가 많다. 그럼에도 마그리트 뒤라스, 르 클레지오 등의 작업에서 보듯 풍부한 이미지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한편, 섬세한 일상에의 접근을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를 자주 놀라게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 소개된 작가 중에도 이러한 작가들이 꽤 있는데, 아멜리 노통, 마리 다리외세크, 조엘 에글로프, 퍼시 캉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명단에 크리스티앙 오스테르의 이름을 추가하고자 한다.
<로라, 나의 아름다운 파출부>는 원고지 500매 내외의 경장편 소설이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작가들도 이러한 짧은 분량의 경장편을 선보이고 있는데(작가정신의 '소설향' 시리즈가 대표적일 것이다) 경장편 소설은 분량이 짧은 데만 그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이 삶의 특정한 이야기를 통해 그 의미를 생각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면, 이러한 분량을 통해 그릴 수 있는 것은 보통 세상사의 몇몇 순간, 몇몇 인물에 한정될 것이다. 이 소설 역시 주인공인 쟈크와 그의 파출부 로라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후반부에 가서야 쟈크의 헤어진 애인 꽁스땅스와 랄프의 사건이 겹쳐지는, 작다면 작은 이야기다.
<로라, 나의 아름다운 파출부>는 꽁스땅스가 떠난 후 6개월이 넘도록 세상과 단절한 채 살고 있는 쟈크의 집에 파출부 로라가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쟈크의 집을 청소하게 된 로라가 어느 날 조심스레 쟈크의 침실에 들어오고, 쟈크 역시 그녀의 존재를 조심스레 받아들인다. 로라를 '발견'하게 된 쟈크는 로라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한편, 서서히 세상에 적응하는 힘을 길러가는데, 그러던 중 로라는 동거하고 있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쟈크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로라가 집에 들어온 이후 스며들듯 서로에게 친밀감을 키워가며 두 사람은 행복한 감정과 시간을 나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꽁스땅스가 쟈크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쟈크는 혼란스러움을 느껴 꽁스땅스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데, (소설에 자세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그녀가 무책임하게 그를 떠나며 생긴 상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꽁스땅스가 쟈크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랑 혹은 의지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런 꽁스땅스를 피해 쟈크와 로라가 대서양 연안의 랄프 집으로 도망가면서 속도를 높인다. 랄프네가 있는 바닷가에 도착해 더욱 깊은 사이가 된 쟈크와 로라는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 있을 때보다 더욱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자신을 만나기 전에 꽁스땅스가 랄프와 사귀었다는 것을 쟈크가 알게 된 것. 거기에 사랑하는 사이로 믿었던 로라가 바로 그 해변에서 새 남자를 사귀고 만 것. 쟈크는 절망한다.
이 소설의 매력은 대상을 바꾸며 엇갈리는 '사랑의 행로'를 보는 데 있지 않다.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옮겨다니는 로라의 가벼운 사랑도, 옛 사랑을 찾아 다시 찾아오는 꽁스땅스의 무책임함도 무심히 읽어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쟈크의 비참함은 가엾다. 그의 가슴에 가득히 쌓일 먼지가, 쌓인 채 죽음을 이룰 모래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사람이 사람을 아프게 한다. 사람만이 사람의 온 삶을 휘어잡고 아프게 한다.
이 소설에 아쉬움이 있다면, 1인칭 시점이 아닌 전지적 시점으로 쟈크의 사랑과 고통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로라의 의지박약한 자유분방함도 꽁스땅스의 불안한 결심도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대신 쟈크의 내부는 잘 드러나지 않았을 테지만. 창 밖으로 황사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따라 그 바람은 아주 심하게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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