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창비시선 203
허수경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낡고 허름한,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집을 버리고 떠난 이가 남긴 것은 거의 없었다. 가구나 가전제품 같은 살림 도구는 물론이고 집주인의 삶에 유용했을 많은 물건들이 거기엔 없었다. 남겨진 것들이 있긴 했다. 구부러진 젓가락이 보였고 날짜 지난 구문(舊聞)이 누렇게 떠 있었던가 그랬다. 집을 떠난 이의 숨결도 그를 추억할 어떤 것도 없었기에 그곳은 낯설고 무섭기조차 했다...

허수경의 시편은 읽는 이를 참담함 속으로 이끈다. 그 참담함은 인생의 쓴맛을 본 자가 마주하고 있는 세계여서 시를 단숨에 읽어나갈 수가 없다. 어떨 때는 한 편을 읽는 데 온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는 <혼자 가는 먼 집>의 연장에 있으면서도 몇 가지 다른 모색을 보여주고 있다. 모색이라고 했지만 사실 어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 모습은 아니다. <혼자 가는 먼 집>이 희망을 접으려는 자의 회한이 짙게 밴 '노래'였다면,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는 노래를 끝마친 자가 자리를 되돌아보는 느낌을 주고 있다고나 할까.

숨죽여, 이제 너에게마저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척을 내지 않을 것이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나가고

겹겹한 산에
물 흐른다

그 안에 한 사람, 정막처럼 앉아
붉은 텔레비전을 본다
-<몽골리안 텐트> 전문

텔레비전이 붉은 건 눈물 때문인가 고통 때문인가. 표제작에 쓴 '영혼이 오래되었다'는 진술의 숨은 의미는 그러므로 그녀가 새로움에 목말라 있지만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촛불 속을 걸어갔다가 나온 영혼'(<구름은 우연히 멈추고>)과 같아서 적막과 유랑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 시집에서 주로 사용된 '늙는'다는 단어는 그러한 적막과 유랑 사이를 오가는 자의 무위의 몸짓을 비유한 것에 다름아니다.

폐가 이야기를 위에 썼었다. 허수경의 이번 시집을 읽으며 폐가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다. 그녀의 시가 단순히, 떠난 이의 부재를 그리고 있다는 게 아니다. 어느 쪽이냐면 적막감이 너무도 깊어 그녀의 시가 폐가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 그녀의 시어를, 목소리를 듣는데도 말이다. 집을 떠난 이의 숨결도 그를 추억할 어떤 것도 없었기에 낯설고 무섭기조차 했던 폐가 같은 도저한 적막감이 이 시집이다.

이곳에 남은 것이 있다면 엇갈리는 소문과 흔적 없이 불곤 하는 바람 같은 것들이다. 잠시 적막을 밀어내기도 하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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