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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 개정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월
평점 :
오랫동안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탐정, 저런 형사 다 봤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혼수상태에 빠진 채로 추리하는 탐정을 보게 되었다.
어이없음과 황당함의 콜라보 속에서도 진범은 밝혀지고.
배경은 홍콩, 2013년 사건부터 1967년 사건까지 총 6개의 사건이 펼쳐진다.
그래서 제목도 <13·67>이라고.
제일 처음 인용한 문구처럼
2000년대 이후의 사건 둘은 홍콩의 현재 반영하고
이전의 네 사건은 반환 직전, 직후의 혼란한 시기와
영국 통치 시기의 부패가 만연한 홍콩 사회,
중국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시위와 폭동이 있던 시기를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다룬다.
이 소설은
첫 이야기에서 혼수상태로 추리하는 관독찰이 주인공인
피카레스크 구성이면서 전지적 작가시점인데
마지막이면서 첫 번째 사건인 '빌려온 시간'에서는
뜬금없이 '나'가 등장하는 일인칭주인공시점이 되면서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그러고는 67년, 한 번의 만남이 서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조금은 평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 것은 시점의 변화.
이웃님은 찬호께이의 이 책과 <망내인>을 추천했다.
두 권을 읽고 나면 찬호께이에게 빠지고 말 거라고.
우선 발은 담갔다.
<망내인>도 궁금해졌으니 이웃님의 고래 낚시는 반쯤 성공.
다음 책까지 읽고 빠졌나 안 빠졌나 확인해 보자.
노련하고 재치 넘치며 고결하고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그리고 돈 몇 푼에도 세세하게 따지는, 이렇게 독특하고 괴상한 인물인 관전둬는 1960년대의 좌파폭동을 겪었고, 1970년대의 경찰과 염정공서 분쟁을 버텨냈으며, 1980년대의 강력범죄에 대항했고, 19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을 목도한 데 이어, 2000년대 사회변화를 증언하고 있다. - P14
"샤오밍, 시민들이 우릴 미워하고 위에선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더라도, 앞뒤로 적을 두게 되더라도 경찰의 본분과 사명을 결코 저버려선 안 돼.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해." 얼마 전 병상에서 실처럼 연약한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던 관전둬가 뤄 독찰의 손을 꼭 쥐고 필사적으로 뱉어낸 말이다. - P16
뤄 독찰이 쓰게 웃었다. 그도 이런 식의 수사가 회색지대에 발을 들인 것과 같다는 걸 잘 알았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다 해도 사실 이런 방식은 탕 아저씨가 사용했던 ‘절대 체포되지 않는 범죄 수법과 별다를 게 없었다. 원칙을 어긴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뤄 독찰은 사부가 했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 기억해야 해. 경찰의 진정한 임무는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 무고한 시민에게 제도가 피해를 입히거나 정의를 표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명한 근거를 내세워 경직된 제도에 대항해야 하네. - P111
연못 바닥에 더러운 진흙이 잔뜩 쌓여있더라도 마구 휘젓지 않는다면 연못물은 여전히 맑게 유지된다. 진흙을 퍼내고 싶다면 조심스럽게 조금씩 걷어내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퍼내려 하면 물이 혼탁해지기 쉽다. 연못의 생태계를 자칫 다 망가뜨릴 수도 있다. - P136
"천리안 관전둬요?" 아제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한 번 본 건은 절대 잊지 않고, 발자국만 봐도 범인을 알아낸다는 천재 탐정요?" - P173
조직의 일원이 되면 정직했던 사람도 결국 똑같아진다. 홍콩경찰에는 이런 말이 있다. ‘뇌물 받는 것‘은 자동차와 같다. 소속 분대가 뇌물을 챙겼을 때 ‘차에 올라타면‘ 그 돈을 나눠 받는다. 부패에 동참하기 싫어서 돈을 나눠 받지 않더라도 입을 다물어주면 ‘차를 따라 달리는 ‘것이다.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우긴다면 ‘차 앞에 서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자동차에 부딪혀 다친다. - P491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안락함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은 삶의 유일한 이유이자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 P583
물론 폭탄을 거기 둔 건 당신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멍청하고 고지식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거야. 두즈창이 당신한테 진술하겠다고 했지만 당신은 잡일부에서 나서지 말라고 하니까 꼼짝도 안 했지. 두즈창은 그때 노스포인트의 폭탄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어. …… 당신은 ‘경찰의 가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1호차의 폭탄을 해체했어. 그런데 어제는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 당신이 보호해야 하는 건 경찰이야, 시민이야? 당신이 충성하는 건 홍콩 정부야, 홍콩 시민이야? - P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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