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대만 관련 저작은 거의 없다. 연구자도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다. 대만에서 지역학이나 정치학 등을 공부한 소수의 연구자들은 주로 양안 관계나 대륙 쪽을 하지, 본격적인 대만 연구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한중 수교 이후론 중문학, 중국학도들마저 대부분 대륙 쪽으로 가니까, 비전공자의 외도(?) 같은 것도 이제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정학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업계의 유행이기도 하니까 뭐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식민과 민족-분단 문제와 내부적 차별과 냉전과 중미 대결구도라는 근대사를 생각해 볼 때 사실 대만을 제외하고 한국의 맥락에서만 이해하려는 것은 보다 넓고 정확한 이해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가령 남한의 4.3과 대만의 2.28은 서로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안 문제를 민족 문제로 보지 않고, 청조 통치와 일본 식민의 경험 중에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많은 대만인들의 존재는 대만-중국 만큼의 교류는 진척되지 않았으나 대립의 강도는 훨씬 높은 남북 상황에서 해석과 고민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대만대 경제학과의 모 교수는 청조 200년 통치보다 일제 50년간의 성장률이 더 높았다는 주장을 하던데, 낙성대 연구소 같은 곳에서 대만판 식민지 근대화론의 존재와 내용에 관하여 알고 있는진 모르겠다. 운동권 엘리트 정당이 최근 몇년간 정권을 잡은 것도 유사하고,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상대를 벤취마킹하는 사례들도 있다. 2차대전 이후 대만이 남중국을 견제하는 항공모함이라면 한반도는 동북부를 겨냥한 육상 기지였고, 한때의 동맹이었던 대만은 이제 남한의 정치적 변화와 대미관계를 발판 삼아 탈중국을 위한 승부수를 던지려 한다. 그러나 양국은 미국을 주로 의식할 뿐, 한국-대만 관계란 제대로 연구조차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만의 경우엔 국책대학 격인 정치대 한국어과가 한국 관련 전공자들을 소수 배출해 왔으나 역시 어문 계열에 집중된 한계가 있고, 이등휘-쳔쒜이삐엔으로 이어지는 반중 노선의 심화 가운데 (92년 단교 과정에서의 여파도 한몫 했지만) 한국의 의미와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향평가해온 정부-언론의 성향도 존재해왔다. 암튼 사고방식에서부터 일국적 한계를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는 두 나라가 오히려 반대의 모습이라는 것은, 좀 씁쓸한 일이다. 한마디만 더하고 잡담을 줄이자. 참고문헌 목록이 없는 책은 곤란하다. 아무리 연구자가 없더라도, 차라리 영어나 일본어 저작 중에 괜찮은 대만사가 번역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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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06-04-2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만이나 남한이나 정책 기조는 비슷한 것 같아요. "작지만 강한 나라."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챙길 것 챙기는 强小國이 그 이상형인 것 같은데,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서로 선명성 경쟁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잘 봤습니다. ^^

중퇴전문 2006-05-06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도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하위 플레이어들끼리 나름대로 친미 선명성 경쟁을 해왔죠. 한국과 좀 달라진 점은, 대만은 반중 동맹에 적극 가담하길 스스로 원하거든요. 본인들은 대중 관계를 민족 분단 상황으로 보지 않고, 독립 전의 영국-미국 정도로 보죠. 대만 지도부에서 자주 친일 발언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 이래저래 걸려 있는게 많은 한국과는 달리, 속 편하게 미국과 일본에게 올인한다고나 할까요.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