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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코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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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아가면서 희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하루하루가 희망이라는 퍼즐을 맞춰가는 한 장 한 장의 조각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희망에 대해 충분히 말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믿어왔던 희망이 어느 날 갑자기 상처로 돌변하는 경험이 심장에 그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고통과 절망, 무위와 권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같은 심장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리라.
무라카미 류의 장편소설 <교코>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첫째, 작품의 무대는 미국이며 주인공이 애타게 찾는 인물이 한때 일본 주둔 GI였던 호세라는 히스패닉계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둘째, 다양한 시점을 통해 주인공인 교코에 대해 생각게 한다는 점이다.
<69> 등에서 반미 감정을 무분별한 청춘의 혈기에 결합시켰던 류가 공간적 배경이 미국인 소설을 썼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주인공의 삶에 대한 깨달음 혹은 성인으로의 진입을 도와준 인물로 히스패닉계 미국인을 설정했다는 것은(그것도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류의 의식 속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것은 보편적인 표현 양식인 '춤'에 대한 잦은 묘사, 그리고 바로 그 '춤'을 아주 잘 추는 주인공 교코를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고 보여진다. 즉, 보편적인 형식으로써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겠다는 의지 같은 게 읽혀진다는 뜻이다.
한 사람에게 작고 하잘것없을 수도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커다랗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삶 전체를 가리키는 어둠 속 등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치관이라고 불리든 성격이라고 불리든 신념이라고 불리든 상관없으리라. <교코>를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자주, 그리고 오래 생각했다. 책을 내려놓은 지금은 무심히 시간이 흐르는 걸 내버려둔 채 쓸쓸해지기도 하고 처연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