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행차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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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화성행차 - <반차도>로 따라가는
한영우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임금님의 효행길>>(윤문자, 가교)이 전통회화 복원가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쉽게 쓴 기록화 해설서라면, 이 책 <<정조의 화성행차>>는 역사학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여 쓴, 8일 간의 정조의 화성행차를 따라가는 글이다.
역사학자의 글 답게 자세하고, 화성행차에 대해 꼼꼼하고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마치 한 편의 역사 드라마, 혹은 역사 스페셜(?)을 보는 기분이 든다.
자, 연륜이 쌓인 역사학자와 함께 화성행차를 따라가 보자.
먼저, 1장에서는 화성행차를 따라가기 전에 알아야 할 배경지식으로, 왕권 강화, 민국 사상, 이용후생 같은 정조의 정치관과, 정조에게 있어서 화성과 행궁 축성이 갖는 의미 등을 설명한다. 화성/행궁 축성과 화성행차는 부모에 대한 '효'의 의미도 갖지만, 그 내면에 정조의 정치관이 깊이 배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 (내 경우)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은 1장에서였는데, 이는 몇 년 전에 <<비변사등록>>과 <<징비록>> 등을 읽은 후로는 역사서(+ 깊이 있는 인문학 서적)를 거의 읽지 않은 내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의 책을 주로 읽으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한 풀어쓰기 - 즉,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쓰고 상세한 해설을 붙이는 것 - 와, 큰 줄기만을 제시하는 기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한글 옆에 병기된 한자어를 보고 '아, 이런 의미구나'를 생각해야 했던 점~. 당연히 편안한 자세로 뒹굴거리며 읽을 수가 없다(긴장~). 관직명과 기구명도 많이 나온다. 또 한 번 긴장~. 그러나, 이 책으로 시험을 볼 학생이 아니라면 쉬엄쉬엄 호흡을 늦춰가며 읽으면 될 듯하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익숙해진다.)
2장에서는 정조의 화성원행을 그린 <반차도>가 나온다. 60쪽이 넘는 지면을 할애한 <반차도> 해설은, 이전에 보았던 <<임금님의 효행길>>과는 달리, 그림을 줌인하여 보여주는 방식이다. <반차도>의 부분부분을 확대하여, 행차의 첫머리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누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각 면에 그림의 등장인물과 특징에 대한 네댓 줄의 설명을 붙였다. 인물의 행색에서부터 자세와 표정까지, 화성 행차에 대한 다른 책들보다 <반차도>를 가깝게 볼 수 있어 흥미로웠던 장이다.
1장이나 다른 장들을 조금 어렵게 느꼈던 경우에도, 어린이들도, 2장은 부담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반차도>를 원경으로 한 번에 보여주는 게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반차도> 전체를 보여주는 다른 책과 이 장을 함께 펼쳐놓고 보면 무척 재미있는 그림 놀이가 될 것 같다.
그림에 대한 한글 설명 옆에 같은 분량의 영문 해설이 붙어있으니, 외국인(?)을 안내할 일이 있을 때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3장은 8일 간의 화성 행차를 위해 1년 간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설명한다. 사치하지 않아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했다는 지시에서부터, 서울과 화성을 잇는 신작로(!)의 건설, 배다리의 설계까지의 과정이 들어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들어있다는 <주교도>와 그 배다리를 만든 과정이 무척 재미있다.
4장은 이 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성 행차 8일 간의 기록이다. 창덕궁에서 출발한 행렬이 시흥, 지지대고개를 거쳐 화성행궁에 다다르고, 화성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행궁에서 혜경궁의 환갑잔치를 열고, 귀경길에서 백성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든 과정 ... 어찌나 그 기록이 자세하고 생생한지, 눈 앞에 한 편의 드라마가 그대로 펼쳐지는 것 같다(상상하는 것이 절대 어렵지 않다).
4장은 다른 장보다 용어 해설이 많이 들어있는 편이다. 특히 병기된 한자를 보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용어가 아닌 경우에는 괄호 안에 짧은 설명이 들어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 책이 다른 책과 특히 다른 점은, 화성 행차의 행렬이 거쳐간 길을 설명하면서 지금의 어디쯤이라는 설명을 함께 한다는 점이다. 그 설명이 세세하여 서울 - 시흥 - 수원 사이의 답사 길을 역사학자와 함께 가면서 "여기가 바로 정조의 행렬이 쉬면서 미음다반을 드렸던 곳이고, 여기에서 어떤 지시를 내렸느냐 하면 ... "과 같은 해설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또한 매 끼, 가는 모든 곳에서 어머님을 어찌 봉양했는지, 백성들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어떻게 배려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정조가 보여준 성군으로서의 태도를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책을 덮을 때가 되면,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정조시대의 기록문화는 왕조정치 기록문화의 백미'라고 한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왕실의 행차를 이렇게 세세하게 기록하고 후세에 남기다니 말이다(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까지 모두 들어있다 한다). 덕분에 나는 정조의 화성행차를 역사학자와 함께 다녀왔으니 감사한 따름이다. :-)
서울시와 수원시에서 <반차도>를 바탕으로 한다는, 화성행차 재현을 보고 싶어졌다.
중언부언 말이 겹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꼬리를 살짝 달아보자면 ...
꼬리 #1. 이 책은 수원 화성 답사를 목적으로, 어디에 어떤 건물이 있고, 그 구조적 특징은 무엇이며,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알기 위한 용도로는 적합지 않다. 화성이나 행궁 자체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대신, 화성의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행궁의 각 전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준다. <<수원화성,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스쿨김영사)나 수원화성 홈페이지에 실린 설명과 함께 이 책을 본다면 화성에, 행궁에 갔을 때 '역사의 현장에 와있는' 생생한 느낌이 전해질 것이다.
꼬리 #2. 앞서도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처음 1장에서의 긴장만 잠시 넘기면 후반부는 오히려 읽기가 편안하다. 1장이 준비운동이라 할 수도 있겠다. 뒷부분으로 가니 구구한 해설이 없는 것이 책을 읽는데 속도도 나게 하고, 책 내용 자체에 집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꼬리 #3. 한자어에 익숙한 나이라면, 어느 단계에서 읽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어려워 보이는('어려운'이 아니고) 책에 거부감이 없다면 말이다. 서양의 철학, 어려운 이론서도 읽는 청소년들이니, 이 책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처럼, 아직 역사/정치에 관련된 한자어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줌인해서 보여주는 <반차도>를 즐기는 것으로도 이 책의 활용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우리 아이에게 시도해보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