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말하는 '보보(Bobo)'란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머릿글자를 따 지은 조어로서, 말 그대로 보헤미안적 기질을 지닌 부르주아들을 일컫는다. 핵심적인 내용은 현재의 엘리트들은 유산 등으로 현재의 지위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교육받고 노력하여 '새로운 엘리트' 계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반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유명 카운셀러처럼 창의적이고 사회적인 기여도가 높다. 또한 그들은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등 경제면이나 의식면에서 '통합'을 위해 애쓰게 되는데, 그것은 기존의 엘리트들이 보수 일변도였던 상황과 달리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가치를 흡수한 결과라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라는 의문 뒤에 '이 책은 문제적인 책이다'라는 생각이 곧 뒤따른다.
그 이유는 우선, 이 책이 최근의 자본주의의 흐름을 과장하고 지식인의 의미를 흐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받고 성공한 엘리트 계층이 보헤미안적 요소를 흡수해 새로운 문화를 유행시키고 있다는 기본 명제는 미국의 특정 지식인들의 주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거기에 60년대의 자유주의가 90년대 이후 보수주의에 '긍정적으로' 흡수되었다거나, '보보'들은 창조적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온건한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등 사회적인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주장들은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지식의 상업화'를 듣기 좋은 말로 치환한 것에 다름아니다.
둘째, 미국의 다양한 계층만큼이나 보보들이 포괄하는 영역이 다양해서 그들을 한 묶음으로 묶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교육받은 엘리트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다고 해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인기 작가를 어떻게 같은 그룹으로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같은 장소에서 다른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고 해도 말이다.
셋째, 경제, 특히 소비를 주축으로 삶의 구조를 보는 시각을 모든 사항에 들이댐으로써 이 책은 보보들의 삶의 태도가 기본적으로 경제에 집중(혹은 한정)되고 있다는 주장을 낳고 만다. 보헤미안의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 굳이 구식 잔디깎이를 구입하고, 교외에 나갈 때 에베레스트에서나 입는 파카를 걸친다는 등의 진술은 과장이라기보다 소비 자체에 대한 저자의 의식이 아주 저열한 것임을 드러낸다.
다만 이 책은, 보보라 부르든 그렇지 않든 미국의 현재의 지식인들이 과거 미국의 이상이 부과하는 책무로부터 자유로워졌다든지, 삶의 질을 중시하는 태도 때문에 일상적인 물건을 사는 데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든지 하는 등 '새로운 모습'(트렌드라 불러도 되리라)을 보이고 있는 것을 흥미롭게 포착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교육받은 엘리트 계층의 등장에 관한 부분과 보보들의 소비 성향에 관한 부분은 눈여겨봐둘 만하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보보라고 부를 만한 계층이 그렇게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 규모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낡은 정치, 경제 구조 자체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최근 일고 있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 90년대 초 만연했던 중산층 의식의 부활, 과소비의 체질화 등은 보보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무엇을 이야기하든 경제를 이야기의 중심,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분위기가 사회 안팎에서 강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경제 중심'의 돋보기로 지식인 계층을 들여다보게 한다(특히 미국의). 하지만, 그 돋보기는 굴절률이 제법 있어서 조심해서 보지 않으면 돋보기 없이 보는 것만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