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예술 작품을 되살릴까?
파비에네 마이어.지빌레 불프 지음, 마르티나 라이캄 그림, 이사빈 옮김, 김은진 감수 / 원더박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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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름고래입니다.

약 10여 년쯤 전에 프레스코 벽화를 복원했는데

원형을 알 수 없게 복원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또 17세기 바로톨레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성모 잉태'화에 대한 복원이 이렇게 되었다는 기사도 보았지요….

며칠 전엔 1725년에 세워진 교회의 조각상을 복원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결과였는데

<에케 호모>는 금세 굳어버리는 프레스코화의 특성을 몰랐던 동네 할머니가

바르톨로메의 성모 잉태화는 가구 복원 업자가

교회의 천사상 역시 비전문가가 복원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스페인에서 일어난 일인 것도 공통점)

<에케 호모>는 이후 더 유명해져서

작은 마을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진짜 미술 작품의 복원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요.

때마침 발견한 이 책 <어떻게 예술 작품을 되살릴까?>가 정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책은 도난당해 훼손된 그림을 복원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림을 어떻게 관찰하는지,

조명은 어떤 걸 사용해서 그림의 이력과 훼손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떤 안료로 그림을 그렸고 현재의 안료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알려주고

종이가 어떻게 다른지, 몇 겹으로 그림이 이루어졌는지 등을

디테일하게 알려주는데 얼마나 정밀한 작업을 통해서 한 땀 한 땀 복구하는지 놀랍습니다.



캔버스의 천이 찢어지면 그걸 금속침으로 한 올 한 올 정돈하고 꿰매는 '실 메우기'

접착제 자국을 없앨 때 용제로 접착제를 한 방울씩 녹이고 그나마도 얼른 빠져나가라고 이용하는

'진공 테이블' 같은 걸 보면서

진짜 신기하고 그 끈기와 세밀한 작업에 감탄밖에 안 나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서 복원해서 훼손된 우리 옛 그림들과 위에 설명한 작품들도

여기기 나오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더라면

완벽한 복원이 이루어졌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절로 들었습니다.

훌륭한 복원가가 많을 텐데,

우리 문화재나 스페인의 문화재 모두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얇아서 어린 친구들을 위한 그림책처럼 보입니다만

이 책의 대상은 청소년입니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 이상,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모두가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https://m.blog.naver.com/bookanddebate



예술은 커다란 기억 같은 것입니다.
……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한 사회의 기억인 예술이 사라진다면
그 사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술작품을 보존하는 사람이 누구냐고요?
예술 작품을 사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고,
소중하게 여기고,
관심을 가지는 모든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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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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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표지와 같다.

그리고 제목과 같다.

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있다.

공동체의 믿음을 깨는 무차별 살인으로 시작해서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복수가 가득하다.

'해피 스마일 베어'에 빙의한 도하와

엄마를 잃고 가출팸에서 버티는 화영,

그런 아이들을 팔아서 돈을 버는 영진,

아이들을 사서 이런 나쁜 짓, 저런 흉악한 짓을 하는 어른들.

뉴스 사회기사에서 볼 법한 사건들이 나온다.

그래서 어쩌면 사회 비판 소설이기도 한.

피와 살이 튀고, 저수지의 시체와 청부 살인업자가 등장하고

악령이 활개치는 도시 야무시에서

화영을 구하기 위해 손도끼를 휘두르는 '해피 스마일 베어'는 든든하기만 하다.

잃은 기억과 몸을 찾으려는 곰 인형과 엄마의 복수를 위해 집념을 불태우는 화영의

미스터리 공포 로맨스.

덕분에 착잡한 공포로만 끝날 이야기가

말랑말랑한 청춘물이 되어버렸다는 게 이 책의 좋은 점이다.

역시 로맨스는 위기에서 피어나고, 고통 속에서도 풋사랑은 아름답다.

이웃님의 이 책 리뷰를 보고

'나를 위해 손도끼를 휘둘러줄 든든한 테ㄷㅣ 베어 공구'를 원했으나

아껴주고 눈알을 붙여주며 애정을 담아야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나서주는 존재가 탄생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되고.

여름이 가기 전에 완독해서 다행이다.

조예은 작가, 기억하겠다.


그러나 흉기란 남의 살에 박혀 있는 순간을 제외하곤 언제든 나 역시 상처 입힐 수 있는 것. 태어날 때부터 쥐고 태어난 게 아닌 이상 영혼 정도는 팔아야 간신히 손잡이를 쥘 수 있는 법이다. - P8

그 순간,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럴 리가 없는데 까만 플라스틱 눈알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 화영은 신이 주신 탈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도끼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맑은 눈의 해피 스마일 베어가 기다렸다는 듯 두 발로 걸어 피 웅덩이 위 손도끼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는 것 아닌가. 진득한 피가 손잡이를 타고 흘러 베어의 한 팔을 물들였다. 곰인형이 손도끼를 화영에게 건넸다. 화영은 저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고 물었다.

"날 구해 준게 너야?" - P30

그러니까, 해피 스마일 베어는 화영의 모든 행복한 순간, 그리고 또 모든 절망의 순간에 곁에 있었던 셈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 - P36

"곰, 나 한 번만 더 도와주라. 그러면 나도 너 도와줄게."

"도와준다고?"

"응. 뭐든. 그 몸으로는 마음대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을 거 아냐."

맞는 말이었다. 도하는 길고양이의 먹이가 될 뻔한 일을 떠올렸다. 원래 몸으로 돌아가려면 사고 당한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단서는 비어 있는 기억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동안은 어쨌든 조력자가 필요했다. 사망한 경우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뭐, 저승사자가 알아서 찾으러 오겠지.

"내가 뭘 도와주면 돼?"

"복수."

화영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 P80

화영은 나지막이 답했다. 아니? 내가 왜 죽어? 난 살 거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곰 인형을 꿰매는 것. - P348

"돌아와서 다행이야."

도하는 건네받은 곰 인형의 손을 흔들며 답했다.

"당연하지. 해피 스마일 베어는 죽지 않아."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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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빌런들 - 당신이 소비하는 사이, 그 기업들은 세상을 끝장내는 중이다
이완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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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의 책들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역사는 어떠하며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면

이 책은 제목 <시장의 빌런들>에 맞게 '빌런'에 중심을 두고 있다.

특히 서문에서 예를 들고 있는

1973년 GM의 자동차 폭발 사고는 이 책이 말하려는 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차량의 결함으로 자동차가 불타서 사람이 죽었는데

이유는 GM이 결함을 알고도 리콜하지 않았기 때문.

차량 결함으로 사망자가 발생할 때 필요한 비용과

결함을 알리고 리콜하는 비용의 차이에서

후자 쪽이 압도적으로 비용이 컸기 때문에 외면한 것.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이 모두 이런 식인데,

저자는 "시장과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로 오랫동안 통용된 기업관"이 정말 옳은지 질문하며

그러면서 이들 거대 기업의 횡포를 막는 것이 시민과 소비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코카 콜라, 미쓰비시처럼 창업한지 100여 년을 훌쩍 넘긴 기업부터

아마존과 우버라는 새로운 방식의 기업까지 다룬다.

제약회사의 로비에 따라 말라리아 치료제로도 사용되는 AIDS 치료제의 값이 폭등한 예라든지

마약이 너무나도 많이 퍼진 미국의 상황, 가습기 살충제의 옥시레킷벤키저 등

현재 직면한 사회문제를 포함하고 있어 신문 사회면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든다.

264쪽의 책에 24 챕터로 이루어져 있어서

짧은 분량 탓인지 각 챕터별, 빌런 회사별 설명이 자료가 부족해서

어떤 이들은 각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 공정하지 않다는 리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거대 기업이 소비자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해악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사례집이라고 본다면 괜찮은 편.

저자가 기자라 그런지 신문 칼럼 같은 맛이다.

비문학 읽기를 해야 하는 청소년,

사회문제에 관심이 생긴 성인들에게 적합한 책.

TMI

1. 하인리히 법칙은 1 : 29 : 300 = 1명 사망 : 29명 부상 : 300명 다칠 뻔

2. 샌드위치 기법 : 화법 중 하나인데, 주로 아이들에게 하는 칭찬-꾸중 기법.

- 1. 잘한 점을 찾아 칭찬 먼저 2. 부족한 점 지적, 개선점 제시 3. 긍정적인 점 강조

- 부정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개선'을 위한 피드백이라는 것

- 자녀와 긍정적인 관계 유지에 좋음.

- 언제나 개선과 반성이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않는다는 점도...

일본인이 재앙을 망각하지 않는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인류는 모두 망각이라는 비슷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 P25

하인리히는 사고를 분석할 대 노동자 사망사고와 부상 사고, 사고 징후만을 조사대상으로 삼았지만 버드는 여기에 ‘아차 사고(near miss)‘(실제로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위험했던 순간)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그리고 사망 사고와 부상 사고, 물적 손실을 불러온 사고, 아차 사고의 통계적 비율을 1:10:30:600이라는 숫자로 도출해냈다.

숫자가 조금 바뀌었어도 하인리히와 버드가 이야기하려는 바는 같다. 사망 사고 같은 대형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으며, 그전에 이미 수많은 징후가 나타난다는 게 두 법칙의 핵심이다. - P51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쳐agriculture‘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두 영어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애그플레이션은 ‘농산물의 값 급등‘ 혹은 ‘농산물 값이 상승해 물가가 전체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11의 조사에 따르면,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약 13억 톤의 멀쩡한 식량이 버려지고 있다. 그 말인즉, 식량이 남아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2008년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방글라데시와 브루키나파소, 카메룬 등에서 굶주린 국민이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P58

하지만 우버를 비롯한 그 어떤 회사도 이들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이 현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처지와 닮았다. 수백 년 동안 싸우면서 획득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우리가 ‘인류의 역사적 진보‘라고 부른다면, 이들 기업은 지금 현대 사회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역사의 퇴보를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 P135

미스씨비시그룹은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우익 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후원한다. - P175

총의 발명은 인류 역사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살인의 죄책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

미국 사회 각계의 전문가은 그들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분석에 나섰다.

……

그렇지만 아무리 여러 방면으로 분석한들 이 처참한 사태의 도화선은 뚜렷했다. 바로 고등학생 신분이던 해리스와 클리볼드가 너무나도 쉽게 총기를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 P192

한편 베를루스코니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방송사들은 뉴스에 ‘샌드위치 기법‘도 사용했다. 보통 방송사가 정치 관련 뉴스를 보도할 때는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먼저 내보내고, 야당의 반론을 그 뒤에 덧붙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 방송국들은 베를루스코니 개인의 의견이나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먼저 보도한 뒤, 야당의 주장을 가볍게 한두 마디 끼워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반드시 베를루스코니의 의견이나 정부와 여당의.입장을 다시 다루면서 마치 샌드위치를 만들듯이 이슈 보도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하면 모든 쟁점이 메를루스코니와 여당의 주장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 P260

기업의 입장에서 도덕과 사회적 책임을 경시하는 경영은 앞으로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역시 소비자로서, 또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와 같은 빌런 기업들을 감시하고 응징할 책무가 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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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 개정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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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탐정, 저런 형사 다 봤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혼수상태에 빠진 채로 추리하는 탐정을 보게 되었다.

어이없음과 황당함의 콜라보 속에서도 진범은 밝혀지고.

배경은 홍콩, 2013년 사건부터 1967년 사건까지 총 6개의 사건이 펼쳐진다.

그래서 제목도 <13·67>이라고.

제일 처음 인용한 문구처럼

2000년대 이후의 사건 둘은 홍콩의 현재 반영하고

이전의 네 사건은 반환 직전, 직후의 혼란한 시기와

영국 통치 시기의 부패가 만연한 홍콩 사회,

중국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시위와 폭동이 있던 시기를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룬다.

이 소설은

첫 이야기에서 혼수상태로 추리하는 관독찰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구성이면서 전지적 작가시점인데

마지막이면서 첫 번째 사건인 '빌려온 시간'에서는

뜬금없이 '나'가 등장하는 일인칭주인공시점이 되면서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그러고는 67년, 한 번의 만남이 서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조금은 평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 것은 시점의 변화.

이웃님은 찬호께이의 이 책과 <망내인>을 추천했다.

두 권을 읽고 나면 찬호께이에게 빠지고 말 거라고.

우선 발은 담갔다.

<망내인>도 궁금해졌으니 이웃님의 고래 낚시는 반쯤 성공.

다음 책까지 읽고 빠졌나 안 빠졌나 확인해 보자.

노련하고 재치 넘치며 고결하고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그리고 돈 몇 푼에도 세세하게 따지는, 이렇게 독특하고 괴상한 인물인 관전둬는 1960년대의 좌파폭동을 겪었고,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 분쟁을 버텨냈으며, 1980년대의 강력범죄에 대항했고, 19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을 목도한 데 이어, 2000년대 사회변화를 증언하고 있다. - P14

"샤오밍, 시민들이 우릴 미워하고 위에선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더라도, 앞뒤로 적을 두게 되더라도 경찰의 본분과 사명을 결코 저버려선 안 돼.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해."
얼마 전 병상에서 실처럼 연약한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던 관전둬가 뤄 독찰의 손을 꼭 쥐고 필사적으로 뱉어낸 말이다. - P16

뤄 독찰이 쓰게 웃었다. 그도 이런 식의 수사가 회색지대에 발을 들인 것과 같다는 걸 잘 알았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다 해도 사실 이런 방식은 탕 아저씨가 사용했던 ‘절대 체포되지 않는 범죄 수법과 별다를 게 없었다. 원칙을 어긴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뤄 독찰은 사부가 했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 기억해야 해. 경찰의 진정한 임무는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 무고한 시민에게 제도가 피해를 입히거나 정의를 표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명한 근거를 내세워 경직된 제도에 대항해야 하네. - P111

연못 바닥에 더러운 진흙이 잔뜩 쌓여있더라도 마구 휘젓지 않는다면 연못물은 여전히 맑게 유지된다. 진흙을 퍼내고 싶다면 조심스럽게 조금씩 걷어내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퍼내려 하면 물이 혼탁해지기 쉽다. 연못의 생태계를 자칫 다 망가뜨릴 수도 있다. - P136

"천리안 관전둬요?" 아제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한 번 본 건은 절대 잊지 않고, 발자국만 봐도 범인을 알아낸다는 천재 탐정요?" - P173

조직의 일원이 되면 정직했던 사람도 결국 똑같아진다. 홍콩경찰에는 이런 말이 있다. ‘뇌물 받는 것‘은 자동차와 같다. 소속 분대가 뇌물을 챙겼을 때 ‘차에 올라타면‘ 그 돈을 나눠 받는다. 부패에 동참하기 싫어서 돈을 나눠 받지 않더라도 입을 다물어주면 ‘차를 따라 달리는 ‘것이다.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우긴다면 ‘차 앞에 서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자동차에 부딪혀 다친다. - P491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안락함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은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 P583

물론 폭탄을 거기 둔 건 당신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멍청하고 고지식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거야. 두즈창이 당신한테 진술하겠다고 했지만 당신은 잡일부에서 나서지 말라고 하니까 꼼짝도 안 했지. 두즈창은 그때 노스포인트의 폭탄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어.
……
당신은 ‘경찰의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1호차의 폭탄을 해체했어. 그런데 어제는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 당신이 보호해야 하는 건 경찰이야, 시민이야? 당신이 충성하는 건 홍콩 정부야, 홍콩 시민이야? - P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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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한국사 - 5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이해되는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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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역사를 '이 시대에 갖추어야 할 교양과 상식'으로 보고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한 역사가 필요하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BC.2333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5천 년의 역사가 350여 쪽에 걸쳐서 펼쳐진다.

긴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놓으면서도 술술 읽히고

귀여운 그림과 지도는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짚어주어서

한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모처럼 5천 년 역사를 살펴보고 나니 갑자기 오래 산 기분.

삼국유사에 실렸던 '만파식적'의 이야기가 그때는 그냥 그랬는데

지금은 '만파식적이 꼭 필요한 순간'이라 외치고 싶어졌다.

'만파식적' 찾으러 모험을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파티 모집합니다?

(어린이용 모험담을 열심이 읽은 후유증인 듯.)

역사를 파편으로 외우신 분,

한국사의 맥락을 꿰고 싶은 분들에게 권합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흔히들 반만년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시작점은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출발한 기원전 2333년입니다. - P17

단군 이야기에서 놓치면 안 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천신족‘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점입니다. 환인은 하늘나라의 사람, 즉 천신입니다. 그의 후손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고조선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P20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30년이 흐른 뒤, 옛 고구려 땅에는 발해가 건국됐습니다. 과거에는 이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고 불렀지만, 남북국시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남쪽에는 신라,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으니까요.
……
남국북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입니다. 유득공은 <발해고>라는 저서에서 발해가 우리의 역사임을 주장했어요. 오랜 시간 잊혀 있던 발해의 역사를 되살린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89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신문왕에게 나라를 지킬 보배를 주었는데 그 보배가 대나무였다고 합니다. 신문왕은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만파식적입니다. ‘만개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피리‘라는 이름으로 온갖 근심을 없애주고 평안을 불러온다는 뜻이지요. 만파식적을 불면 적이 물러가고, 병이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 P101

세종 이전까지는 우리는 시간에 대한 주권이 없었어요. 중국 역법을 그대로 받아 와서 썼거든요. 중국이랑 우리나라 사이에 시차가 있으니까 이 달력도 당연히 오차가 있었어요.
……
사실 지금도 우리는 우리 시간을 쓰지 못하고 있어요. 동경시를 쓰고 있잖아요. - P192

경제 분야에서 숙종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화폐를 유통시킨 일입니다.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화폐가 실질적으로 유통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화폐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가치가 없었어요. 화폐를 신뢰할 수 없으니 사용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계속 옷감이나 쌀과 같은 현물로 교환을 하다가 숙종 때 와서야 금속화폐인 상평통보가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게 되었지요. - P231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많은 일을 했어요. 1943년 열렸던 카이로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의 대표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약속했던 것도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 덕분이었습니다. 독립 약속이 명문화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었어요. - P317

1970년에는 전태일 분신사건이 발생합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이 요구한 것은 대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 10~12시간만 일하게 해달라는 것, 일주일에 한 번만 쉬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지금 보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소박한 요구예요. - P335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나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추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던 안중근처럼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의 교훈들을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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