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체스판 -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과 유라시아
Z.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 옮김 / 삼인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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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냉전 이후의 전통적인 중국 봉쇄론를 다시 한번 말하고 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 주도의 나토가 유지되어야 하고, 터키는 중동권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러시아가 나쁠 것은 없지만, 미국의 인권 외교가 러시아의 대 중국 밀착을 초래해선 안 된다. 동아시아에서의 반중 동맹은 유럽보다 강고하지만, 지역 협력의 가능성은 언제고 경계해야 한다. 그 원칙은 '미국 없는 유럽' 을 저지하는 것에서도 동일하다. 일본은 키우고 중국은 관리하라, 그리고 한국을 동맹에 남겨두는 것은 피차에 유익할 것이다. 너무 먼 아프리카와 너무 만만한 남미는 상세히 거론 안 한다. 어쨌든 유럽에선 나토의 동진과 남진이 중요하고 (시점이 90년대 후반이라 그래서 발칸이 거론된다), 아시아에선 기존 체제의 유지가 핵심이다. 일본의 안보 역할 증대는 필연적이고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을 모 헌책 싸이트에서 2000원에 샀다. 비슷한 가격대로 건진 책들이 수학의 확실성, 부분과 전체, 가짜영어사전, 김준엽 장정 1,2 등이었으니.. 나름대로 거대한 수확이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선택했으나, 제일 먼저 읽은 김에 소감을 쓴다. 9.11과 아프간-이라크 전쟁 이전의 책이라, 많은 것들이 누락되거나 상황이 달라졌음을 감안해야 한다. 선제공격론의 본격적인 부상 이전에, 주류 담론 중에서도 온건한 편. i promise to do whatever it takes to help Taiwan defend itself, 최고 결정자권자가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시대엔 확실히 온건파에 속할 것이다. 온건파와 매파가 갈라지는 지점은 시간 계획에서이지, 전방위적인 중국 봉쇄라는 틀이 크게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수십년 동안 '현상유지' 라는 기조가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미국이 급격하게 최후 결전 비슷한 분위기로 가는 바람에 냉전 이후를 고민해 오지 않은 한국이 곤혹스럽긴 하다.

이어지는 생각. 일본의 개헌 문제는 진작에 정치적으로 반대 세력이 없다. 뛰어난 테크니션인 오자와*는 야스쿠니 위패 분사로 대외적 반발의 명분을 제거하고 아마 다음 정권 정도에서 여야 합의의 개헌을 추진할 듯 한데.. 일본은 결행의 준비가, 미국은 용인의 자세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하다. 개헌과 재무장에 대한 반발로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것이야말로 일본 신우익의 의도라면.. 한국에게 현실적인 선택은 일단 부시-고이즈미 체제를 넘길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중국-아시아 중시론이 좀 더 힘을 받길 기대해보는 것. (전면대립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덮어쓸) 선택을 강요 받는 중국 포위 구도 대신에 중-일 협력 체제가 그나마 바람직한 미래상이라면, 칼자루는 일본이 나름 쥐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100여년전 안중근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일본이 원했던 지역 패권의 대표성은 명치유신 이후의 결정적 시기마다 서구 열강에 의해 거부당했고, 끝내는 원폭을 얻어맞는 패전으로 처참한 종말을 보고야 말았다.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서 지역 내 헤게모니를 보장 받으려는 시도는 중국을 다시 반식민의 허수아비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는 지금엔 무모한 일이다. 브레진스키의 체스판이 동아시아에게 던지는 교훈이란 결국, 1800년대 이후로 지금껏 만들어보지 못한 동아시아의 체스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 오자와 이치로는 이미 10년도 전에 자민당은 보통국가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며 자민당을 뛰쳐나와 전후 50년 체제를 깨뜨려 버린 장본인이다. 몇 번의 이합집산을 거치며 반개헌의 보루였던 사회당은 공중분해 되어 버렸고, 여야 모두가 개헌을 지지하는 보-보 체제가 들어섰다. '우리끼리 사이좋게 영원히' 라는 식으로, 남한 정치인들에게 내각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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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보 2009-03-16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리뷰타고 왔어요~
지정학적 사고가 듬뿍 담긴 글이네요
중간 문단에 쓰인 동아시아 정세는 날카롭군요

최근에 나온 <미국의 마지막 기회>도 추천드립니다.
2007년에 쓴 글이고 한국에는 올 2월에 번역되었습니다.
9.11 테러와 이후의 부시정책기조와 변화한 상황에 대처할
자신의 정책방향을 담고 있습니다.
80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통찰력을 유지하고 있구요..

추천하고 갈게요~


중퇴전문 2009-04-04 15: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제가 매일 출첵을 하지않다보니, 답글이 늦었습니다. 말씀하신 브레진스키 책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하구요, 또 뵙지요.^^
 
한자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조순 외 지음 / 월간조선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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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적 전통의 단절 같은 문제를 한글 교육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한자에 그렇게 빠삭하다는 양반들이 그럼 번역이라도 좀 열심히 해보던가. 고전 중국어 텍스트의 독해 능력과, 한자-어휘를 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중국 가서 필담 나눠보니,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던가. 한두세기 전의 조상이 남긴 문집은 명확히 이해가 가는가. 전자는 한자-어휘 익히기가 아닌 엄연한 외국어로서의 중국어를 익혀야 할 문제요, 후자 역시 한자-어휘 습득을 넘어서는 고된 훈련과 독서를 거친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요즘 애들은 한자를 몰라서.. 이런 말씀 하는 어르신 치고, 고전을 제대로 읽은 소양이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명보나 연합보 같은 현대 중국어의 문어체 기사 정도도 전전긍긍할 분들이 대다수인데, 19세기 이전의 본격적인 한자 저작들을 대체 어떻게 읽었다는 것인지. 대학까지 나온 중국인들도 전공자가 아니라면 알아먹기 힘든 글들을 말이다. 문자 기호를 안다는 것을 곧 지식 추구와 습득 자체로 이해하고 있는 사고방식부터가, 무슨 책으로 어떤 공부를 해왔다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들 뿐인데. 

TEPS 팔아먹는 한편으로, 한자로 공갈 치는 일 같은 것도 이제 그만 좀 했으면 한다. 지적 전통의 단절이 그렇게 한탄스럽거든, 본인들의 허약한 실력부터 반성하고 고전 번역 씨리즈 같은 거라도 기획해 보든지. 서해문집이나 태학사에서 내는 책 같은 거, 한자 타령이나 하고 있는 신문들과 노친네들은 좀 하면 안 되나. 서유견문록 같은 문체는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나 쓰면 된다. 그리고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 하고, 가지고 있지 않은 소양을 가진 척 하는 놀음도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하면 될 일이다. 왜 모든 한국인이 그 장단을 반드시 같이 맞춰줘야 하는가. 한국과 중국의 고전이라 하면, 뜻있고 재능있는 소수의 연구자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당대의 훌륭한 한국어로 번역해내면 될 일이다. 기업 등에서 중국어 구사자가 필요하다면 마찬가지로 중국어를 제대로 배우면 될 일. 교육의 하향평준화을 평소 우려하고 비판해온 분들이 왜 한자 같은 것에선 하향평준화을 굳이 옹호하는 모순을 보이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한자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주장은 뭐 확인이 안 되는 얘기니까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조갑제씨의 하이 개그는 보통 머리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은 안 들지만서도.

연구 집단의 외연은 확장되고 내공은 깊어지고 독서 대중과의 소통 역시 활발해지는 것. 가야할 길은 멀지만서도, 방향은 대략 나와 있지 않은가. 애들에게 한자 가르쳐야 한다고 난리라니, 애들은 또 뭔 죈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한자 외울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북학의 번역본을 권유할 일이다. 한자 물귀신들은 세종어제를 매일 백번씩 암송하기를, 생전의 대왕께서도 글이라면 자못 백번씩 읽었다 하시니. 그렇게 신구와 노장이 함께 전통과의 관계 복원과, 남한의 지적 후진성 극복과,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준비를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책 같은 것으로 종이 낭비 하지 말고.

p.s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한자 표기가 안 되어 있는 탓에 해독이 불편하거나 어렵다는 분은 설마 없을거라 믿는다. 물론 동음이의어로 인한 심각한 오해와 혼란이 초래될 상황이 있었다면 당연히 안 쓸 이유가 없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작성자와 독자에게 소통 상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도 아울러.

"그렇게 新舊와 老長이 함께 傳統과의 關係 復原과, 南韓의 知的 後進性 克復과, 未來를 위한 可能性의 準備를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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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 2006-04-2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20세기 중반에 독립한 신생국입니다. 본격적으로 한글이 사용된 것이 그 때부터니 말입니다. 20세기 전반기는 일본어를 국어로 읽고 썼고, 19세기 이전에는 한문으로 읽고 썼고... 말씀하신대로 전통의 단절, 역사의 단절이지요. 끊어진 전통을 잇는 방법은 번역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만 현실은 어렵기만 하군요.

중퇴전문 2006-05-18 0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공화국에 저항하고 있는 한문혼용파와 영어공용화파, 이 반동들을 빨리 숙청해야 할텐데 말이죠.;

사견이지만, 국립대와 정부 출연 연구소 등을 네트웍으로 묶어서 번역에도 학위를 수여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본 적이 있죠. 유학 대신 국내 대학원 진학으로 인한 기회비용의 상쇄는 임용에 어느 정도 메리트를 주는 식으로.. 물론 강력한 반발이 따르겠지만. 몇몇 연구소나 개인적 차원에서의 노력도 한계가 있는 바, 번역 없고 공동의 텍스트 없는 가운데 외국 유학만이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악순환은 대학 공동의 차원에서라야 해결의 시도나마 가능할 것 같아서요. 그것도 최소한 몇 세대는 걸리겠지만. 어쨌거나 핵심은 국내파 박사들이 차별 받고 고생하니까 떡고물 좀 나눠주자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오해하는 이도 있더군요), 이미 대학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지금껏 미뤄온 우리 학문의 숙제에 대하여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거죠. 더이상 학생들 외국에 안 보내고, 데리고 같이 공부하겠다, 필요한 텍스트부터 같이 번역해내며,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미 학위 끝내고 자리까지 잡은 본인들이 크게 피해 보는 것도 없잖아요, 학인으로 사는 인생이 좀 달라질 뿐이겠죠. 그것도 개인 의리나 양심만으론 안 되는 문제니까, 앞서 말씀드린대로 국립대들에서부터 시작되어 학계 전체로 파급되어 나가야 할 거구요.

잡설이 길었는데.. 이해관계의 형성이 첨예한 대학 사정에서 거의 불가능한 얘기긴 하죠.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저런 거라도 좀 밀여붙였더라면 좋았을텐데.. 언감생심.

藝術人 2006-09-2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글은 모두 실제학문전공자가 아닌 일상적상식의 수준에서 한자를 필요없다고 보는 글들이다.
중국조선족은 한글전용하지만 독립은 불가능하다.

중퇴전문 2006-11-12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돌격!! 크로마티고교 1 - 여명편
노나카 에이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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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학원 코믹물이라니.. 퇴행적인 걸까. 상관 없음, 부디 웃겨만 다오. XX가족, XXX 마사루, XXX 건달 등을 매니아 추천으로 소개받았는데, 중에 크로마티가 취향에 부합하는 것 같다. 산으로 훈련 하러 갔다가 길 잃은 에피소드는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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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대만 관련 저작은 거의 없다. 연구자도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다. 대만에서 지역학이나 정치학 등을 공부한 소수의 연구자들은 주로 양안 관계나 대륙 쪽을 하지, 본격적인 대만 연구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한중 수교 이후론 중문학, 중국학도들마저 대부분 대륙 쪽으로 가니까, 비전공자의 외도(?) 같은 것도 이제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정학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업계의 유행이기도 하니까 뭐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식민과 민족-분단 문제와 내부적 차별과 냉전과 중미 대결구도라는 근대사를 생각해 볼 때 사실 대만을 제외하고 한국의 맥락에서만 이해하려는 것은 보다 넓고 정확한 이해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가령 남한의 4.3과 대만의 2.28은 서로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안 문제를 민족 문제로 보지 않고, 청조 통치와 일본 식민의 경험 중에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많은 대만인들의 존재는 대만-중국 만큼의 교류는 진척되지 않았으나 대립의 강도는 훨씬 높은 남북 상황에서 해석과 고민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대만대 경제학과의 모 교수는 청조 200년 통치보다 일제 50년간의 성장률이 더 높았다는 주장을 하던데, 낙성대 연구소 같은 곳에서 대만판 식민지 근대화론의 존재와 내용에 관하여 알고 있는진 모르겠다. 운동권 엘리트 정당이 최근 몇년간 정권을 잡은 것도 유사하고,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상대를 벤취마킹하는 사례들도 있다. 2차대전 이후 대만이 남중국을 견제하는 항공모함이라면 한반도는 동북부를 겨냥한 육상 기지였고, 한때의 동맹이었던 대만은 이제 남한의 정치적 변화와 대미관계를 발판 삼아 탈중국을 위한 승부수를 던지려 한다. 그러나 양국은 미국을 주로 의식할 뿐, 한국-대만 관계란 제대로 연구조차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만의 경우엔 국책대학 격인 정치대 한국어과가 한국 관련 전공자들을 소수 배출해 왔으나 역시 어문 계열에 집중된 한계가 있고, 이등휘-쳔쒜이삐엔으로 이어지는 반중 노선의 심화 가운데 (92년 단교 과정에서의 여파도 한몫 했지만) 한국의 의미와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향평가해온 정부-언론의 성향도 존재해왔다. 암튼 사고방식에서부터 일국적 한계를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는 두 나라가 오히려 반대의 모습이라는 것은, 좀 씁쓸한 일이다. 한마디만 더하고 잡담을 줄이자. 참고문헌 목록이 없는 책은 곤란하다. 아무리 연구자가 없더라도, 차라리 영어나 일본어 저작 중에 괜찮은 대만사가 번역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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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4-2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만이나 남한이나 정책 기조는 비슷한 것 같아요. "작지만 강한 나라."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챙길 것 챙기는 强小國이 그 이상형인 것 같은데,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서로 선명성 경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잘 봤습니다. ^^

중퇴전문 2006-05-06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도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하위 플레이어들끼리 나름대로 친미 선명성 경쟁을 해왔죠. 한국과 좀 달라진 점은, 대만은 반중 동맹에 적극 가담하길 스스로 원하거든요. 본인들은 대중 관계를 민족 분단 상황으로 보지 않고, 독립 전의 영국-미국 정도로 보죠. 대만 지도부에서 자주 친일 발언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 이래저래 걸려 있는게 많은 한국과는 달리, 속 편하게 미국과 일본에게 올인한다고나 할까요. 방문을 환영합니다.:)
 
최후의 배심원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몇년을 텀으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그간 나온 그리셤 책들을 몽땅 빌리는 것. 아이스크림 빨아먹으며 주말 내내 열심히 본다.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아마 변하지 않는 어떤 것들 때문에 그리셤을 찾는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남부의 작은 도시, (미국식 정치 지형에서) 리버럴한 2~30대 남성 주인공, 인종 문제, 주인공과 흑인 개인-사회와의 교감, 해피 엔딩, 그리고 간결한 문체. 이 책 역시 그리셤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크게 배반하지 않는다. 작가는 법정 스릴러에만 머물려 있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을 하는 것 같은데, 나처럼 이기적인 독자는 제 2의 the firm 같은 것을 봤으면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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