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활 독서 - 보는 인간에서 읽는 인간으로
유광수 지음 / 북플랫 / 2025년 8월
평점 :
저자 유광수는 라디오 매거진 <월말 김어준>에서 '고전문학'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으로 고전문학의 해석을 듣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익히 알만한 고전 소설들로 시작했으나
회차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이야기를 소개받을 수 있어 더욱 기쁘고.
듣다 보면 집안에 굴러다니던 할아버지의 책이었던 고전 소설 모음집,
국한문 혼용에 세로줄 쓰기에다 빡빡한 글자 간격을 자랑했던 그 책이 생각나며
(생각해 보니 그걸 초딩, 아니고 국딩 때 읽었단 말인가? 오~ 놀라운 나!)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안 읽지?' 하는_생각을 하게 되어
어린 친구들에게 열심히 권하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아 아쉬울 뿐.
그러나 포기하지 않겠다!
고전소설만큼이나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는
이 책으로 '독서는 생활'임을 강조하면서 일단 읽으라고 권하지만
그게 가능한 사람은 이미_책을_읽고_있을_테니
새로운 독자 창출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저자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읽기의 즐거움, 그 충만한 기쁨과 책과_함께 살아온 삶을 기억나게 해주어서다.
가슴에 품었던 보물들이 읽는 동안 하나하나 떠오르며
짧은 책이 길게 읽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낡은 고전소설 모음집, 어린 날 읽던 전집,
대학시절 땡땡이치고 도서관에 숨어 읽었던 <로마제국 쇠망사>와
다다이즘_어쩌고_하는 러시아 예술론을 비롯한 기억도 나지 않는 많은 책들,
갓난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와 단절된 나는 동물인가 인간인가 고뇌하며 읽었던 니체와
읽지도_못하는_책을 거꾸로 들고는_읽는_체 하던 쪼꼬맣던 아이를,
남편과 함께 읽으며 서로 권하던 책들을,
그렇게 지난 시간과 추억을.
그리고 어린 친구들과 다시 읽는 많은 책들을 떠올리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한동안 읽고 있음에도 읽기가 어렵고 쓰기 힘들었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써야만 한다는 압박에
퇴고 없이 갈기듯 써 내려간 글들을 공개하는 부끄러움에
어느 순간 목이 막히듯 머리도 글도 막혔는데,
작가의 말대로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
역시 힘을 빼고 그냥 읽고 그냥_쓰는_것이 진리인 것을.
저자는 독서의 생활화를 권하며
책이_있는 곳은 어디든, 정해진 시간에 힘 빼고,
밑줄 치고 메모하며 저자와 대화하라 조언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읽을_책을_주변에 추천하는 것.
우리 블로그 이웃님들이 잘하고 계신, 바로 그거다.
그러니 나도 권해본다. 그냥 읽자. 마음을 열고.
책이 있으니 펼치고, 저자가_하는_이야기를 들어보자.
그의 생각이 나와 같아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자.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있을 터다.
저자의 추천처럼 단편도 좋다. 무엇이든 시작하자.
책 마지막에는 '최소한의 생존 독서 목록'이 있는데
'나는 누고, 우리는 어떻게 지금처럼 되었으며, 우리_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지금처럼 살게 되었는지, 우리 욕망과 현실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등을 기준으로 23권 골랐다고.
안 읽은 책만 있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몇 권은 읽었다.
그중에서 리뷰한 책도 있고. 다행이다.
TMI :
1. 저자의 추천도서 중 리뷰한 책
잭 웨더포드,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https://m.blog.naver.com/bookanddebate/223896138118
한스 로슬링 외, <팩트풀니스> https://m.blog.naver.com/bookanddebate/223495477370
2. '아무튼' 시리즈처럼 '생활' 시리즈가 생긴 모양.
처음_책이_좋아서 다음 책도 조금 기대된다.
읽는_이유는 꼭 뭔가를 알려고 해서가 아니다. 글자가 있으니 그냥_읽을_뿐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그냥_하는_일이_읽기다. 우리는 읽는다. 길을 걷다가도 표지판이든 간판이든 하다못해 땅에 떨어진 홍보물 문구라도 읽는다. 그냥_그런다. 뭘 알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생활인 것이다. - P8
그러니 ‘읽기‘란 적힌 글자의 의미와 함께 적혀 있지 않은 글의 의미도 같이 읽어내야 진짜 문해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31
생각해 보니 보물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걸 다시 보게 되는 순간, 그 시절의 감정과 행복, 느꼈던 활기와 즐거움, 분위기와 향기까지 죄다 떠오르게 하는 것 말이다. 같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남들에겐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같이 공유하지 않은 시간과 함께 하지 못한 장소에서의 그 무엇을 나처럼 느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 모든_것이 오롯이 나만의_것이 될 뿐이다. - P53
대학 시절 강의와 강의 ㅅㅏ이에 빈 시간이 생기면 그냥_도서관에 갔다. 책을 읽으려는 생각보다는 책을 구경할 요량으로 갔다. 넓은 공간에 죽 늘어선 서가 사이를 다니며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의 제목을 눈으로 훑었다. 꺼내 읽지 않아도 기가 막힌 힐링이 되었다. 그냥_아이쇼핑 같은 거였다. - P58
우리는 자꾸 자신의 호흡과 리듬대로 읽지 않고 남들처럼 읽으려고 한다. 내 스타일이 있는데 억지로 맞추려 하니 호흡이 가빠지고 리듬이 엉망이 된다. 그러다 보니 책 읽기는 재미가 아니라 고역이 될 수밖에 없다. - P82
우리는_함께_읽을_수 있는데, 그건 똑같이 읽는다는_것이 아니라 달리 읽어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의 ‘함께‘이다. 혼자 읽는_것은 당연하고 본질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독서가 사실은 함께_살기_위해_함께_읽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각기 알아서 어떤 책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읽기만 한다면 우리는_모두_다_함께_책을_읽는_것이다. - P77
스탈린은_책을_읽었다. 그것도 많이 읽었다. 하지만 그는 책을_읽은 것이 아니고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자신의 비뚤어진 아집을 고착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것들을 찾아 뒤적거린 자였을 뿐이다. 책이_지니고_있는 본래의 맥락이나 책이_지향하고_있는_가치를 알지 못했다. 당연하다. 남의 말을 경청하려고 책을_읽은_것이_아니라 제 아집의 근거를 찾기 위해 읽었으니 말이다. 그는 책을_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_도구로 삼았을 뿐이다. - P92
글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자세는 마음을 열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호기심으로_읽는_것이다. …… 다음으로 대화를 하며 읽는다는 것은 글과 내 생각을 견주어 가면서 읽는 방법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대화‘라는 점이다. 대화는 비난과 매도가 아니다. 힐난과 질책을_하는_것은 훈계이지 대화라고_하기_어렵다. …… ‘대화적 읽기‘란 글을 쓴 작가와 내가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읽어나가는_말이다. 그렇게 사색하고 고민하며 읽어낸다. 한 구절을 두고도 한참 동안 생각해 볼 수도 있다. - P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