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해도 참 맛있는 나물이네 밥상
김용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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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하는 것이지만, 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만이 각자의 고픈 배를 채워줄 수가 있다. 밥은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 김훈

먹어야 산다는 인간의 조건을 충족하려면, 먹거리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산업화와 분업화로 인하여 이제 재료를 손수 노동을 통하여 생산해낼 필욘 없지만,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법.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직접 해먹기가 돈 주고 사먹는 것보다 수배는 더 힘들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불과 서너세대 전엔 모두가 집에서 해먹었던 음식을, 이젠 대개 돈 주고 사먹고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간단한 오이김치 하나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감이 안 잡혔던 음식치로서, 음식 만들기에 눈을 뜨게 해준 전기가 바로 김용환씨이다.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 총각이라는 신분. 동네 시장이나 근처 할인마트를 벗어나지 않는 재료 구입. 남자 1인분 시점에서 숟가락과 보통의 컵으로 이루어지는 계량. 단계별로 자세한 설명과, 불친절하게 휙 넘어가버리지 않는 자세한 사진들. 또한 음식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만들기의 즐거움이 끊임없이 느껴지는 저자의 음식관에 영향받는 바도 적지 않다. 신혼부부 & 자취생에겐 필수라 할 수 있는 명작이며, 선물용으로도 적합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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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역사기행
이영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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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적 민족주의의 의의와 가치를 부정하진 않지만,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의 민족주의 기원과 형성 과정은 (서구에 대한) 반동과 모방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식민이라는 조건 하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새로운 집단 의식이 기존의 차별 의식 & 행태와 기묘하게 공존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게 되고, 반제반봉건의 지난한 근대사에도 불구하고 1947년과 48년, 각기 일년 상간으로  '동포' 에게 일본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는 탄압과 학살을 자행한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이 그 대표적인 사례.  

역사 왜곡은 그 주체에겐 정의로운 일이지만 객체에겐 그렇지 못한 법이다. 문제는 왜곡의 객체가 왜곡의 주체가 될 수도 있으며, 주제와 수준을 막론하고 아시아 대부분의 제국이 왜곡의 주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임지현 류의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런 상황에서 표면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려 할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서 자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나 이용당하는), 자격 없는 국가 권력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 전쟁이라는 대립 구도 자체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중앙 권력을 기준으로 과거를 현재에 뜯어 맞춘 식의 자국의 역사 서술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한국인의 애국과 중국인의 애국과 일본인의 애국끼리 만나면 서로 싸울 일 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개별 국가 단위의 강화된 애국심만이 공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까 라고 자문해온 나로선 편협한 왕조사를 극복한 이런 지방사 저작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올바른 민족주의이고 싶다면, 우리에게 민족과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란 기본적인 화두부터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국가, 민족, 민족주의 등을 '당연히 주어진 어떤 것' 이라 그리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제주 사람들의 항변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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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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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에 가까워졌다면 늙음이고, 새로워졌다면 성장이다. 언젠가 접했던 이 경구를 소설은 훌륭히 보여준다.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깨우치고 바뀌어 가는 어른들. 훌륭한 아동소설은 단순히 아동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성인독자에게도/성인독자에게야말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누가 누구에게 누구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것인가.. 시대와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지라도 여전히 남아 있을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십수년만에 책을 다시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주로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였다. 에이브 전집의 한권으로 나온 것을 읽었던 때가 초딩 고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나의 감성으론 '도덕적 개인 vs 비도적적 사회' 란 문제제기가 가장 크게 느껴졌던 듯. 아다치 선생님은 시니컬하구나, 고다니 선생님은 이상주의적이구나, 데츠조 같은 불량아는 스스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그렇게 보는 것이구나.. 에이브의 많은 책들이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상당히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p.s 에이브 전집 제 87권의 책명은 어른학교 아이학교. 에이브 시리즈는 당대의 어린 독자들을 애늙은이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던 유명 문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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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6-05-2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찾아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머어머'를 연발하며 리뷰들을 읽고 있습니다. 보통 답글은 잘 안 다는데, 에이브 시리즈에 대한 평가가 너무 재미있어서, 댓글 쓰기를 누르고 말았네요. 제가 이 책을 읽은 건 5학년 때인데, 할아버지의 첼로 이야기가 너무너무 슬펐던 기억이 나요.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책들을 읽고 있는 멋진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이 사이트의 좋은 점이지요. 쓰신 글이 워낙 많아 한 번에 읽기는 무리겠네요. 아껴 두고 야금야금 읽어야겠습니다. ^^

중퇴전문 2006-05-21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이상 나오지 않는 '에이브' 의 독자들이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좋은 싸이트라는 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이브 기획자의 안목이란 대단하죠, 저것 말고도 주옥 같은 성장소설들이 많았으니. 아무튼 반갑습니다.
 
한국영어를 고발한다
최용식 지음 / 넥서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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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한국을 고발한다' 로 바꿔도 무방할만큼, 한국 사회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자기혐오와 동일화에의 욕망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다. 저자의 비판은 '올바른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 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지만, 콩글리쉬 라는 현상이 자기부정과 피상적 모방으로 점철된 남한 근대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할 때, 책이 던져주는 시사점은 단순히 영어학습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관료와 기업과 대중매체와 일반 시민들의 언어생활에 이르기까지.. 전혀 사회화/내재화 되어 있지 않는 '영어' 란 외국어를 그런 식으로라도 굳이 써야겠다는 집단적 욕망은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또한 방법의 측면에서, 한국사회에서 대체로 생각해내는 것들이 어학연수, 조기교육, 각종 영어시험, 영어공용화론 등등이다. 90년대 중반 이후론 거의 학외 커리큘럼이나 다름 없는 랭귀지 스쿨 다녀오기와, 대학 도서관의 열람실 책상마다 놓여 있는 토익 수험서들, 그리고 원어민 영어학원을 전전하고 있는 수많은 초딩들에 이르기까지, 남한 사회는 진작부터 영어 열풍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세세하게 논할 형편은 못 되고,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토익 준비할 시간과 정성에 차라리 영어로 된 고전을 읽으면 안 될까. 애들을 무턱대고 학원으로 내몰게 아니라 일단은 충분히 놀게 해주고 (놀아야 뭔가 경험하고 사고를 확장할 것 아닌가), 남는 시간에 책을 좀 읽히면 안 될까. 저자가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설령 영어를 잘하고 싶다 하더라도 영어 그 자체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한국에선 누구나 한국어를 하고, 미국에선 일자무식의 바보도 영어를 한다. 그런 수준의 언어가 아니라 사상과 철학과 감정을 깊이있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목표라면, 그건 어학연수와 학원과 영어학습서들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상과 철학과 감정을 '실제로 살아내는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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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천석 2005-06-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리적인 생각을 정돈된 언어로 잘 풀어내시는 분이군요. 단순히 시험을 위한 영어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영어권 철학과 사상의 저작을 다양하게 섭렵하고 그 바탕으로 성숙된 자기 생각을 영어라는 다른 길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가를 평가해야 하는데 말이죠.

miyako 2009-02-0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분은 님처럼 말로만 "토익대신 다른공부해야 좋을게 아닐까 아닐까 " 말만하는분이 아닌 실천가입니다

대단한분입니다
 
열국지 - 전6권
고우영 글 그림 / 자음과모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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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 : 사촌형들 어깨 너머로 보았던 책들. 가장 기억에 남는 만화는 단연 '주먹대장' . 

보물섬 :  삼촌이 입학 선물로 1년 정기구독을 끊어주었던 책. 양과 질 모두에서 기존 만화지들을 압도했던 잡지로서, 당대 초딩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 

김성환, 소케트군 : 입원해 있을 당시 고열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웃으며 읽었던 기억.

길창덕, 꺼벙이 :  불후의 명작.

박수동, 뻔데기 야구단  : 오성과 한음과 고인돌 등도 유명하지만 명랑만화로서의 대표작이라면 상기 작품이 아닐까 함.

윤승운, 맹꽁이 서당 : 어린 나이에도 지면 아래 깔려 있는 윤리성이 강하게 느껴졌던 작품.

신문수, 로봇찌빠 : 로봇에게 인간의 감정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 줬던 작품.

김삼, 강가딘 : 강가딘의 능청.

이정문, 심똘이 : 눈엔 눈, 이엔 이.

윤준환, 꾸러기와 맹자 : 꾸러기 캐릭터가 그래도 쉬워 보여, 따라그리기에 감히 도전해 보았던 작품.

만화잡지와 단행본으로 접한 케이스가 아닌데도 좋아했던 작가가 바로 고우영 선생이다.  아버지나 다른 어른들이 보는 스포츠신문에 실려 있던 삼국지와 초한지. 지금도 기억나는 '쿄쿄쿄..' 같은 기발한 대사들. 띨띨한 유비. 능청 맞은 유방. 일관되게 느껴졌던 반골 정신과 권력을 향한 통렬한 야유. 고우영 만화를 읽으며 김성환의 시사만화와는 또다른 연재만화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대야망이나 임꺽정, 십팔사략 등도 찾아 읽었고, 고딩 때 언젠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연결을 했더니 나 고우영입니다 하고 진짜 고우영 선생이 나왔길래 우와 했던 기억도 난다. 복간된 마지막 작품인 열국지를 구입해 놓고, 리뷰 아닌 옛 기억을 기회 삼아 적어 본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한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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