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역사기행
이영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항적 민족주의의 의의와 가치를 부정하진 않지만, 근대성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의 민족주의 기원과 형성 과정은 (서구에 대한) 반동과 모방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식민이라는 조건 하에서 같은 민족이라는 새로운 집단 의식이 기존의 차별 의식 & 행태와 기묘하게 공존하는 상황마저 벌어지게 되고, 반제반봉건의 지난한 근대사에도 불구하고 1947년과 48년, 각기 일년 상간으로  '동포' 에게 일본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는 탄압과 학살을 자행한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이 그 대표적인 사례.  

역사 왜곡은 그 주체에겐 정의로운 일이지만 객체에겐 그렇지 못한 법이다. 문제는 왜곡의 객체가 왜곡의 주체가 될 수도 있으며, 주제와 수준을 막론하고 아시아 대부분의 제국이 왜곡의 주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임지현 류의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런 상황에서 표면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려 할 것이 아니라 (그럼으로서 자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나 이용당하는), 자격 없는 국가 권력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 전쟁이라는 대립 구도 자체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중앙 권력을 기준으로 과거를 현재에 뜯어 맞춘 식의 자국의 역사 서술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한국인의 애국과 중국인의 애국과 일본인의 애국끼리 만나면 서로 싸울 일 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과연 개별 국가 단위의 강화된 애국심만이 공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까 라고 자문해온 나로선 편협한 왕조사를 극복한 이런 지방사 저작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올바른 민족주의이고 싶다면, 우리에게 민족과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란 기본적인 화두부터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국가, 민족, 민족주의 등을 '당연히 주어진 어떤 것' 이라 그리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제주 사람들의 항변이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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