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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 칼비노 선집 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평점 :
절판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이탈리아 문학 하면 움베르토 에코나 체사레 파베세가 떠오르는데, 이제 거기에 이탈로 칼비노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17세기 말 경 터키와의 전쟁에 참가했다가 포탄을 맞아 절반은 선(善), 나머지 절반은 악(惡)으로 분리된 자작이 주인공이다. 고향 마을 사람들이 두 쪽 난 자작의 악행은 물론 지나친 선행 때문에 골치를 앓다가, 자작이 순수한 처녀와의 사랑을 통해 온전한 인간이 된 후 올바르게 마을을 통치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우리의 선조들> 3부작 중 그 첫쨋권인 <반쪼가리 자작(Il Visconte Dimezzato)>은 일종의 환상소설이자 알레고리 소설이다. 알레고리 기법은 정치적인 소재를 다룰 때처럼 풍자하고자 하는 대상을 비틀어 보이는 데 그 주안점을 둔다. <반쪼가리 자작>에서 풍자되는 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내면, 특히 선이다.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 속엔 따스한 내면이 있으리라고 상상되는, 바로 인간의 '내면' 말이다. 더불어 그 내면에 대한 믿음 또한 풍자되고 있다. 물론 단순한 풍자는 아니다. 환상소설로서 가지고 있는 풀롯상의 비약이나 묘사의 비사실성으로 인해 그 풍자는 거의 우화의 단계를 지나 설화에 가까운 세계를 보여준다.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갈등,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편에선 빠져나가는 서술 등이 그 세계를 이룬다.
지적 재미를 원하는 독자에게 어울릴 만한 소설이며, 한편으론 아주 쉬운 소설이라는 생각 또한 드는데, 뭔가 아쉬움이 계속 남아 머릿속을 맴돈다. 그것은 아마도... 이렇게 단순화된 플롯과 비사실적 묘사 속에 깃들인 진실이 얼마나 현실적인 울림을 주는가 하는 거의 편협에 가까운 의구심 때문이리라.
앞으로 칼비노의 소설을 더 읽게 된다면 내가 느끼고 있는 아쉬움은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 그것이 어느 쪽이든 그의 소설이 가진 특이함이랄까, 매력이랄까 하는 특징은 여전히 살아 있을 거란 생각 역시 든다.
원작은 1952년에 발표되었다. 번역이란 다리를 건너오기까지 꽤 오래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