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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다보면 - 어린이를 위한 화해와 우정 이야기 ㅣ 우리 아이 인성교육 4
게일 실버 지음, 문태준 옮김, 크리스틴 크뢰머 그림 / 불광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하루 중에 놀때를 가장 좋아하는 얀은 친구 샘과 찰리와 땅파기 놀이를 하려고 삽까지 준비해 왔다. 하지만 얀의 두 친구는 빨간 공을 바닥에 탕탕 튀기며 땅파리는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고 자기네들은 공차기를 할거라며 놀려댄다. 혼자 남은 얀이 도토리나무 그늘 아래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얀을 부르는 검은 형체가 나타난다. 그 검은 형체는 얀과 같은 빨간 운동화를 신고 있다. 그 검은 정체에게 얀이 묻는다.

"화니? 너 맞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화> <화는 불꽃을 뿜으며 빠르게 달리려 한다>
그래 맞았다. 빨간 운동화를 신은 그 검은 정체는 얀이 원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항상 나타나는 "화"였다. 얀과 같은 운동화를 신은 것빼고는 흉칙스럽고 괴기스럽게 생긴 괴물같은 화는 친구들의 놀림에 놀 친구가 있는 얀에게 "공을 가로채서 찰리에게 힘껏 던져보라"고 권한다. 그러고는 얼른가서 샘과 찰리를 찾아보자며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얀은 주저하며 이렇게 말한다.
"잘 모르겠어.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것 같아. 좀 천천히 가자."
꽁무니에서 불을 뿜으며 로켓처럼 달려가려는 화에게 얀은 천천히 걷자라고 말한다. 같은 운동화를 신고 화와 얀은 걷기 시작한다.

숨을 마시면서 한 걸음.
숨을 내쉬면서 한 걸음.
걸으면서 숫자도 세어본다. 한걸음씩 조용히 조용히.
천천히 숫자를 세며 걸을수록 시원한 산들바람이 얀의 등을 운동장 쪽으로 부드럽게 뮐어주고 마음도 기분도 훨씬 편안해 지는걸 얀은 느낀다. 괴물 같이 흉칙했던 모습도 훨씬 부드러워지고 목소리고 누그려진 화가 얀에게 민들레 한송이를 주며 소원을 빌어보라고 한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후"하고 민들레 홀씨를 공중으로 흩어 보내버리자 얀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있던 화의 모습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다.
얀의 경우처럼 화는 언제 어느때든 심지어는 내가 아주 기분이 좋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다. 그게 외부의 문제 때문이라면 그 이유에 대해 화를 뿜어 낼 것이고 내부적인 문제라면 자신의 내부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할켜놓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숨을 크게 내쉬면서 천천히 걷다보면 그 화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부드러워지고 가벼워져 버린다. 마치 새털보다 가벼운 민들레 홀씨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듯이. 감정을 조절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화나는 일이 생기면 삭히지 말고 풀라고 한다. 어떻게 화를 풀 것인가?
천천히 걸어볼까? 햇살 받고 바람 맞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렇게 스무개쯤 세어보자.
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