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으로서 한국 기독교는 저비용 고효율 고부가가치 등등 상당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우량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국가에 세금 한푼 내지 않는 순도 높은 자유주의를 진작부터 실천하고 있으며, 일찌기 해외 시장에 진출하여 각지의 종교 비지니스 업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세계화의 첨병이다.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목 좋은 땅마다 의례 대규모 교회당이 하나 쯤은 있기 마련이고, 단지 본당 건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2 예배당, 교육원, 보육원 등이 하나의 건물군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형이상학적인 사업 컨텐츠와 더불어 형이학적인 자산들에게도 상당히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끊임없는 주택 개발 경기는 기독교 업계 공급의 포화 상태에도 불구하고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발휘한다.

신도시나 신규 아파트로 창출되는 새로운 사업 기회들은 매건마다 수십여개에 달한다.

다양한 심리적 컨설팅과 인적 네트웍 제공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이용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가입과 탈퇴에도 비용과 절차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객 관리에 열성적인 일부 업체 제외).

잠재적 고객 확보에 민감한 자영업자들, 특히 정치 자영업자들의 이용 선호도가 높으며 인맥 구축에 민감한 기타 직업군에게도 좋은 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 

교인수 대비 세계 50대 교회 중 다수가 기독교 산업 강국 한국에 존재하고 있으며, 10위권 안에서도 과반수를 점유하고 있을만큼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헌금이라 불리우는 현금 수익 및 기타 이득의 대부분은 조직 관리와 세확장을 위하여 효율적으로 사용되며, 구호나 구제 같은 '비합리적으로 가치편향적인' 행위엔 함부로 예산이 낭비되는 경우가 드물다.

실제로 한국 10대 교회의 예산 사용 내력을 연구 보고한 논문에 따르면 퍼센트의 두자리를 넘는 곳이 없었다.  

십수여개의 4년제 신학대학과 역시 수십여개의 2년제 신학대학에서 나타나듯이 인적 기반도 튼튼한 편이며, 신규 업자들이 매년 수백명씩 쏟아져 나오는 탓에 자체 경쟁도 치열한 편이다. 

기독교 산업이 발생케하는 외부효과로서는 붉은 묘지를 방불케하는 화려한 도시 야경이 있으며, 통행밀집지역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업계 선전을 위한 노상 퍼포먼스도 빼놓을 수 없다.

중추 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기독교 업계는 부활절과 성탄일 등을 기하여 대국민 무료 계란 제공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하며 (조류독감으로 고전하고 있는 양계업 측에서 특히 고마워 할 일),

각종 시국안보집회에 이익집단의 일원으로서 적극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사학법 반대 투쟁에서도 만만찮은 단결력과 전투력을 과시한바 있다. 

[불교 산업 편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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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생명체 2005-12-2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카롭고 재치있는 글 잘 봤습니다. 퍼포먼스... 붉은 묘지... 진정한 공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들이죠.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것에 포로가 되어 결국 그 창조물이 원래부터 실존했던 것인줄로 착각하고 스스로 미쳐가고있는 현실은 볼수록 정말 안타깝습니다. 특히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세계 유일의 붉은 묘지, 아 대한민국! 여의도를 하나놈에게 바쳤던 이명박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을 통째로 하나놈에게 바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호통재라...
 
내 안의 유인원 - 영장류를 통해 바라본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의 초상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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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vs 보노보' 식의 구도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생생물로 출발했다는 인간에게 '상어 vs 오징어' 라는 윤리적 대립 구도를 (가능하기나 하다면) 들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비교가 의미 있을려면 서로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상황을 비교해야 할 것. 그것을 (인간의) 가치 체계 내부에서 해석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이 책은 인간과 보노보 간의 비교 이전에, 보노보 사회에 대한 충분한 분석부터가 이루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보노보 사회의 권력 구조 배후의, 먹이 채집 및 보관 방식 배후의, 수백만년 간의 진화적 역사 배후의, 정작 필요한 정보들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침팬지든 보노보든간에 인간에게 직접적인 함의를 띌 순 없다. 공부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리는 결론과 결론에 대한 암시들은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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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이야기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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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가해자 또한 피해자일 수 있다. 아니, 피해자였기에 가해자가 된건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인간의 상황에서, 폭력 자체의 중단을 원한다면 누구 말대로 로고테러피라도 다같이 받아야할지 모르겠다. 유디트의 엄마 외에도 애증의 가족 관계 때문에 가해와 피해의 양편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아동 학대와 폭력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초기 조건에서 대항할 능력도 없는 이들을 상대로 자행된다는 점에서 다른 가족 문제보다 더욱 심각하겠지만.

한편으로 나의 즉물적인 정의욕은 이런 생각도 하게 한다. 고통 받은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다. 자학에도 숱한 다른 (심지언 타인에게 무해한) 방법이 있다. 그걸 왜 당신의 자녀에게 폭력적으로 발산하는가. 왜 폭력의 고리를 당신 대에서 끊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아무튼. 세상의 모든 유디트들은 오직 살아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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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몬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영언문화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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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결책은 모든 사회집단의 구성원들을 비애국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물학적 자질과 충돌할 것이다. 어느 한쪽 방향으로 동맹이 결성되면 다른 쪽의 동맹은 깨질 것이다. 사회집단을 이루려는 타고난 경향은 우리의 유전자에 커다란 변화라도 일어나 우리의 복잡한 사회구조가 저절로 해체되지 않는 한 결코 뿌리 뽑을 수 없다.

세번째 해결책은 전쟁을 대신할 수 있는 상징적이고 해롭지 않은 대체물을 만들어 널리 보급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해롭지 않다면, 진짜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중략) 전쟁 대신 난폭하고 떠들석한 축구 시합을 아무리 많이 열어봤자,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생물적 조건으로 말미암은 인간 본성으로는 갈등 해소와 인류 전체의 평화를 도모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선각자들이 '화성 침공' 같은 외부 존재와의 투쟁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다. 계급과 배경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내집단이 될 수 있는 생물학적 방법으로선 다른 대안도 없어 보인다. 외부 존재를 열심히 찾으려는 노력은 의미심장하다. 거꾸로 인간이 먼저 발견을 당하는 경우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가령 발견당한 아메리카의 역사란 참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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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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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악은 편재적인 것이다. [중략]

물론 악이 모든 사람에게 현실의 사실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악은 적어도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악은 과거에도 가능성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갖춰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현재에 있어서도 가능성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언제까지고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악마가 어느 한 국가를 권유했다든가, 어느 한 정당을 독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또 국가사회주의가 악을 처음으로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잘못이다. 그것은 국가사회주의를 과대 평가하는 것이다. 국가사회주의는 결코 창조적인 것이 아니었다. 악에 관해서도 창조적이진 않았다. 국가사회주의는 악을 최초로 창출해 낸 것이 아니고 다만 악이 (과거의 어떤 조직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장된 것뿐이다. [중략]

그러나 우리는 공세로 전환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초록은 동색' 이라는 오류를 범해도 좋단 말인가? 아니면 좀 더 분명하게 진실을 말하자면, 흑도 적도 적백색도 모두 그 내용은 같은 갈색이라고 단정해버려도 좋은 것인가? 우리는 결국 같은 일을 되풀이함으로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면서도, 목표만을 바꾸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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