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빌려 줘유 큰곰자리 5
이승호 지음, 김고은 그림 / 책읽는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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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썽꾸러기 사고뭉치 초등학생 기영이와 집안의 장남이지만 딱히 믿음가는 행동은 보이지 못하는 중학생 형 기철이가 풀어가는 재미있는 "검정 고무신"이라는 만화는 1960년대 우리네 변두리 평범한 가족의 일상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소박해 평범하기까지 했던 그 시절 그 때의 추억의 코드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면서 아련한 감동이라는 스토리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냅니다.

 주인집 아저씨의 고무신을 엿으로 바꿔 먹고, 동네 아이들을 기절초퐁하게 만들 정도로 환상적인 맛을 선보인 라면과의 첫 대면식,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콜라를 차기 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던 그 시절 그 아이들의 모습에 TV 앞에 모인 우리들은 저도 모르게 그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책속물고기의 신간 <책 좀 빌려줘유>를 만난 첫 느낌은 어릴적 보던 TV만화 "검정 고무신"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책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짧고 간결하지만 그래서 더 정감 묻어나는 문체, 만화풍으로 그려진듯한 코흘리개 꼬맹이들과 주인공 민재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잘 그려낸 삽화를 보고 있자면 1960~70년대 한적한 어느 시골의 뜨거운 여름 풍경이 절로 그려집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학생인 주인공 민재는 처음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됩니다. 방학식날 맏은 가정통신문에는 민재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합니다.

 

 " 학부모님께. 삼복더위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중량)

    1학년 여름방학 숙제

    *날마다 일기쓰기

    *좋아하는 동화책 한 권 읽고 독후감 쓰기. 다 읽은 책은 학급문고에 기증하기

   (하략)

    금오국민학교 교장 ○○○ 드림"

 

 독후감? 학급문고? 기증? 민재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졸라 가정통신문의 장황한 뜻을 간신히 이애할 수 있었던 민재는 그때부터 동화책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위로 누나, 형이 둘이나 있었지만 가난한 시골 살이 형편에 동화책은 여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민재에게 동화책은 그야말로 민재에게는 최상의 판타지입니다. 퇴근하신 아버지를 겨우 졸라 동네 이웃이자 고등학교 교사인 채선생님네 책을 한 권 얻으러 가게 됩니다. 지글지글 타오를 만큼 내려쬐는 한낮은 더위를 뚫고 참외를 먹고 가라는 원두막 아저씨의 청도 거절하고 살살 녹는 아이스께끼 장수의 외침도 마다한채 동화책을 구하러 가는 1학년 꼬맹이 민재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고, 기특하면서도 사랑스럽습니다. 채선생님댁에 도착해서도 아버지와 채선생님과의 바둑두기로 인해 하염없이 기다리다 간신히 여기저기 낙서된 데데가 낡고 닳아버린 동화책 "걸리버 여행기"을 얻게 됩니다. 처음으로 자기 책이 생긴 민재는 닳은 책이 너덜너덜해 질 정도로 여름방학 내내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걸리버처럼 소인국에 간 거인도 되었다가 거인들이 사는 나라에 간 난쟁이도 되었다가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과 대화도 시도해 봅니다. 책 한권이 민재에게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칠 수 있게 합니다. 그 상상 속에서 민재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당당히 직접 쓴 독후감과 <걸리버 여행기>를 학급문고로 기증하고 독후감 쓰기 방학숙제를 잘 한 덕에 상까지 받게 됩니다.

 

 

 

 

 

 민재와 민재의 엄마, 아버지, 채선생님, 친구들, 선생님까지 누구의 말속에서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베어있습니다. 그 사투리는 방학 첫날부터 숙제를 하려고 이리저리 노력하는 순박한 민재의 모습과 만나 더욱더 구수해 집니다. 그리고 그 구수함은 한여름 땡볕을 터덜터덜 걸어가는 민재 부자에게 자기 참외밭의 참외를 꼭 먹여 보내고 싶어하는 동네 아저씨의 넉넉한 인심과 딱 맞아 떨어집니다. 또 책 저금통을 만들고 도서대출왕을 뽑고 수십권이나 되는 전집을 사들여서 많은 책을 읽도록 적극적으로 권하는 것이 최고의 독서자도법인양 착각하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에게 민재처럼 단 한권의 책이라도 넘칠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그 책을 소중히 여기고 진심으로 그 책 속으로 쏘옥 빠져 보게 하는게 진짜 책읽기라고 말하는듯 합니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아련해지고 뭉클해지고 훈훈해 지는건 저도 미처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 시절 그 풍경이 글과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 권을 책을 그토록 진지하게 대하는 그 책에 온전히 녹아들어가는 민재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다만 충청도 사투리를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이나 스마트폰과 인터넷 게임을 하느라 여름방학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있을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될까를 생각하니 괜시리 우울해 지기도 합니다.

 

 

 책을 통해 제가 공감하고 제가 느꼈던 그 훈훈함을 우리 아이들도 느끼길 바라는 것이 괜한 욕심이 아니길 바라며 그때 그 아이들에 비해 지나칠만큼 풍족하고 풍요로와서 아쉬움을 미처 느낄 틈도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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