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에서 파이트클럽을 봤다. 파시즘에 대한 욕망으로 전이되는 노동계급 남성들의 불만. 정당한 명분과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열망. 투쟁의 열정. 개인의 소멸과 전체로의 투신. 체제에 의해 파편화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서로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것이 싸움이든 뭐든간에)  연대를 확인하지만, 여성은 대체로 적대적 집단의 일원으로 간주될 따름이다. 노동계급 남성만큼이나 노동계급 여성 역시 분명히 존재할텐데 영화에선 언급되지 않고, 자신들의 투쟁 건을 보도하는 여성 리포터에 대한 성적인 농담 같은 대사가 그들의 생각 일단락을 암시한다.

요즘 인터넷 댓글들을 보며 느끼는 거지만, 계급의 변동과 고착이 동시에 진행 중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들이 자신의 불안과 불만을 비슷한 계층대의 여성에게 유독 표출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 (과거 1세계 노동자들의 식민 문제에 대한 태도나 산업화 국가에서의 이주노동자 문제처럼, 계급적 불안이 인종주의와 섹시즘 등과 결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여성은 일반적인 계급 범주에 포함되기 어려운 면이 많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이미 하나의 다른 계급이다. 어려운 논의는 차치하고, 이건 재밌는 사실로 생각된다. 상승혼이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계층이동의 수단이었지만, 상승혼 자체에 대하여 여성 개개인이 윤리적 비난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구조적인 차별이 아니었다면 현상 자체가 있을리 만무하다. 불만의 대상을 잘못 짚은 것이다. 돈과 권력 있는 동성의 인간들이 젊고 이쁘고 몸매 좋은 이성들을 독점하는 것에 분노를, 그리고 그럴 기회를 상실한 (혹은 해가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 불안이 느껴진다면 우선 시스템 자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범위를 일국가 수준을 넘어 국제결혼 사례들을 살펴봐도 남성 백인-여성 기타 인종은 흔하지만 반대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내게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지금보다 어릴 땐 '말 안 하고 어떻게 사나' 혹은 언어로 뭔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엔, 언어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에 기대를 건다는 것 자체가 무망해 보일 따름이다. 이러면서도 낙서하는 행위를 끝내 그만 두지 못 하고, 리뷰가 자꾸 100편을 넘어가려 하고 있으니, 사람의 모순이란 역시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p.s 파이트클럽을 보고 있을 때 다른 방송에선 프라이드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쨌거나 몸의 싸움이란, 있는 실력대로 정직하게 싸우는 맛이 있다. 가끔씩 우리가 허울 좋은 문명과 민주주의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링에서 직접 싸웠으면 하는, 관전자로서의 소망이 있다. 아니, 이미 싸움은 벌어지고 있는바, 그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서 싸웠으면 싶다. 거리에 나와있는 상대 선수를 무시하고 아무 관련없는 쫄따구들을 비겁하게, 그리고 부당하게 동원하는 작태보단 떳떳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가령 KTX 승무원들이 나와도 전경이 나가고, FTA 시위대가 나와도 전경이 나가고, 평택 농민들이 나와도 군대가 나가고.. 뭐 이런 비겁한 경기가 있는가. 애꿎은 전경 애들 그만 동원하고 진짜 카운터파트너가 직접 나와야 할 것이다. 숫적으로 열세하다면 동수의 대표팀을 뽑아서 팀 매치를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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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ch 2008-01-22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중퇴전문 2008-01-25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