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탐사와 산책 20
김석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건축가를 '아티스트'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건축의 규모(빌딩, 아파트, 플랜트...) 때문이기도 하고, 건축이 여타 예술처럼 순수하게 독창적인(개인적인) 세계를 그려낼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축이 설계 외적인 부분에서 한정된 예산과 시간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 하는 경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건물은 형태나 구조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쓰임새에 먼저 충실한 편이다. 지금은 그 빛이 바랬지만, 한때 한국 최고 높이를 자랑했던 31빌딩만 해도 검은색 외관에 사각형의 단조로움밖에 없어 그 높이 외에 뭐 내세울 만한 게 없었겠다 싶다. 어디 31빌딩뿐이겠는가.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건물은 다소 차이가 있을 뿐, 녹지도 변변히 없는 대지 위에 사각형으로 덩그러니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은 그러한 건축의 운명, 건축가의 숙명을 거스르고자 했던 12인의 삶을 그들의 작품(!)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건축의 시원(始原)에 이름을 새긴 오토 바그너, '성 가족 교회'라는 불세출의 걸작을 남긴 안토니오 가우디, '깊은 이성의 힘'을 담았던 르 코르뷔지에 등의 생애와 작품을 읽어가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성이 나오게 된다. 이들은 건축의 쓰임새뿐만 아니라 미적인 완성까지 추구했던 진정한 예술가다, 하는 깨달음 때문이다.

숭례문이나 불국사 등 역사가 깊은 건축물들을 국보다 보물이다 하며 문화유산으로 추켜세우듯이 언젠가는 20세기의 건축물도 '고전'으로 추앙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한국의 건축물 중 어떤 것이 그런 대접을 받게 될까. 건축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헤아릴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건축물, 인간을 중시하는 공간, 자연과 합일된 인공물 속에 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며, 우리가 얼마나 단조롭고 거칠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에는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축물들이 꽤 들어 있다. 그것은 마치 건축물이 아닌 것만 같다. 예를 들어,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교회'는 설명하기 힘든 유연성으로 대기와 대지 사이를 가르고/잇고 있다. 시적인 충만함이 들어올린 지붕 끝이 둥글게 하늘을 향할 때 이 내부에 가득한 것이 은은한 평화의 시간이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책에 실린 많은 건축물들이 사람과 공간, 내부와 외부, 하늘과 땅 등등을 생각게 한다. 그러한 생각을 가능케 하는 것은 대부분 작품들 자체의 힘이지만, 건축가 김석철의 글 또한 유려하게 펼쳐지며 읽는 이를 자꾸 책 속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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