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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밀란 쿤데라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여준 작품세계가 현재의 삶을 누구보다 현대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예술이 가져야 할 본질에 대한 성찰 또한 빼어나게 해내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느림> 등으로 이어진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획일적인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와 무분별한 개인주의에 대한 견제를 그 주제로서 가지고 있다. 특히 조국 체코의 삶과 프랑스의 그것을 대비하며, 역사적인 문맥을 가지면서도, 지극히 내면적인 울림을 가득 전해주며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단연 백미(白眉)다. (개인적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읽었던 때의 그 놀라움과 떨림을 다른 어떤 책에 비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가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 <향수(L'Ignorance)>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 출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게다가 제목이 '향수'라니! <향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이상스레 맞물리는 소설이다. 쿤데라가 의도했든 아니든 말이다. 우선, 조국 체코를 떠나 프랑스에 살고 있는 쿤데라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체코와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덧붙여, 그러한 존재성이 부여한 '떠도는 자'의 이미지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처럼 소설 전체를 휘감고 있다. 쿤데라는 향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 향수병. 고향병. 영어의 '홈식니스homesickness'나 독일어의 '하임베heimweh' 또는 네덜란드어의 '하임베heimwee'는 모두 고향에 대한 향수로 생긴 병을 뜻한다. (...) 체코어로 표현된 가장 감동적인 사랑의 문장은 '나는 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인데, 이는 '나는 너의 부재로 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 이렇듯 어원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
-11∼12쪽.
이 소설을 축약하고 있는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부분은 또한 향수가 태어나고 자라고 숨쉬는 내면에 대한 진술이기도 하다. 조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살다가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가보지만, 과거의 상처를 고스란히 떠맡을 수밖에 없는 주인공,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직면해서는 절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중얼거리는 주인공의 내면 말이다. 향수병에 걸려 있지만, 사실 돌아갈 곳은 '믿을 수 없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를 누가 가엾게 여기지 않을 것인가.
쿤데라가 말하는 향수는 <오뒤세이아>의 율리시즈를 이야기하며, 그가 페넬로페의 품으로 돌아오기 전 머물렀던 칼립소의 품을 기억해보라고 주문할 때 그 함의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무한' 대신 '종말'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 자체가 향수병을 근원적으로 품고 있다는 진술에 다름아니다. 서사(敍事)에 대한 집착을 버린 대신 에피소드 식으로 교직된 <향수>는, 들뜬 첫사랑의 이야기, 떠도는 가운데 거칠어져가는 삶의 쓸쓸함, 도처에서 마주치는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그 내부를 채우고 있다. 그 내부는 읽는 이에게 향수를 환기하고, 향수를 느끼게 하고, 향수를 살게 한다.
자주자주 이 소설을 들추면서, 우리가 유배된 이 땅, 이 세계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떠나 있으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 그것이 또한 인간의 운명임을 곱씹게 된다. 멀리서 울려오는 소리는 곧 내 속에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