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문학동네 청소년 76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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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업체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구름고래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조우리 작가의 신작 <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_호텔>입니다.


첼시_호텔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오래된 호텔입니다.

1905년 개장한 이래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 호텔에 머문 것으로 유명하죠.



이 책은 그 첼시_호텔에 머물렀던 뮤지션을 기억하는 부모를 둔 아이, 락영이의 이야기입니다.


밤 열 시의 종로 뒷골목은 내가 속해 있지 않은 다른 행성인 듯 어둠도 빛도 왜곡되어 있다.

7쪽, 프롤로그, 첫 문장

종로 뒷골목의 유흥가, 그곳에 자리 잡은 '첼시 호텔'은

"간판만으로도 저 장소는 스러져 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락영이 아빠가 이십 년째 운영하고_있는 이곳은 음악을 신청하면 들려주는 LP BAR입니다.

그곳에서 락과 메탈 음악을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아이 락영은

이제 음악을 듣지 않아요.


나는 형광등 아래서 일할 거야.

22쪽


아빠처럼 밤에 출근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아홉시에 출근해서 여섯시에 퇴근하는 평범한 일상을 꿈꿉니다.

아빠의 가게가 위기에도 운영될__있는_

주민센터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엄마 덕분이니까요.


엄마가 가게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이유, 나는 이해한다. 이곳엔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고 몇 센티미터쯤 붕 뜬 상태로 살아가는 인간들만_ㅇ있다. 무명 연극배우, 편의점 알바생, 데뷔하지 못한 작가, 백수, 인디 뮤지션, 라면 봉지 수집가, 병 쌓기 달인……. 살아있는 유령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게 마음 편한 존재들. 미국의 진짜 첼시 호텔에는 한때 전도양양한 예술가들이 모였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첼시 호텔에는 아니다.

48-49쪽


밴드를 하다 만난 아빠와 엄마는 함께 첼시_호텔을 꾸렸지만 이제는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 건지 본인은 알고 있는 걸까. 방향성이 잘못된 성실함.

58쪽


엄마의 이런 가차없는 평가에 동의하며 고2 락영이는 열심히 공부합니다.

서울대 어느 과이든 가기만 하면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말이죠.

인생의 많은 즐거움은 대학 입학 이후에 이룰 거라 다짐하면서요.


아빠의 가게를 지나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스터디 카페에서 지유를 만납니다.

엄마랑 크게 싸우고 집을 나온 지유와 밤새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지요.

아침 일찍 지유의 자리에 잔뜩 놓인 벌레는 아이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나무젓가락으로 그 벌레를 잘 잡아주는 든든한 친구를 발견하게 했죠.


슈퍼히어로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지켜보던 반 아이들 모두 깊이 감동했다.

25쪽


벌레는 낚시할 때 쓰는 갯지렁이였어요.

지유의 ㅅㅏ물함에 또 벌레가 잔뜩 있었습니다.

지유를 향한 벌레 공격에 맞서

반장 김락영과 피해자 정지유와 항상 책을 읽지만 벌레를 잡아주는 다정한 친구 김도영은

고교 탐정단이 되어 일명 '어부' 찾기를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우정과 연애, 학교와 가정에서 갈등은 심해지고

락영이를 도망가게 합니다.


엄마도 학교도 친구도 인생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이고, 혼자이다 보면 아무런 상처도 안 받는다. 하지만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는다면 죽음과 뭐가 다르지. 이르게 들어온 무덤 같은 이불 속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_생각한다. 내가 도망가는 방향의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내가 내게 속했다고 믿었던 것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148쪽

Rock+Young, 부모님이 좋아하는 두 단어로 지어진 이름의 락영이가 도망간 곳은 '첼시 호텔'입니다.

여기선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 이런 것들을 서로 궁금해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이곳은 세상에서 소외된 아주 구석진 모서리 같은 장소였다. 지치거나 실연한 사람들만이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첼시 호텔을 찾아냈다.

……

그저 떼 지어 풀을 뜯고, 다 뜯어먹었으면 어슬렁거리며 다른 장소로 조용히 이동하는. 함께이지만 따로인 무해한 초식동물들.

154쪽


누구나 위안이 되는 숨을 곳, 골목의 끝에 있는 그곳은

수지타산,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과 꿈의 실현이라는 경계에서 어렵사리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누구나 숨을 장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155쪽


락영이는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엄마와 아빠의 갈등, 친구와 현실과 꿈의 ㅇㅏ슬아슬한 균형이 계속될 수 있을지

마지막까지 궁금하게 합니다.


시간에 따라 스러지는 꿈은 어른인 저에게 깊이 다가왔어요.

여전히 균형잡기의 어려움을 느끼며

첼시_호텔로 숨어들 어른들 중 하나인 듯 말이죠.

현재와 미래의 삶을 고민하는 청소년 성장 소설이기에

말랑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만

어른들에게도 과거와 현재의 나를 살펴 볼__있는

그런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청소년 자녀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눠보시길 바라면서

중등 이상 친구들에게 추천합니다.


좁고 길고 가파르고 휘어진 세상의 모든 길 끝에 그곳이 있다. 그러니 어떤 길을 걷더라도 괜찮다. 결국엔 첼시_호텔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다.

……

나는 첼시_호텔으ㅣ 문을 연다.

신의 손길처럼 음악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205쪽,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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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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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8년 미국정치학자들이 트럼프에 대해 비판했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리뷰 바로가기)의 후속편 격이다.

저자들이 책을 쓰기 시작한 2021년 1월_5일은 백인우월주의가 대세인 미국_남부에서

흑인과 유대계 상원의원이 최초로 탄생했고 그다음 날인 1월_6일에는 미의회가 점거당했다.

일련의 ㅅㅏ건을 보며 저자들은

이런 일이 어떻게_일어날 수 있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행동에 나서도록 제언한다.

미국의 트럼프를 '극단적 소수'를 대표하는 인물로 설명하며

미국_건국시기에 만들어진 미헌법과 동일 시기에 형성된 선거제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하나의 국가처럼 기능하던 각각의 주를 미합중국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인구비례보다는 각 주의 권한을 보장하는 방법을 택한 이후,

하나의 국가가 된 지금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총 8개의 장에서 1장과 2장에서는 트럼프가 보인 선거 불복종과 독재적 발상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세계 여러 국가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이에 대한 분석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_위해 반면교사 삼을만하다.

3장~ 8장은 미국_역사에서 미 상원이

어떻게 다수결의 원칙과 시민의 여론에 반대되는 결정을 할 수 있는지와

법원의 판결이 만능이 아니게 되는 이유들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상원의_필리버스터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들이 필리버스터를 이용해서 많은 법안을 부결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_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에 투표권이 없다는 것!

그래서 투표를 하려면 각각의 개인 스스로가 투표할 권리를 지닌 국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명부에 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투표에 관한 여러 가지 제약을 보편선거로 바꾸려는 법 개정도

미국_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이용해서 부결되었다고.

십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필리버스터를 지켜보며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야, 국회에서 주먹질을 안 해, 날아차기도 없고 빠루도 없는 시절이 가능하게 되었다며 감탄했으나

역시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 걸 미국_상원의 행태로 알게 되었다.

이전 책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제언한 데서 끝났다면

이 책에서는 이미 문제가 심각하니 민주주의를 지키기_위해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신성하다고 여겨지지만 헌법은 신성하지 않으니 현시대에 맞게 고치고

투표권을 확립하고 다수의 의견이 관철될 수 있는 제도로 만들도록

공론화하고 지속적인 개혁 운동을 해야 한다고.

비록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_것 같아도 해야 한다며,

여성 참정권을 향한 운동이 1920년 미국_헌법_수정_제19조로 이루어지기까지

1848년부터 시작되어 70년 이상 지속된 긴 여정이었음을 기억하라고.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이었던 미국이

그 역사 배경 때문에 이젠 후진 민주주의가 되었다는 그 아이러니를 보며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를 구분하는 혜안이 필요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ㅈㅏ란다지만,

이제는 유권자의 애정과 관심과 지혜로 쑥쑥 자라나길 바란다.

미국도 우리도, 세계의 모든_민주사회에서.

TMI : '극단적 소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추가하자면

이 책에서 말하는 '극단적 소수'는 다수결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를 이용해서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고 '소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변화를_위해 용기를 내서 문제를 위한 공론화, 사회 활동 등을 하는 분들이랑은 다른 개념이다.

더 많은 리뷰는

구름고래 논술토론 : 네이버 블로그


에드먼드 버크에서 존 애덤스, 존 스튜어트 밀, 알렉시 드 토크빌에 이르기까지 18세기와 19세기의 걸출한 사상가들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독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즉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다수의 의지가 소수의 권리를 짓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실제로 문제가 될 수_있다.……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 상황에 더 가깝다. - P21

민주주의는 어떻게 아무런 잡음 없이 권력을 이양하는 오늘날 독일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_패배를 받아들이는 규범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를_위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할 때, 정당은 패배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
……
정당이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두 번째 조건은 권력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즉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생계가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이며, 권력을 넘겨주는 정당과 그 지지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 P37

정치학자 후안 린츠가 충직한 민주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은 언제나 세 가지 기본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겨야_한다. 첫째, 승패를 떠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이 말은 패배를 일관적이고 명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민주주의자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혹은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전략을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 군사 쿠데타를 지지하고, 폭동을 조직하고, 반란을 조장하고, 폭탄 투척 및 암살 등 아양한 테러 행위를 계획하고, 정적을 물리치거나 유권자를 위협하기_위해 군대나 폭력배를 동원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위 두_가지 기본 워ㄴ칙‘을 어기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야 한다.
충직한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미묘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반민주주의 세력과 확실하게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 P63

민주주의_암살자에게는 언제나 공범이_있다. 그 공범은 민주주의_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그 규칙을 공격하는 정치 내부자들이다. 린츠는 이들을 가리켜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 P63

2. 과도하거나 부당한 법의 ㅅㅏ용
어떤 법은 자제해서 사용하도록, 혹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적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법은 특별한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인ㄴㅐ심을 발휘하거나 스스로 자제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 P80

3. 선택적 집행
정부는 법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 ‘법을 적용‘함으로써 정적을_처벌할 수 있다. 법 집행이 일반적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 가령 사람들이 계속해서 세금 신고를 속이고, 기업이 건강과 안전 및 환경에 관한 규제를 일상적으로 무ㅅㅣ하고, 혹은 고위 공무원이 친구나 가족을 위해 권환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법집행은 일종의 헌법적 강경 태도가 될_수_있다. 즉, 정부는 정적을_겨냥해서 선택적으로 움직이지만(어쨌든 ‘법‘을 집행하는 것이므로) 오로지 정적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부당한 방식이다. 다시 말해 법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페루의 독재자 오스카르 베나비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적에게는 법을."
블라디미르 푸틴은 선택적 법 집행의 대가다. - P85

4. 법률 전쟁
마지막으로 정치인들은 공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정적을 겨냥한 ‘새로운 법‘을 만들기도_한다. 이를 일컬어 법률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률전쟁의 뚜렷한 사례는 1991년 민주주의를_회복하기 이전의 잠비아에서 확인할_수_있다. - P87

정치학자 애슐리 자르디나는 트럼프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백인 유권자들에게 "인종적 수직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연구 결과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ㅅㅏ회적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인식한 백인 공화당원들이 예비선거에서 트럼프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 P172

지나치게 반다수결적인 미국 헌법은 단지 역사적 호기심의 대상만은 아니다. 미국_헌법은 전체적인 당파적 소수를 보호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_헌법은 개혁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 P321

미국은 이제 기로에 들어섰다. 미국은 다인종 민주주의 ㅅㅏ회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민주주의가_아닌 사회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 P326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_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1월 5일과 1월 6일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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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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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2년, 1940-1942년 동안에 발표된

짧은 에세이 9편을 모아놓았다.

발표되었던 것도 있고 처음 발표된 것도 있다.

이 글들에는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데

오히려 그가 박해받는 이유가 되었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후 영국으로, 미국으로,

마지막엔 브라질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글을 썼다고.

9편 중 앞의 두 편인 『걱정 없이 사는 기술』과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 』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서 저자에게 교훈을 주는 삶을 사는 안톤은

무소유와 (노동, 감정, 필요의) 나눔을 실천하는 인물인데

철학적이라거나 이념을 따른다기보다는 태생이 그런 인물로

『나에게 돈이란』에 나타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인플레로 인한 고통을 대하는,

'돈에 대한 가치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범을 보여준다.

(안톤이 그 시대를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일화와 사회적인 의견이 교차하며

마지막엔 히틀러 등장 25년 전에 출판되었던 소설을 바탕으로

히틀러가 가진 생각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내재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지점에서 개인은 시대정신을 압도하며 새_시대를 이끄는 선구자인지

그 시대를 충실히 따라가는 발현자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삶을 대하는 자세, 몰입의 중요성, 사회 인식과 참여 문제 등을 두루 다루는 9편의 글들은

함께 읽어도 따로 읽어도 곱씹어 보아야 할 화두를 주는데,

반성과 위로와 희망을 위한 노력을 말하고 있어 감동적이지만

반대로 그의 죽음을 알게 되니 배신감도 느껴진다.

희망을 말하면서 죽음을 실현했기에 말이다.

너무도 예민하게 시대를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절망했던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고.

천천히 생각하며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

유명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싶은 분들,

1940년대 지식인들의 고민을 함께 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그의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TMI :

오늘의 교훈은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 말자"

혁명과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예술을 즐겼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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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구한다 - 아마존 파괴에 맞선 부족 리더의 연대와 투쟁기
네몬테 넨키모.미치 앤더슨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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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업체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구름고래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환경 분야 에세이 <우리가 우리를 구한다>입니다.

이 책 표지의 여성은 저자 네몬테 넨키모입니다.


중남미 에콰도르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태어난 와오라니 족 여성이죠.

에콰도르에는 울창한 열대우림이과 다양한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만


그 열대우림 아래에 막대한 석유가 묻혀 있었던 것이 불행이었어요.

열대 우림 아래의 석유를 캐내기 위해 서구 백인들(코오리)들이 들어왔습니다.

네몬테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개발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은 하늘을 나는 헬리콥터와 시추공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 왔을 때처럼 행동했지요.

턱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머스킷 총과 검으로 무장하고 원주민 마을 밖에 서서 자기들이 '요구사항The Requirement'라고 이름 붙인 문서를 큰소리로 낭독했어요.

……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너희 땅의 정당한 지배자임을 받아들이면 너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

503쪽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 숲의 구원자는 누구인가에서는

여섯 살 정도 되었던 네몬테가 하늘을 날아와 마체테와 설탕과 예쁜 원피스를 주는 선교사들과 어울리며 시작합니다.

선교사가 '구원'하기 위하여 왔다고 하면서 기독교를 전파하지요.

백인들에게 와오라니족은 구원의 대상이고 계몽의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옷을 입지 않고 학교도 없고, 읽고 쓸 줄도 모르고

가진 것도 거의 없는 그들은_그저 미개한 원주민일 뿐이었죠.

하지만 그들은 숲의 모든 것을 알고 숲에서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의 믿음과 생활방식을 가지고요.

다만 코오리(백인) 문명이 어떻게_작동하는지 몰랐을 뿐이죠.

선교사 레이첼은 말합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세상에는 석유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와오라니족 당 아래에는 석유가 많이 묻혀 있어요. 우리가 그 석유 회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그들은 힘이 세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밀어주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운이 좋은 거예요. 좋은 사람인 데다 신자인 분을 만났잖아요. 그분은 땅 밑의 석유를 가져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와오라니 족을 도와주려고도 해요. 하지만 그분에게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요.

70쪽


석유 회사를 막을 방법은 없고, 그저 가져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도 줄 것이라는 헛된 약속.

이미 코오리와 접촉한 원주민들은 소아마비로 죽고 불구가 되었습니다.

네몬테의 삼촌 역시 사냥꾼이었지만 소아마비로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이야기꾼이 되었죠.


그러나 네몬테에게는 코오리의 피부색, 입술색, 골격, 머리의 윤기도 전부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부족의 전사들은 석유회사와 맞서다 죽어버리지만요.


레이첼은 내 아들이 공산주의자라고 말했어. 악마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하지만 다 거짓말이야. 아모는 전사였어. 우리_선조들과 똑같은 전사였다고. 아들은 그 회사에 맞서 싸우기 위해, 레이첼이 우리_땅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코오리와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던 거야. 그래서 그자들이 아들의 머리에 총을 쏘고 오일 로드에서 죽을 때까지 내버려둔 거야.

93쪽


이들은 전사의 장례식에서 '쓸데없는 종이'라는 뜻의 토코리라고 부르는 돈을 태웁니다.

대체 왜 저런 종이 쪼가리 때문에 아모가 죽어야 하는지 네몬테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일요일이면 교회를 가고, 세례를 받아 아네스라는 세례명을 받았지요.

부족의 구원을 위해서 부모의 눈을 피해 선교단에 들어가 스페인어를 읽고 쓰는 것을 배우면서

코오리처럼 입어고 날마다 기도해도 "하느님은 한 번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조상신과 재규어가 말을 걸어주던 숲과는 너무도 달랐죠.


숲과 가족을 떠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코오리들에게는 그저 원주민 여자아이였을 뿐입니다.

힘도 없고, 미개한, 누구의 보호도 없는 여자아이요.


이렇게 1부는 네몬테의 성장기이면서 와오라니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2부 우리가 우리를 구한다에서는

네몬테가 선교단을 떠났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동안

석유 개발은 더 활발해지고 아마존의 밀림은 더욱 훼손되었습니다.

숲이 줄어들고 오염되는 동안, 숲과 함께 살아가던 여러_원주민 부족들은 어려움에 처하죠.

코웨이들을 위해 일하고 돈을 받아 그들처럼 살고,

강과 샘은 오염되어 석유회사에 가서 맑은 물을 구걸해야 합니다.

코오리와_접촉하지 않은 비접촉 부족은 점점 더 밀림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코오리와 접촉한 부족들과 그들은 서로 죽이고 죽이며 싸웁니다.

네몬테는_레이첼이 불러온 이 문제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진행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우려고 합니다.

백인들은 늘 우리를 구워하려 들지.

……그러다 나중에 가서는 우리에게 해를 입히고.

405쪽


이제 네몬테는 와오라니족 뿐만 아니라 아마존_밀림에 사는 코판, 세코야, 시오나 족 등 다른 부족들과 연대합니다.

시초의 세이보 나무에서 이름을 따서 '세이보 연대'라고 이름 짓고요.

"시초엔 이 세이보_나무의 가지들이 숲의 강을 만들고, 목화는 불이 되면서 모든 동물과 사람들이 이 거대한 나무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았지."

"우리도 이 세이보 나무와 다르지 않ㄴㅔ요."에메르힐도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부리는 여전히 강하지만 혼자이니."

425

.

오염된 물 대신 빗물 집수 시설을 짓고,

각 부족의 꿈과 이상에 대한 이야기와 노래를 수집합니다.


백인계 사람들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려 들어.

……일단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나면 개개인을 무너뜨리는 일은 쉬운 일이지.

445


에콰도르 정부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석유를 팔고 싶어 합니다.

와오라니족 땅을 경매에 부치려고 블록 22라고 이름 붙였어요.

이들은 이제 백인 문명의 법정으로 들어가서 이들의 땅을 지켜내야_합니다.

이들에게 협력하는 코오리와_함께요.


백인들의 기술술을 이용합니다.

드론과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여러 부족들이 알고_있는 숲 지도를 만들고,

시위하고 인터뷰를 하고, 법정으로 갔지요.

여러 해의 노력 끝에 아마존 밀림을 지켜냅니다.


우리 영토는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우리 땅에 대한 문제를 결정할 권리는 우리 부족 사람들에게 있다고.

527-528쪽

이제 이들의 첫 번째 싸움은 끝났습니다.

이들이 만들었던 amazonfrontlies.org를 통한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해 에콰도르 아마존 지역 내 국립공원의 원유 채굴을 중단하는 힘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2024년 Hilton Humanitarian Prize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당신들을 인정하고, 당신 종족의 인간성을 본다면 당신들과 그들 스스로에 대한 폭력을 멈출 기회를 갖게 되는 거예요. 상처를 끝내고 치유를 시작할 기회요.

519


이 책을 읽으며

아마존 숲에서 사는, 우리와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자본주의(제국주의)의 폭력성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일방적인 구원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동등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상처를 끝내고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코오리(백인)와 같은 방식으로 살고_있는 우리에 대해 돌아보게_하는 이 책은

고등 이상 성인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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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 아작 YA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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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증오하며 흙더미 밖으로 나왔다. 증오는 그의 ㅇㅏ버지요 어머니였다.

7, 첫 문장


세계의 냄새가 주변에 자욱했다. 그는_절망감을 느끼며 가을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가을이 땅을 활활 태워 폐허로 만들고 있었다. 시골 곳곳에 여름이 남기고 간 폐허가 보였다. 거대한 숲에 불꽃이 활짝 피어났고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불꽃이 피우는 연기는 풍성했고 푸르스름했으며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증오하며 묘지에 서_있었다. 세계를 가로질러 걸었지만, 맛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다. 대신 들을 수는 있었다. 새로 열린 귀에 바람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는_죽어_있었다.

8


윌리엄 랜트리는 거대한 피스톨의 끝이 별들을 향해 뻗어가는 것을 보았다. 굴뚝 꼭대기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은 자들이 향하는 곳이었다.

14


모든_어리석음을 통틀어, 지독하고 고약하고 소름 끼치는 끈적끈적한 모든_어리석음 중에서도, 이런 것은 난생처음 보았다! 단 1그램의 상상력도 없이 아이들을 키우다니! 상상하지 않는 아기가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55

그러나 그는_살아_있었다. 어쨌든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가설을 세울 수 있을까?

이유는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다.

증오 때문이다.

57

어둠은 공포야. 그는_작은 집들을 향해 말없이 외쳤다. 어둠은 대조를 위해 존재한다고. 마땅히 두려워해야지! 이 세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를, 거창한 말을 멋들어지게 써낸 러브크래프트를 파괴하고, 핼러윈 가면을 태워버리고, 호박등을 없애버렸지!

59

그러므로 이자들은 일어날_수도 다시 걸을 수도 없다. 이들은 죽어서 납작해졌고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분필도 저주의 말도 미신도, 그 어떤 것도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걷게 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죽었고, 스스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_혼자였다.

81


맥클루어는 생명과 움직임에 대하여, 죽음과 움직이지 않는 것에_대하여, 태양과 위대한 태양의 소각로에 대하여, 빈 묘지에 대하여, 증오와 증오가 살면서 어떻게 진흙 인간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지, 이 모든 게 얼마나 논리에 어긋나는지, 나지막이 논리적으로 말하고 또 말했다. 한 명은 죽은 자였고, 죽어_있었고, 죽어 있는 게 전부였다.

117


나는 에드거 앨런 포다. 랜트리는 생각했다. 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찌꺼기다. 나는 앰브로즈 비어스의 찌꺼기요, 러브크래프트라는 남자의 찌꺼기다.……나는 던세이니요, 마켄이요,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이다.……나는 성벽에 모습을 드러낸 햄릿 아버지의 유령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다. 이제 마지막 남은 이것들은 소각될 것이다.

118-119


무덤에서 일어난 시체. 좀비 또는 흡혈귀 같은 존재.

감정과 이성이 있으니 좀비는 아니고, 피를 빨아먹지 않으니 흡혈귀는 아니지만

호흡하지 못하고, 맛도 냄새도 느끼지 못하는, 살아 있는 시체.

자신은 걸어다녀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죽음 이후 모두가 불태워지는 시대에 다시 일어난,

마지막으로 남은 죽은 사람, 외로운 윌리엄 랜트리.

그는 외롭기 싫어 친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무려 416년 만에 무덤에서 나온 그가 맞이한 시대는 과거에 살던 시대와 참 다르다.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불면도 없으며

상상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고, 시체는 누구도 매장하지 않고 불태운다.

2265년, 대소각기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불태워진 후

2349년, 랜트리가 깨어난 이후에도 과거의 작가들은 여전히 조롱 받는다.

책을 불태우고, 공포도 상상도 사라진 세계,

"미래 사람들처럼 논리적으로 말하고 추론했더니 생명력이 사라"진 랜트리.

그의_존재에 대한 불신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고 마는데.

과거의 잔재, 미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주인공,

어쨌거나 미래에 홀로 선언한 그의 전쟁은 패배로 끝난다.

그리고 그를 마지막으로 상상의 잔재들은 모두 소각되고.

과거의 우리들에겐 아포칼립스인 이 책은,

모든 책을 불태운 후 남아있는 책들을 찾아 불태우는 직업, 파이어파이터와

미래사회를 그리는 <화씨 451>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씨 451>의 책 한 권 읽고 고뇌하는 주인공보다는

이 책의 살았지만 죽어있는 주인공이 훨씬 공감간다.

아무래도 내가 읽고 있으며 상상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한때는 살아있었던,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 있는,

그의 죽어감을 애도하면서.


TMI :

1948년 단독 출판되었지만 1959년 <멜랑콜리 묘약>에 함께 수록되었다.

그리고 소설모음집은 <멜랑콜리 묘약>과 <온 여름을 이 하루에>로 번역되었다.

같은 출판사, 같은 번역가, 더 많은 수록작.

이 책으로 살걸…… ㅠㅠ

<온 여름을 이 하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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