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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진가론 - 1900-1960, 열화당미술신서 62
육명심 지음 / 열화당 / 1987년 4월
평점 :
절판
![](http://imgsrc2.search.daum.net/imgair2/00/51/42/00514209_2.jpg)
▲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브레송 특유의 사진
1952년 앙리 까르띠에-브레쏭은 이제까지 찍어 온 사진들을 추려서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 펴낸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이름의 이 사진집은 앙리 마티스가 손수 장정을 맡은 매우 호화로운 사진집이었다. 오늘날 이 사진집은 소형 카메라에 의한 캔디드사진의 결정판으로, '결정적 순간'이란 비단 그의 사진집 이름일 뿐만 아니라 캔디드 사진미학의 용어로 통할 만큼 사진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여느 사진가들이 사진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카메라를 소형과 중형 그리고 대형들을 고루 갖추고 그 밖에 여러 사진기재들을 총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오직 일생 동안 소형 카메라만을 사용하여 소형 카메라의 특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진미학을 이룩하였다. 그의 사진집이 캔디드사진의 성전이라고까지 높이 평가되는 것은, 소형 카메라의 전문적인 사용만이 아니라 남다른 다큐멘터리 사진의 추구에 있다. 모두가 신문이나 잡지사의 편집자가 지시하는 대로 충실하게 찍는 하수인의 신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 그는 오직 사적인 자기 감정에 충실한 자기 사진만을 고집한 것이었다. 그가 이룩한 사진의 업적은 사진사에게 한 시대의 역사적 과업의 완성이었다.(p.205)
▒ 막심 고리끼는 <이탈리아 이야기>에서 "가난한 사람의 사진이 신문에 나오는 것은 범죄를 범했을 때 뿐이다"라고 썼다. 고리끼의 이 말은 사진이 지니는 정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사진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사진의 정치성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려고 몸부림을 쳐왔다. 그들이 '가난한 사람'을 찍었을 때, 우리는 신문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 가령 그들의 때절은 손, 해진 옷깃, 낡은 구두, 혹은 더없이 맑은 미소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어떤 것이 더 정확한 묘사인지 헛갈리곤 한다. 종종 예술가들의 사진이 '결정적'이긴 하지만, 과장스럽게 보일 때도 있다는 것이다. ▒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절단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라는 이름의 매우 길고 지루한 시간여행의 핵심을 짚어내고 그 방향을 설정해준다. 한 장의 사진이 서술하는 것은, 간혹, 어떤 대하소설보다 유장하다. ▒ "렌즈의 먼지를 털어내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의 먼지를 털어라"는 말이 있다. 이른바 '카메라 십계명'의 하나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 덮인 먼지를 아무리 잘 털어내도 렌즈의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내지 못했다면, 그가 찍어낸 사진은 실상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 사진가와 대상을 연결하는 매체인 카메라 - 그는, 거의, 인간 사회에서 신(神)이 하는 역할을 한다. 중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거나, 혹은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시비의 대상이 되는 존재, 말이다.